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고 깊은 ‘실세의 그늘’
  • 김지훈 | 언론인 ()
  • 승인 2010.09.06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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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파워 인맥’ 해부 / 수도권 원내외 인사·60대 중진급·공기업 인사·민중당 출신 등 두루 포진

이재오 특임장관이 기나긴 정치적 휴지기를 끝내고 마침내 우뚝 섰다. 그의 화려한 복귀로 여권의 중심축은 ‘이재오계’ 쪽으로 급격히 쏠리고 있다. 이재오계 내부에서도 “이제 해볼 만하다”라는 말들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와 운명을 같이할 ‘왕의 남자’의 생환만으로 여권 주류 진영에서는 전에 없이 활기가 돌고 있다.

이재오계 파워 인맥의 원천은 역시 한나라당이다. ‘이재오계’가 본격 태동한 것은 지난 2008년 18대 총선 때였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실세’ 이장관이 한창 기세등등할 당시 공천 과정에서 수도권의 출마 희망자들 사이에는 ‘친이재오’를 표방하며 이장관과 줄을 대려는 경쟁이 치열했다. 당시 “이재오가 수도권 공천을 다 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당의 공천심사위원회에 임해규 의원이 공천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이재오계의 대리인 역할을 했다.

▲ 이재오 장관을 중심으로 결성된 ‘함께 내일로’의 2010년 상반기 워크숍에서 안경률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과 경기, 인천의 지역구는 모두 1백11곳. 한나라당은 18대 총선에서 수도권에서만 81석을 건졌다. 대부분 이장관의 도움을 받았거나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고 있는 의원들이다. 낙선한 원외 당협위원장들의 상당수도 이재오계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들은 이장관이 낙선 후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에도 ‘주류 역할론’ ‘정권 성공론’ 등을 외치며 여권의 주요 포스트를 장악했다. 2008년 7월 전당대회 이후에는 공성진 최고위원, 안경률 사무총장, 차명진 대변인, 진수희 여의도연구소장 등 이재오계가 당직을 독식하다시피 해 “이재오계가 당 지도부, 돈줄, 정보, 입을 모두 장악했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재오계의 중심에는 단연 ‘함께 내일로’가 자리 잡고 있다. ‘함께 내일로’는 17대 국회에서 이장관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이후 ‘국가발전연구회’(국발연)로 멤버들이 이어졌다. 모임은 안경률·심재철·공성진·진수희·차명진 등 친이재오계 핵심 인사들이 주도했다.

안경률 의원은 2006년 이장관이 원내대표로 있을 당시 수석 원내부대표로 호흡을 맞췄다. 진수희 보건복지부장관은 이미 알려졌다시피 이장관의 대변인 격임을 자처해 온 최측근 인사이다. 주변에서 “이재오와 마지막까지 정치적 운명을 함께할 사람은 진수희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핵심 중의 핵심이다. 심재철 의원은 경기도당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군현 수석 원내부대표와 초선인 정옥임·김용태 원내부대표도 이재오계이다. 역시 초선인 안형환 당 대변인도 이장관과 가깝다. 초선이 당직을 맡기 쉽지 않은데, 당직을 맡은 초선 여럿이 이재오계라는 점은 이재오계의 저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밖에도 초선 의원 가운데 박영아·정양석·권성동·권택기·임동규·허천 의원 등도 이재오계로 분류된다.

▲ 차명진·권택기·정태근·김용태·임해규·조문환 의원(왼쪽부터) 등이 지난해 6월2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진수희·이군현·김해진 등 운명 함께할 ‘최측근’도 다수

권성동 의원의 경우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있다가 재·보선으로 국회에 입문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BBK 소방수’의 일원으로도 활약했다. 권택기 의원은 MB 직계로 분류되지만 18대 총선 이후 이재오계와 정치적 보조를 맞춰왔다. 권택기 의원은 이장관이 총선 낙선 후 러시아로 외유길에 오르려 하자, “러시아로 가면 ‘좌파 이미지’가 고착된다”라고 말렸다. 이장관이 대통령 특사를 다녀온 인연으로 러시아를 선택한 것을 미국으로 돌린 사람이 바로 권의원이다. 권의원은 자신이 수학한 바 있는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을 권했다. 그는 이장관과 미국으로 함께 출국해 교수들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이군현 수석 원내부대표의 경우 김무성 원내대표가 친박 몫으로 기용되자, 이재오계에서 밀어붙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의화 국회부의장도 이장관과 가깝다. 이윤성 전 국회부의장 역시 이재오계로 분류된다. 둘 다 부의장 경선에서 이재오계의 지원을 받았다. 장광근 인재영입위원장, 최병국 당 윤리위원장도 이장관과 가깝다. 한나라당이 지난 10년 동안 야당 생활을 하다 보니 이장관처럼 원내에서 경험을 쌓은 60대 전후의 중진들이 이재오계와 가까운 편이다.

당 인사는 아니지만 지난 개각에서 특임차관으로 입각한 김해진 차관은 이재오계 핵심으로 부상한 경우이다. 경향신문 정치부장 출신인 김차관은 18대 총선에서 부산 사하 갑에 출마하려 했지만 공천을 받지 못했다. 이후 코레일 감사로 자리를 옮겼다. 이 과정에서 이장관이 많은 배려를 했다는 후문이다. 지난 7·28 재·보선에서는 이장관의 선거 참모 역할을 맡았다. 이번 차관 인사에서도 이장관이 적극 추천했을 정도로 신임이 두텁다.

김해수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도 이재오계로 분류된다. 김 전 비서관도 18대 총선에서 인천 계양 갑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그를 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앉힌 것도 이장관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그의 발탁을 두고 “이재오가 세긴 세다”라는 반응이 많았다. 지금은 청와대를 떠나 잠시 휴지기를 가지고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 이장관을 도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정부 산하 기관이나 공기업 임원 중에도 이장관의 인맥이 많다. 대부분 지난 총선에서 낙선했거나 대선 과정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이다. 국회의원, 원외 당협위원장, 청와대 행정관, 공기업 임원 등 곳곳에 100여 명이 포진한 것으로 알려진 이재오계는 이장관이 미국에 머무르는 동안 느슨한 형태로 묶여 있었지만 이장관의 복귀와 함께 탄탄한 결속력으로 뭉칠 것으로 보인다.

이장관의 정치 이력에서 민중당을 빼놓을 수 없다. 그와 민중당 활동을 함께한 대표적 인물이 김문수 경기도지사, 차명진·김용태 의원 등이다. 임해규 의원은 민중당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민중당에서 활약한 김지사를 도왔다는 이유로 범민중당 출신 인사로 꼽힌다. 차의원과 임의원의 경우 이장관과도 가깝지만 ‘김문수의 사람’으로 불리기도 한다. 차의원의 경우 “다음 대통령은 김문수이다”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다. 이장관과 김지사가 지금까지는 동지 관계를 유지해 오며 협력 관계를 지켜가고 있지만 차기 대선 과정에서도 이들이 함께 갈지, 각자 제 갈 길을 갈지 예단하기는 이르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이장관이 “김지사가 대권에 나설 경우 적극 도울 생각이 있느냐”라는 한 의원의 질문에 “그런 생각이 있다”라고 답한 것을 두고 미묘한 파장이 일기도 했지만, 원론적이고 일반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더 강하다. 차기 대선에서 이장관이 킹메이커를 자처하느냐, 스스로 킹이 되려고 하느냐에 따라 이재오계도 독자 세력화할지, 각자의 노선에 따라 분화할지의 갈림길에 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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