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말리는 살인자들의 ‘천국’ 낙원’의 꿈
  • 조홍래 |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9.1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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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치안 상황 수년째 방치…‘사회주의 낙원’ 만들겠다던 대통령은 체제 강화에만 힘 써

베네수엘라가 사람 살기에 이라크보다 더 위험하다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 사람들은 차라리 이라크에서 사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농담을 자주 한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베네수엘라의 인구는 3천만명 선으로 이라크와 비슷하다. 2009년의 경우 이라크에서는 4천6백44명이 자살 폭탄이나 전쟁 등으로 죽었다. 같은 해, 베네수엘라에서는 1만6천명이 죽었다. 전쟁을 하는 나라보다 그렇지 않은 나라에서 더 많은 국민이 죽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베네수엘라의 민간인 사망은 주로 살인과 폭력이 수반된 범죄로 발생했다. 마약 전쟁으로 악명이 높은 멕시코에서도 이처럼 많은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 이런 나라를 과연 국가라고 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 지난 8월27일 베네수엘라의 한 경찰관이 오토바이를 타고 수도 카라카스의 우범 지역을 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베네수엘라의 높은 살인율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년째 계속되는 고질병이다. 부자들은 납치와 살인을 피하기 위해 외국인 보안 요원을 고용할 정도이다. 살인이 일상사가 되어도 정부는 관심도 없다. 한 신문이 살인 사건을 대서특필하자 법원은 보도를 금지했다. 살인을 막을 궁리는 하지 않고 보도를 금지하는 일에 더 열을 올린다. 시민들은 할 말을 잃은 표정이다. 위고 차베스 대통령은 베네수엘라를 ‘남미의 사회주의 낙원’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하면서 주택 버블로 휘청거리는 미국 자본주의를 비웃었다. 그가 장담한 낙원이 살인 천국으로 전락한 현실 앞에서 사람들은 어리둥절하다 못해 허탈감에 빠진다. 

수백 명의 어린이들이 살인자들이 쏜 유탄에 맞아 죽고 다수의 어린이는 부모와 형제들이 피살되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 정도의 일에 놀라는 사람도 없다. 으레 그러려니 한다. 1999년 차베스가 취임한 이래 살인으로 죽은 사람은 11만8천5백41명이라는 경찰 통계가 나왔다. 7년여의 전쟁으로 이라크에서 죽은 민간인 사망자 10만명보다 많다. 경찰이 왜 이런 통계를 발표했는지, 또 이 통계가 정확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정부는 이런 통계를 발표하는 것을 막지도 않는다. 그래서 살인에 대한 면역성을 높이려는 고도의 심리 요법이라는 비난도 나온다. 인권 단체들은 실제 살인 건수는 경찰 발표보다 많을 것으로 추산한다.

베네수엘라에서 2007년 이후 발생한 살인 사건은 4만3천7백92건으로 마약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멕시코의 살인 건수 2만8천건보다 거의 두 배나 많다. 수도 카라카스의 살인율은 남북 아메리카 대륙의 대도시 가운데 최고를 자랑한다. 인구 10만명당 2백명 꼴이다. 다른 대도시의 10만명당 살인율을 보면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는 22.7명, 브라질 최대 도시 상파울루는 14명이다. 차베스는 이에 대해 살인은 하룻밤 사이에 생긴 현상이 아니고 전임 정부로부터 받은 ‘유산’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계속 증가하는 살인 풍조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살인은 차베스 취임 이후 세 배가 늘어났다. 이 점에 대해서 차베스는 말이 없다.

살인이 빈발하는 원인은 복잡하고 다양하다.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경제 성장을 하는 동안 베네수엘라 경제는 후퇴했다. 게다가 빈부 격차도 확대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불만, 원한, 증오가 증폭되었다. 경찰은 급여가 너무 낮아 살인범을 추적할 의욕 자체를 보이지 않는다. 인플레이션은 연 30%로 남미 최고 수준이다. 일부 경찰은 갱단에서 납치 관련 아르바이트를 해 부수입을 올린다. 월급으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일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차베스 정부 자체가 살인의 원인이라고 보도했다. 사법 제도가 너무 정치화되어 독립성을 잃었다. 검찰과 법원의 모든 시스템이 차베스의 이념에 물든 결과 양심적 검사나 법관들이 공직을 떠나거나 아예 외국으로 이민을 간다. 살인 사건의 90%는 미제 상태이다. 단 한 명의 살인범이라도 잡았다는 말은 없다. 그러나 차베스를 비판하거나 그의 사회주의 노선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그날로 체포된다.

▲ 지난 8월17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살인 사건으로 사망한 한 시민의 장례식이 가족들의 오열 속에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 실패에 따른 빈부 격차 확대·경찰력 약화 등 앞날도 캄캄

차베스는 살인을 줄이기는커녕 부추기는 정책을 폈다. 중앙과 지방 정부의 경찰 예산을 줄인 것이 치명적이다. 그 결과 필요한 총기를 구입하지 못해 무장을 하지 못한 경찰이 수두룩하다. 그러면서 말로는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변명한다. 특히 지방선거 패배 이후 경찰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원인은 돈이 없기 때문이다. 전통적 동맹국인 쿠바와 니카라과로부터 전문가들을 초빙해 치안 요원들을 훈련시키기는 했다. 하지만 형식에 그쳤다. 치안을 유지할 능력도, 의욕도 없는 경찰을 훈련시켜본들 결과는 뻔하다. 대학 경찰학과의 한 교수는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 경찰의 업무 지침이  ‘제한적 인권 존중’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권 따위는 적당히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살인 문제를 ‘대화와 설득’으로 해결하라는 어처구니없는 지시도 내려온다. 

베네수엘라의 경찰 병력은 총 2천5백명밖에 안 된다. 정부는 올 들어 이들의 활동으로 최소한 카라카스에서는 살인이 줄었다고 말하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없다. 인권 단체들은 살인이 줄어들 가망성은 없다고 말한다. 올 상반기 전국 23개 주 가운데 10개 주에서만 5천9백62건의 살인이 발생했다. 살인 문제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고 있으나 초점은 근본 대책이 아니라 피살자의 시체 사진을 게재한 신문에 집중되었다. 마치 신문 때문에 살인이 줄지 않는다는 논리이다. 보다 못한 시민들은 차베스가 언론마저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정부가 아무리 단속해도 언론의 살인 사건 보도는 중단되지 않는다. 살인이 워낙 자주 발생하다 보니 언론은 보도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언론 보도가 치안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기보다 오히려 살인을 조장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현재 살인을 다룬 비디오 사건을 조사 중이다. 이 비디오는 이 나라의 한 저항 가수가 8월에 배포했다. 비디오에는 무고한 소년이 총을 맞고 죽어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정부의 단속을 비웃듯 이 비디오는 인터넷을 타고 계속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이 비디오가 전하는 메시지보다는 확산 방지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시민들의 입에서는 한결같은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우리는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줄 것을 믿고 그를 선출했다. 하지만 거리의 범죄도, 그리고 그 무엇도 통제되지 않는다.”

11년째 베네수엘라를 지배하고 있는 차베스의 현 주소는 환멸과 참담 그 자체이다. 모든 비극은 경제 실패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경제는 이념 우선의 잘못된 정책의 소산이다. 산유국인 이 나라는 석유를 팔아 상당한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돈은 주로 체제 강화에 사용되었다. 돈이 얼마나 궁했으면 지난 4월에는 중국에서 2백억 달러의 차관도 도입했다. 차베스는 차관 협정에 서명하면서 사회주의 낙원 건설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고 자랑했다. 그의 목소리는 연일 터지는 살인 사건의 총성 속에 묻혀버렸다. 이 와중에서도 차베스는 헌법을 고쳐 종신 집권의 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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