이제 ‘복수’는 충무로의 것?
  • 라제기 |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0.08.23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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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인물들의 개인적 단죄’ 다룬 영화 쏟아져…“공권력에 대한 대중의 불신 반영”

영화 <악마를 보았다>는 연쇄 살인마에게 약혼녀를 잃은 한 사내의 처절한 복수극을 그리고 있다. 약혼녀를 잃은 주인공 수현(이병헌)이 악한 경철(최민식)에게 극도의 고통을 안겨주며 목숨을 빼앗으려는 과정이 피비린내 속에 진행된다. 이 영화 속 수현의 직업은 국정원 요원. 공적 신분의 주인공이 법 체계라는 사회적 시스템을 아예 무시하고 잔인한 사적 복수를 단행한다.

 

■ 공적 인물의 복수… 복수… 복수… | 최근 충무로에는 사적 단죄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넘쳐난다. 이들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공적 인물이 복수의 주체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올여름 3백만 관객을 불러모은 히트작 <아저씨>의 주인공 태식(원빈)은 전직 특수요원이다. 작전과 관련해 임신한 아내를 잃은 그는, 자신의 유일한 친구인 어린 소녀가 범죄 조직에 납치되자 칼과 총을 든다. 한때는 자신이 소속된 국가와 사회의 안녕을 위해 직무에 충실했던 인물. 그런 그도 공권력을 제쳐두고 스스로 피의 보복을 단행한다.

지난 3월 개봉한 <무법자>는 아예 공적 인물을 통해 공적 단죄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살인 사건으로 아내를 비명에 보낸 강력반 형사 오정수(감우성)는 살인자들이 법망의 허점을 피해가자 스스로 복수를 단행하려 한다. 복수의 대상에는 살인자뿐 아니라 단죄를 방해한 판사와 변호사 등도 포함되어 있다. 아내의 죽음이 공권력의 무기력함에 의한 것이라고, 이 사회의 사법 체계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고 이 영화는 신랄하게 비판한다.

공적 인물의 사적 복수는 비단 충무로만의 경향은 아니다. 최근 외화 속 피에 절은 복수의 주체는 대부분 공적 직업을 지닌 인물들이다. 지난해 국내에서 예상 밖 흥행 성적을 올린 리암 니슨 주연의 <테이큰>은 전직 특수요원의 처절한 복수극을 그리고 있고, 지난 6월 개봉한 <엣지 오브 다크니스>는 현직 경찰이 공식적인 수사와 별개로 살해된 딸과 관련한 음모와 살인 배후들을 찾아내 복수하는 모습을 전한다. 공권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반영이라 뒷맛은 개운치 않다.

■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신 드러내다 | 충무로의 최근 ‘사적 복수’ 영화들은 비슷한 소재의 외화와 달리 공권력과 사법 체계에 대해 좀 더 강한 비판적 시선을 지니고 있다. 개별 사건 하나하나에 대한 음모론을 제기하기보다 이 사회가 지닌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점을 더 부각시킨다. <악마를 보았다>
의 수현도, <아저씨>의 태식도 애당초 공권력에 사건 해결을 맡길 의사를 보이지 않는다. 공권력의 실체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인물이 공권력을 크게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드러내면서 두 영화는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음을 비판한다.

최근의 사적 단죄에 관한 영화가 공권력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반영한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불신감이 조성된 요인에 대한 해석은 다소 엇갈린다. 국가의 개개인에 대한 안전망이 무너진 신자유주의 시대의 부산물이라는 지적이 있고, 사회적 정의의 실종에 따른 반작용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내 한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는 “예전에는 국가와 사회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신자유주의가 도래하면서 이런 믿음은 급격히 무너졌고, 공권력에 대한 불신도 동시에 생겨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한 영화인은 “최근의 사적 단죄 영화들은 대중들이 지닌 국가 권력에 대한 신화가 붕괴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최근의 사회 모습도 크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이런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추석에 개봉하는 <해결사>의 주인공도 전직 경찰이지만 ‘공적인 시스템’보다는 사설 흥신소를 통해 개인적으로 거대 악과 맞서며 문제 해결을 시도한다. 

 

 

 

영화 <라스트 에어벤더>는 영웅으로 태어난 소년 아앙이 자신의 운명을 자각하고 각성해나가는 과정을 담은 판타지 블록버스터이다. 동양적 세계관을 담은 애니메이션 <아바타: 아앙의 전설>을 원작으로 해 태어났다. 반전 스릴러의 대가였던 M. 나이트 샤말란이 도전한 첫 블록버스터라는 점에서 더욱 많은 주목을 받았던 이 영화는,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난감하기 그지없다.

관객을 유혹하는 이야기를 만드는 데 최고의 장기를 보였던 감독 샤말란은 첫 블록버스터 도전에서 이야기 대신 그림을 선택한 듯이 보인다. 문제는 그 이야기에 있다. 영화는 원작이 담은 설정-네 개의 영혼(물, 흙, 바람, 불)을 축으로 한 부족 사회, 벤딩이라는 특수 능력의 특성, 아바타가 지니는 의미 등-을 설명하느라 편의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내레이션이 수시로 개입하고, 설명을 위한 회상 장면이 때마다 삽입된다. 덕분에 이야기의 진행은 더디고 관객의 몰입은 지연된다.

동양적 세계관 속에서 펼쳐지던 원작의 유쾌한 이야기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 와중에 아앙의 각성은 부자연스럽고, 카타라의 역할은 어정쩡하며, 소카와 유에의 멜로 라인은 뜬금없다.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스펙터클은 볼만하지만 매 장면 ‘나는 그림이다’를 웅변한다. 

<라스트 에어벤더>는 3편의 시리즈 중 첫 작품이다. 북미 개봉 당시 엄청난 악평이 쏟아졌지만 흥행에서는 손해를 보지 않았단다. 과연 나머지 2, 3편이 만들어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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