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전형료가 ‘쌈짓돈’인가
  • 최홍이 | 서울시 교육의원 ()
  • 승인 2010.10.04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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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들, 수시 모집에서 연간 2천억원 이상 벌어들여…‘전형에 쓰고 남은 돈 유용’도 기막혀

 

고려대학교가 수시 전형에 고교등급제를 적용했다가 피소되었다. 그리고 민사재판에서 피해 학생들에게 7백만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이때만 해도 대학 입학 전형은 고교등급제가 문제의 핵심으로 부각되었다. 이 ‘등급제 논란’은 특권 교육과 사교육 편향에서 나왔다. 즉, 교육 격차를 입시 전형이 공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있어서는 안 될 불평등 교육의 결과물인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학들이 떳떳하지 못한 ‘돈’ 문제로 지탄을 받고 있다. 수시 입학 ‘전형료 장사’로 연간 2천억원 이상을 벌어들였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 돈을 전형 경비 외에 ‘쌈짓돈’처럼 펑펑 쓴 사실이 드러나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분노하고 있다. 서울 시내 유명 사립대학들이 전형료로 많게는 수십억 원을 벌어들였다면 대학들이 70만 수험생을 상대로 ‘입시 장사’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학별로 전형료 수입을 보면 중앙대가 62억7천7백만원, 고려대가 61억6천9백만원, 성균관대가 60억7천8백만원, 한양대가 58억2천7백만원, 단국대가 48억7천만원 등이었다. 가뜩이나 의지할 곳 없는 학부모와 수험생의 등골을 빼먹은 것이다.

4년제 대학의 수시 전형 가짓수는 2천4백84개 분야라고 한다. 여기에 정시 모집까지 보태면 3천6백63개로 늘어난다. 수험생 중에는 3~4곳의 대학에 지원한 학생들이 있다.

이럴 경우 전형료만 100만원 이상을 지출한 경우도 허다하다. 게다가 전형료 환불 조건이 까다로워 입시생들의 권리 구제는 시늉뿐이다. 엄연히 교육과학기술부, 대학교육협의회, 공정거래위원회가 있지만 입시 행정의 병목 구간에 신호등은 여전히 꺼져 있다.

대학들이 수전노처럼 긁어모은 돈(입시 전형료)은 어디에 쓰였을까. 지금까지 드러난 것을 보면 입시 전형에 쓰고 남거나 남긴 돈을 홍보비, 관광 연수비, 공공 요금, 기자재 구매 등에 펑펑 쓴 것으로 드러났다. 말 그대로 주머니의 ‘쌈짓돈’처럼 전용한 것이다.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홍보비를 많이 쓴 대학은 고려대 20억7천만원, 단국대 15억5천만원, 중앙대 13억7천만원, 성균관대 11억3천만원 등이다. 심지어 국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는 국공립 대학마저 전형료 일부를 공공 요금 납부와 기자재 구매에 유용했으니 할 말이 없다. 대학들이 예산을 어떻게 썼는지를 보고 나니 참으로 우려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홍보비뿐만 아니라 해외 관광성 연수비로도 지출한 것을 보면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이 억지로 밀어붙여서 처음으로 시행된 것이 ‘고교 선택제’이다.  

▲ 지난해 11월19일 서울YMCA시민중계실 대학생 모니터단원들이 서울YMCA 앞에서 1인당 수십만 원 드는 고액 대입 전형료 인하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도 수시 모집에서 전형 유형 늘려 ‘고액 장사’ 나설 듯

이 때문에 ‘자사고’에 들지 못한 공사립 고교들이 교육 예산을 학교 홍보비로 수천만 원씩 낭비한 것이 드러났고, 결산 심사 때 언성을 높였던 기억이 새롭다. 교육 내용이 충실하고 잘 가르치면, 홍보가 없어도 학교는 알려진다. 그런 학교는 상품이 아니다. 기업이 신입 사원을 뽑을 때 입사 전형료를 받는 대신, 면접비와 교통비까지 지급하며 회사를 홍보하는 방식과 같다.

대학들은 올해도 수시 모집에서 전형 유형을 대폭 늘렸다. 동일 차수 내에 중복 지원도 허용하면서 고액의 전형료 장사를 확대했다. 이제는 대학들의 입시 전형료 수입 통로를 막아야 한다.

연세대의 경우 1천9백50명을 선발하는데, 논술고사 응시생만 4만4천명이니 수시 전형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러다 보니, 외국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된 전형료와 대학들의 전형료 돈벌이를 방치해 온 교육 당국에 직무 유기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이라도 문제를 야기한 대학들에 대해 교과부의 관리감독권을 강화해야 한다. 지원을 줄이거나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교과부의 관료들이 사학을 비호해 온 전례로 볼 때 요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교육 당국이 책임을 면하려면 학생 1인당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100여 만원씩 납부하는 전형료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인하해야 한다. 혹여 대학들이 절약해서 경비가 조금 남았다면 예산 회계 규정을 손질해야 한다. 다음 해에 사회적 배려 대상자에게 전형료라도 면제해주거나, 소외 계층 학생 장학 급여 사업에 편성하는 방법으로 그 이익이 학생들에게 돌아가게 해야 한다. 이것이 과다하게 책정된 전형료의 부당한 집행을 막는 행정 책임이다.

대학교육협의회의 공공성이 공익의 기대치를 밑돈다면 당국이 나서야 한다. 대학 입학 지원서 형식을 하나로 통일하고, 공인 기관에서 입학원서 발급과 접수를 관리해 응시생이 지원하는 대학으로 보내주는 ‘온라인 원스톱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도 있다.

이럴 경우 입학사정관제가 확대 시행되더라도 대학 입시 공동 관리의 책임도 보강되고 소요 예산도 줄어드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또한, 대학의 입시 전형 폭리 장사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입시 전형료는 입시 전형 비용으로만 지출하도록 법규로 묶어놓는다면 전형료 장사는 불가능해진다. 그렇게 되려면 교육 당국이 ‘사학의 로비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되고, 사학을 비호·유착해서도 안 된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전형료 환불의 명시적 근거를 확정했으면, 수험생의 권익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도록 이행 조치를 마무리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의 선택권을 존중한다는 미명하에 동일 차수에까지 지원 분야를 확대한 전형 방법도 학생의 특기 적성 분야에 맞게 적정 수의 지원 분야로 줄이면 전형료 시비는 자연히 줄어들게 된다. 수시 전형의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수시 원서 접수 시기와 수능 성적 발표 날짜를 연동시키는 방법도 가능한지 검토해볼 만하다.

공인 기관에서 대학 입학 전형료의 가이드라인 내지 상한선을 설정하고, 표준 전형료를 산정해 고시하면, 수험생을 대상으로 폭리를 취하는 입시 장사 장마당은 걷히게 된다. 그러면 해마다 인상된 입시 전형료의 고공 비행에도 제동이 걸릴 것이다. 수천억 원을 긁어모은 한국의 대학들에게 쏟아지던 각종 비난도 줄어들 것이다. 그동안의 과정으로 봐서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길 수가 없다면, 관리 감독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공동 입시 관리 기구 구성은 그래서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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