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쥐고 흔드는 ‘서울랜드’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0.09.13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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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 서클’ 파워 막강…장관과 같은 ‘고교-대학-재외 공관’ 출신들이 요직 차지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에는 외교통상부(이하 외교부)가 있다. 일명 ‘대한민국 외교 총사령부’이다. 전체 직원은 웬만한 부처의 두세 배에 달하는 1천8백여 명. 재외 공관(대사관 대표부 총영사관 포함)은 1백70여 곳에 달한다.

외교부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엘리트가 모여 있는 곳이다. 외교부에서 ‘서울대 간판’을 내밀지 말라는 속설이 있다. 외교부는 제2의 서울대 캠퍼스라고 할 만하다. 외교부의 조직 문화는 폐쇄적이고 보수적이다. 정부 부처 중에서 직원들의 개성과 자존심이 가장 강한 집단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동안 숱한 역풍에도 내부 불협화음을 한 번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 9월10일 유명환 전 장관의 딸 특채 사건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외교통상부의 직원들이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그런데 ‘유명환 전 장관’이 침묵의 카르텔을 깼다. 그것도 자신의 딸을 특채로 뽑은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치부가 한 꺼풀씩 드러나면서 외교부의 자존심에 큰 생채기를 내고 있다. 한 번 불어닥친 바람은 방향을 어림잡을 수 없다. 도대체 어디까지 휩쓸고 갈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 전직 외교부 고위 간부는 “내가 평생 몸담은 조직이 난타를 당하고 있다. 이것이 다 유명환 때문이다. 너무 열 받고 자존심이 상해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라며 분개했다.

‘대한민국의 자존심’ 외교부가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일각에서는 외교부 내에 형성되어 있는 ‘이너 서클’(권력 핵심 집단)이 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과연 외교부에는 5공화국 때 군대 내 사조직인 ‘하나회’와 같은 조직이 있는 것일까.

외교부는 크게 ‘출신 고교’와 ‘재외 공관’이 양대 인맥을 형성한다. 서울대가 조직 전체를 휘어잡고 있기 때문에 기타 군소 대학들은 세를 형성하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때문에 고시 출신이면서 외교 수장인 장관과 ‘고교·대학·재외 공관’으로 묶여지면 자연스럽게 성골 인맥이 된다. 고시 출신과 비(非)고시 출신들 그리고 7급 행정직들 간에는 또 다른 벽이 존재하고 있다.

한 전직 외교부 간부는 “외교부에는 분파와 갈등이 존재한다. 고시를 패스하면 사무관이 되는데 외교부 내에서는 ‘장교단’이라고 부른다. 6급이나 7급은 ‘하사관단’이라고 부르는데, 이들 사이에 알력이 생긴다. 예를 들어 7급으로 들어간 서울대 출신이 몇 년 지나서 고시 출신을 보니까 ‘잘난 게 뭐냐’라고 생각하며 올라타는 일도 있다. 이런 것을 없애려면 조직의 기강이 엄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방대 출신의 한 7급 여직원은 “외교부에서 7급은 타 부처의 9급보다 못하다. 학력 우월주의와 엘리트 의식 때문에 걸핏하면 무시당하기 일쑤이다. 밖에서 보는 외교부와 안에서 보는 외교부는 너무 다르다”라고 토로했다. 

특히 외교관이 순환직이다 보니 재외 공관에서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직원들끼리는 자연스럽게 끈끈한 인간 관계가 형성된다. ‘워싱턴 스쿨’ ‘재팬 스쿨’이라는 말도 이런 인맥 관계에서 나온 것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홍순영 전 외무부장관(현 외교협회 회장)은 충주고와 서울대 동문이다. 홍 전 장관이 외무부장관을 할 때 반총장이 외무부 차관을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장춘 전 외무부 대사는 “재외 공관은 가족처럼 지낸다. 안 그러면 사이가 아주 나빠지게 되는데 옛날에는 주먹다짐을 하기도 했다. 보통 같이 있던 공관장이 잘되면 따라가게 된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고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요직에 임명하는 것보다 아무래도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임명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라고 말했다.

어느 조직에서든 ‘왕의 남자’는 실세로 통한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 실세’로는 단연 유명환 전 장관과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꼽힌다. 유명환 전 장관과 김성환 외교수석은 이대통령과는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었다.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첫 외교 수장에 유 전 장관을, 제1차관에 김성환 전 북미국장(현 외교안보수석)을 임명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현 정부의 외교 라인은 ‘워싱턴 인맥’

이대통령과 유명환 전 장관, 김성환 외교안보수석과의 인연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인 1997년 9월 서울지방법원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다음 해 2월 국회의원직을 떠났다. 그리고 그해 말 미국 워싱턴으로 사실상 유랑 생활을 떠났다. 이대통령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힘든 기간도 이때였다. 그의 자서전에도 ‘역경을 넘기고 정치적 도약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시기’라고 적고 있다.

워싱턴에 머무르던 당시 이명박 전 의원은 대사관 직원들과도 자주 어울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때 주미 대사관의 정무공사가 바로 유명환 전 외교부장관이다.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경제 참사관으로 있었다. 현 정부의 외교 라인이 ‘워싱턴 인맥’으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장 어려울 때 만난 친구가 가장 오래 남는다고 했다. 이대통령은 두 사람을 각별히 챙겼다. 그동안 몇 차례의 개각이 있었지만 두 사람의 자리는 요지부동이었다. 여전히 이대통령의 지근거리에서 ‘외교 실세’로 군림했다. 유명환 전 장관이 딸 특채 문제로 낙마하기 전까지 2년7개월 동안 ‘장수 장관’으로 있었던 데에도 이런 배경이 있었다.

유 전 장관이 전형적인 ‘미국통’이라는 것도 크게 작용했다. 그는 외교관 생활의 절반인 15년 동안 대미 외교에 종사했었다. 현재 유 전 장관의 후임 ‘0순위’로 김성환 수석이 거론되고 있으며, 기용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정부의 외교 라인이 ‘워싱턴 인맥’이라고 한다면 외교부 인맥은 유 전 장관이 나온 ‘서울고’와 ‘워싱턴 스쿨’ 인맥으로 볼 수 있다. 유 전 장관은 핵심 요직에 이들을 전면 배치했다. 파워 그룹은 역시 ‘서울랜드’(서울고-서울대) 인맥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현 외교부장관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신각수 외교부 제1차관이다. 신차관은 유 전 장관과 서울고 및 서울대 행정학과 동문이다. 현 정부 출범과 함께 외교부 2차관에 발탁된 배경에도 유 전 장관의 추천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선 외교부 대변인도 서울고 출신이다. 김대변인은 유 전 장관이 주일 대사 시절 정무공사를 맡으며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측근이다. 6자회담 차석 대표인 조현동 북핵외교기획단장은, 대학은 한국외국어대를 나왔으나 고등학교는 서울고를 나왔다. 유 전 장관의 ‘워싱턴 스쿨’의 대표적 인물은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유 전 장관이 주미 대사관 공사 시절에 참사관을 지냈다.

신차관의 경우 이번 유 전 장관 딸 특혜 채용의 지휘 선상에 있었다. 때문에 특채 과정에 ‘신차관 개입설’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신차관은 9월7일 열린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의에 출석해 ‘개입설’을 완강히 부인했다. 신차관은 “이번 특별 채용은 국(局) 차원에서 업무가 진행되어 진행 과정에서는 세부 사항을 인지하지 못했다. 최종 결재 과정에서 면접 결과를 가져왔을 때 한충희 인사기획관으로부터 보고를 받았을 뿐이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외교부의 보고·결재 라인상 신차관이 유 전 장관 딸의 ‘응시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유 전 장관의 딸 특채에 신차관이 ‘몸통’이라는 설까지 나도는 이유이다. 외교부는 신차관을 인사 라인에서 배제하고 업무는 당분간 천영우 2차관이 맡도록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교부 간부는 “유 전 장관이 취임한 후 서울고 출신이나 재외 공관에서 인연을 맺었던 인물을 중요 보직에 배치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전횡을 행사하거나 월권을 한 것은 없다. 외교부 내에서 드러내놓고 특정 인맥을 만들기가 어렵다. 서로 견제 심리가 강하기 때문에 고등학교나 동향 출신들끼리 모여 밥 먹는 것도 조심스러워한다”라고 말했다.

▲ 9월6일 사의를 표명하고 정부중앙청사를 떠나는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장관. ⓒ연합뉴스

타 부처와 인사 교류 확대 등 대안 마련해야

그러나 채규영 민주당 외교통상 전문위원은 다른 견해를 폈다. 그는 “이번 외교부의 특채 논란 뒤에는 이전부터 내려온 특정 인맥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고교, 대학, 미국이나 일본 등 재외 공관으로 이어지는 인맥들이 오랫동안 쌓이면서 풀을 형성하고 있다. 누가 장관을 맡느냐에 따라 라인이 다를 뿐이다. 고시 출신과 비고시 출신들의 알력 등 외교부의 고질적인 병폐를 고치기 위해서는 외부 인사를 많이 참여시키거나 다른 부처와의 인사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외교부 주변에서는 유명환 전 장관의 딸 특혜 채용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그동안 굳게 닫혀 있던 철문 안에 비밀스럽게 감추어져 있던 치부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참에 외교부의 뼈를 깎는 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외교부의 얼굴’이 바로 ‘대한민국의 국격’이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학맥·인맥으로 똘똘 뭉쳤다

외교부의 인맥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장관’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냉전 시대 한국 외교를 대표한 인물로는 고 김동조 전 외무장관이 꼽힌다.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의 장인이기도 하다.

김 전 장관은 지난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주도했으며, 직업 외교관으로는 처음으로 주일·주미 대사를 지냈다. 김 전 장관이 재직할 때 외무부에는 ‘김동조 사단’이 있었다. 김 전 장관이 자신이 통과한 일본 고등문관시험 출신들을 우대하면서 생겨난 말이다. 당시는 고급 외교 인력들이 없다 보니 일본 고시 출신들을 중용하던 때였다. 박정희 정권 때는 외교부 내에 국군 통역장교 출신들의 숫자를 가리키는 ‘25사단’이 있었다.

전두환 정권 때 노신영 전 국무총리(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는 외무장관, 안기부장, 국무총리를 지냈다. 전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으면서 내각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노 전 총리는 외무부에서 공직을 시작해 27년간 근무한 ‘외무통’이다. 그러다 보니 제5공화국 때 외교부에는 노 전 총리와 가까운 사람들을 일컫는 ‘노신영 사단’이 있었다. 평안남도 강서 출신의 노 전 총리는 이북 출신들을 각별히 챙겼다고 한다.

외교부에는 장관이 기독교 신자이면 ‘외교부 예배반’이 만들어지면서 또 하나의 인맥을 형성했다. 지난 1983년 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발 테러 사건으로 순직한 고 이범석 외무부장관 시절에도 ‘외교부 예배반’이 있었다고 한다. 한 전직 외교부 간부는 “가령 장관이 기독교다 하면 ‘일요 예배반’ 등이 있었는데, 이런 것이 폐단으로 작용했다. 이들끼리 자주 만나고 하니까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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