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심장’ 단 프랑스 교육 개혁
  • 최정민 | 파리 통신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9.2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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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장관, ‘선생님 입장 시 학생들 기립’ 권고령 내려…전직 장관도 교육 환경 지적하며 거들어

프랑스 국민들은 말 안 듣기로 유명하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데다가 따지기를 좋아하는 성격 탓에 프랑스인들을 다스리는 것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2차 대전 당시 프랑스, 그것도 파리를 점령했던 나치군이 발표한 첫 번째 포고령은 ‘보행자는 지정된 장소로 도로를 건널 것’이었다고 한다. 이 작은 법규조차 통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처럼 자유분방한 도로 문화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화 속에서 교육 제도와 환경은 어떠할까? 그에 대해서도 토론과 논의를 자주 벌이며 따지기를 좋아한다. 더군다나 68혁명이라는 상징적인, 그것도 학생에 의해 주도된 혁명의 역사가 있어 프랑스적인 자유로운 분위기의 변화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올해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현 프랑스 교육부장관의 권고령이 그것인데, 바로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올 때 모든 학생이 기립할 것을 권고한다’는 것이다. 뤽 샤텔 교육부장관은 아울러 오전 수업과 오후 운동으로 프로그램을 편성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사태의 반향을 의식한 듯 “절대 의무 사항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 프랑수아 피용 프랑스 총리(앞줄 맨 왼쪽)와 뤽 샤텔 교육부장관(앞줄 왼쪽 두 번째)이 한 학교의 수업을 참관하고 있다. ⓒAP연합

흥미로운 것은 전임 교육부장관이었던 뤽 페리의 반응이다. 지난 9월2일 이번 권고령을 두고 마련된 프랑스 민영 까날 플뤼스의 ‘르 그랑 주르날’에 참석한 뤽 페리는 “바보 같은 정책이 숱하게 많다. 작은 일이지만 그나마 괜찮은 권고안이다”라고 평가했다. 68혁명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지지 주장을 지켜왔던 그였기에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르지만,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교내 폭력 사태와 관련해 무언가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흐름이다.

뤽 페리 전 장관은 아울러 “현재 교육의 문제점은 정부측의 실책 탓에 생긴 측면도 있지만 먼저 가정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20세기의 급격한 변화는 첫째 전통적인 가치들이 급격히 무너진 것이고 둘째는 자식들을 너무나 아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 속에서 너무나 많은 아이가 잘못 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학교 교육과 가정 교육은 다르다. 선생과 학생, 부모와 자식 간의 교육이 구분되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전직 장관으로서 교육 정책의 제도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장관에 취임한 것이 2002년 5월이었다. 그해 학기 시작은 9월이고 취임 당시에는 이미 전년도에 다음 학기의 정책이 모두 정해져 있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라고 문제점을 인정했다. 프랑스 교육부에는 2002년부터 다섯 명의 장관이 들어섰다. 애초에 지속적이고 의욕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한 환경이었던 셈이다.

▲ 지난 2월16일 뤽 샤텔 프랑스 교육부장관(가운데)이 이탈리아 마사에서 단체 여행 중 교통사고로 입원한 프랑스 학생들을 병문안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

교육 예산 삭감 등 개혁안에 반발해 교육 현장에 시위와 파업 잇따라

더구나 올해의 경우 프랑스 정부가 교육 개혁의 일환으로 교사 1만6천명의 자리를 감축했고, 그로 인해 개학일인 지난 9월2일에는 1만5천명의 견습 교사들이 아무런 사전 교육도 받지 못한 채 개학을 맞이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프랑스의 교육 시스템과 대학의 수준이 엉망인 것은 아니다. 최근 영국의 글로벌 대학 평가위원회인 QS는 ‘세계 대학 랭킹 2010’을 발표했다. 한국의 대학은 종합 9위를 기록했다. 프랑스는 종합 순위 6위였다. 늘 자신만만하던 프랑스인들의 콧대를 생각하면 초라한 성적처럼 보인다. 일부에서는 프랑스 교육 개혁의 당위성을 이러한 대학 평가에서 찾기도 한다. 그런데 속내를 뜯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먼저 이러한 평가에서 대상이 되는 프랑스 대학들에는 다른 영·미권 국가들의 대학에 있는 대형 연구소, 그것도 민영 자본이 무한정 투자된 대형 실험 연구 기관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프랑스의 경우 연구 기관은 ‘CNRS’라고 하는 국립 연구소에 통합되어 별도로 존재한다. 따라서 대학만으로 연구소를 포함한 영·미권 대학들과 겨루어 랭크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선전인 셈이다. 그리고 프랑스의 거의 모든 대학은 국립으로 1년 학비가 기껏해야 4백 유로도 되지 않는다. 따라서 1년 학비가 수만 달러에 이르는 영·미권의 대학들과는 단순 비교가 쉽지 않다. 프랑스 대학들은 온전히 국립 공교육 시스템으로 민간 자본과 겨루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이러한 선전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현 대통령인 사르코지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 3월 미국 방문에서도 콜롬비아 대학을 찾아 노골적으로 미국 대학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며 프랑스의 대학 또한 미국식으로 바꾸어나갈 것을 천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셈은 국가의 부담을 민영 자본으로 돌려 대학의 경영권을 자율에 맡긴다는 계산이다. 이미 자율 대학이라는 명목으로 프랑스 전역 18곳의 대학이 올해부터 시험 운영에 들어갔으며, 내년은 전체 대학 중 60%로 확대할 방침이다. 정부의 교육 예산 또한 2007년의 7억7천만 유로(정부 지출의 28%)에서 올해에는 6억8백만 유로(정부 지출의 21%)로 대폭 삭감되었다.

그러나 이같은 프랑스의 교육 개혁안은 요란한 파장을 가져왔다. 뤽 페리 전 장관은 재임 당시 교사들을 상대로 교육 개혁안을 담을 책을 출간해 배포했다. 그러나 그 책자는 그가 참석한 자리에서 반발한 교사들에 의해 모두 던져졌다. 지난해 2월 고등교육부장관인 발레리 베크레스가 직접 설득에 나섰던 스트라스부르그 연설에서는 교육 개혁에 반발한 학생과 연구원들이 연설 중인 장관에게 노골적으로 등을 보이며 단체로 보이콧을 하기도 했다. 올해의 경우 지난해 추진된 개혁안에 대한 반발로 개학 이튿날인 9월3일에는 산발적인 파업이 이어졌고, 지난 9월7일에는 현재 진행 중인 연금 개혁과 연계해 전국적으로 시위와 파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앞으로 이루어질 교육 개혁이 첩첩산중에 놓인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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