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 산맥’ 큰 봉우리로 서다
  • 이춘삼 |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9.0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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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획 시리즈 - 한국의 신 인맥 지도 | 경북고 ①

 

▲ 경북고등학교 ⓒ경북고 제공

 경북고의 역사는 유구하다. 1916년 대구관립고등보통학교로 문을 열어 대구공립고보→경북공립중→대구고로 이름을 바꿨으며, 1950년 경북고로 개칭했고 이듬해 대구고로 환원되었다가 1953년 다시 경북고로 부르기 시작해 오늘에 이른다. 2010년 2월 91회 졸업생 5백89명을 배출해 총 동문 수는 4만6천6백31명이다. 교표에 가로로 새겨진 세 줄의 흰 선은 경성고보(1900년), 평양고보(1911년)에 이어 개교한 세 번째 관립 학교라는 의미이다.

이 세월 동안 대구·경북(TK) 지방의 수재들이 이 학교로 모여들어 경북고를 가꾸고 키워왔다. 경북고라 하면 이른바 TK의 본류를 형성하는 중심으로 일컬어진다. 그런 만큼 세간의 평가가 어떻든 이곳 출신들이 현실 세계에 나서서는 자신들의 소임에 투철해 정계·관계·재계·금융계·법조계·언론계를 망라한 각 분야에서 주요 역할을 담당해왔다. 정·관계로 눈을 돌리면 대통령부터 3부 요인, 국회의원, 장·차관을 비롯해 예전에는 ‘중앙청 국장’이라 하여 나라를 이끌어가는 중추로 불렸던 정부 각 부처 국장급, 국영 기업체장, 군 장성 등 핵심 요직을 이들이 주도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서부터 전두환 전 대통령→노태우 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32년 세월의 소산이라 할 것이다.  

 신현확 전 국무총리로 대표되는 이른바 ‘TK 사단’, 김준성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등을 중심으로 한 경제 관료와 재계·금융계의 인맥도 한 시대를 풍미했다.

현 시점에서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법조계의 경북고 인맥은 대단하다. 서울대 법대를 비롯해 법학 전공을 택한 동문이 워낙 많은 결과이다. 전통적으로 경북고를 나온 서울대 법대 입학생이 숫자 면에서 경기고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를 차지하곤 했다. 과거 전체 서울대 입학생 숫자를 놓고 볼 때 서울의 톱클래스 고교에 육박하는 기록을 내곤 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과(理科)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지역 명문으로 꼽히는 경북대 의대에 대거 진학했던 점이 눈에 띈다. 이를 감안하면 경북고의 세(勢)가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만하다.

동문들, 정권을 이어 권력 핵심에 꾸준히 진출

경북고 출신 거물 정치인 가운데 가깝게는 킹메이커를 자임했던 김윤환 전 민자당 대표가 있었고, 이미 그 전에는 이효상·박준규 두 국회의장이 정계의 큰 인물로 자리 잡았었다. 현역 국회의원의 경우 대구광역시 출신으로만 박종근(달서 갑), 배영식(중구·남구), 유승민(동 을), 이한구(수성 갑), 이해봉(달서 을), 주성영(동 갑) 의원과 서상기 의원(북 을, 서의원은 경북중을 졸업하고 경기고로 진학했지만 동문으로 인정된다)이 12개 선거구 중 7개 구를 맡고 있어 경북고 동문의 영향력을 가늠케 해준다. 그 밖에 김부겸(민주당·군포), 박보환(한나라당·화성 을), 정수성(무소속·경주시), 정해걸(한나라당·군위 의성 청송) 의원을 포함해 11명의 현역 의원이 있다. 윤건영 한나라당 정책조정위원회 수석위원장과 고려대 정외과 출신의 권오을 국회 사무총장도 있다.  

 경북고 출신 현역 정치인 가운데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와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다수의 인재가 배출된 의성에서 교육자의 아들로 태어난 강 전 대표는 대구에서 삼덕초교-경북대사대부중을 거쳐 경북고를 다녔다. 서울대 법대로 진학한 그는 쾌활한 성격으로 주위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면서도 명석한 두뇌로 선망의 대상이었던 ‘재학 중 사법고시 합격’이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사법연수원 시절 시험 종료 시간 전에 내고 나간 그의 답안지를 들여다본 당시 이회창 교수가 뛰어난 답안 내용에 깜짝 놀랐다는 일화도 있다. 검사로 공직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5공화국 시작과 함께 청와대 정무·법무 비서관을 경험하면서 세상을 넓게 보는 안목을 키웠다. 같은 시기에 고교, 대학, 검찰의 직계 선배인 박철언씨도 청와대에 몸담았다. 이후 박철언씨가 부장 특별보좌관으로 있던 안기부에 파견 근무를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역점 시책이었던 북방 정책이 이들의 두뇌에 의해 추진되었다. 역시 박철언씨에 이끌려 민자당 전국구로 정계에 진출해 13대부터 17대까지 내리 5선을 기록했고 당 기획조정실장, 대변인, 총재 비서실장, 대구시지부 위원장, 국회 법사위원장, 원내총무를 차례로 거쳐 대표최고위원까지 올랐다. 한때 국회 출입기자들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으로 꼽혔고, 신사적인 국회의원에게 주어지는 ‘백봉신사상’을 네 차례나 받았다. 그가 18대 총선에서 출마를 포기해 대구시 서구는 현재 홍사덕 의원이 맡고 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깨끗한 정치인’의 이미지와 높지 않은 대중적 지지도로 특징 지을 수 있을 듯하다. 영천초교-경북중-경북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해 재학 시절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입학한 이듬해 청계천 드레스 미싱 공장에 위장 취업해 노동운동을 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제적되고 1986년 인천 5·3 사태에 연루되어 2년5개월간 수감 생활을 했다. 대학 졸업장은 입학한 지 24년만인 1994년에 받았다. 15·16·17대 의원을 지내고 2006년 제4회 지방선거를 통해 경기도지사로 선출된 후 지난 6월 5회 선거에서 연임에 성공한 그의 행보가 눈길을 끈다. 청와대를 향해서도 ‘거침없는 직격탄’을 날리곤 하는 그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대항마로 떠오를지는 향후 정국의 최대 관심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개각 인선 검증과 관련해 세간의 화제에 오른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김명식 청와대 인사비서관이 경북고 동문이다. 권수석은 검찰, 김비서관은 총무처 중앙인사위원회에서 잔뼈가 굵었다. 최근 이들 청와대 인사 라인의 문책 논란을 둘러싸고 일부에서는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 비춰볼 때 실무 라인의 운신 폭에 한계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말도 들린다.

이들 외에 청와대 안에는 박인주 사회통합수석비서관, 중앙일보 기자 출신의 김두우 기획관리실장, 김정기 교육비서관 등이 있다. 유우익 전 실장의 바통을 이어받아 2기 대통령실장을 지내고 최근 퇴임한 정정길 직전 실장은, 한·일 국교 반대 시위인 6·3 사태와 관련해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가장 오래 옥고를 치른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현 시점에서 이현동 국세청장(차관급)이 발탁된 것을 제외하고는 동문 가운데 장관은 없다. 과거 군 출신 인사 중에서 김복동 전 자민련 상임고문, 이종구 전 국방부장관, 정호용 전 국방부장관 등이 두각을 나타냈던 시절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가질 만하다.  

 김만제 낙동경제포럼 이사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경제 개발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서강학파 혹은 남덕우 사단의 멤버이다. 박 전 대통령과 똑같이 구미가 고향으로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마치고 돌아와 서강대 교수로 있다가 1971년 대통령의 명을 받아 한국개발연구원(KDI)을 설립하고 원장직을 맡은 것이 그의 나이 37세 때의 일이다. 국제경제연구원장직을 겸임했고 금융통화위원장, 한미은행 초대 위원장, 재무부장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을 지내고 포항종합제철 회장을 지낸 후에 16대 국회의원으로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의장을 맡은 바 있다.

사공일 한국무역협회장은 이 시리즈 기사에서 수차례 언급된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이력을 뛰어넘어 사공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 멘토라는 점이 두드러진다.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UCLA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뉴욕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김만제 원장 시절 KDI 재정금융실장으로 인연을 맺어 5공 출범 이후 부원장,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자문관, 산업연구원(KIET) 원장,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재무부장관,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을 역임했다. 현대건설 임원이던 이대통령과 장관 재임 시절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진 그는, 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국가경쟁력강화특위 공동위원장을 지냈고 대통령 취임 이후 대통령 경제특별보좌관과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한국무역협회 회장으로 선임되었고 평소 폭넓은 국제 정치·경제계의 인맥을 활용해 G20 정상회의를 서울에 유치하는 데 ‘수훈 갑’이라는 평가를 받아 현재 준비위원장으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정재 전 금융감독원장 겸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은 4형제 수재 집안으로 유명하다. 큰형이 이경재 KB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이고, 작은형이 이명재 전 검찰총장이다. 동생은 이병재 우리파이낸셜 대표이사 사장이다.

재계에서는 김순택 삼성전자 신사업추진단장, 이윤우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 등이 CEO나 CFO의 직을 수행하고 있다. 재계와 금융계 역시 경북고 세력이 위력을 떨치던 시절에 비하면 세가 다소간 약해진 느낌을 준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경북고 동기인 정춘택 당시 한국산업은행 총재는 부흥부장관 비서관으로 관계에 발을 들여 경제기획원, 교통부 등을 거치면서 외환은행장, 은행감독원장, 산은 총재로 올라가 상당한 발탁 인사라는 평을 받았으며 ‘밤의 황제’로 불렸던 제일은행 출신의 이원조 전 은행감독원장(작고) 역시 파격적인 등장으로 사조직의 금고 역할을 했던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조해녕 전 시장과 손을 맞잡고 내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애쓰고 있는 김범일 대구시장은 대구의 생존을 위한 당면 과제인 의료 산업 유치에도 부심하고 있다. 의료 산업이야말로 섬유와 기계 부품을 대체할 신성장 동력으로 제시되어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에 성공한 마당에 그 후속 조치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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