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극 속 ‘막장’ 캐릭터로 왜 ‘욕망의 화신’ 내세우나
  •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0.10.18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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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영된 드라마에서 드러난 악역의 공통점과 의미

 

▲ MBC 에 출연하고 있는 신은경·조민기·이순재(왼쪽부터).

이처럼 독한 캐릭터가 있을까. 시대극 <욕망의 불꽃>의 윤나영(신은경)이라는 인물 말이다. 싹은 어릴 때부터 보인다더니 이 꼬마 여자아이는 제 아버지에게 “내는 아버지보다 돈이 더 좋다!”라고 일찌감치 선언한다. 그 어린 나이에도 잘사는 아버지 친구, 태진(이순재)이 사돈을 맺자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이고, 그 대상이 자신이 아닌 언니 정숙(김희정)이라는 사실에 질투를 한다. 세월은 흘러 꼬마 여자애는 이제 어엿한 숙녀가 되었지만 그 긴 시간 동안 가슴 속에 활활 타오르는 ‘욕망의 불꽃’은 꺼지지 않고 오히려 더 뜨겁게 불타오른다. 아이를 가진 채 시골로 내려온 나영은 좋은 집안에 결혼하기 위해 심지어 모성애마저 저버린다. 아이를 지우려 안간힘을 쓰다가 아이를 영영 낳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옛 약속을 지키러 태진이 찾아오자 이 욕망에 불타는 나영은 언니 자리를 빼앗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언니 정숙을 짝사랑하는 준구(조진웅)를 부추겨 언니를 범하게 하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충격에 죽고, 나영은 이제 더 본격적으로 태진에게 접근해 결국 태진의 아들 영민(조민기)과 사랑 없는 결혼을 한다. 유학 생활 때문에 미국에 있는 영민을 찾아간 나영은 영민의 애인 인숙(엄수정)이 아이를 가진 것을 알게 된다. 거의 절망적인 상황일 수 있지만, 나영의 욕망은 이 절망마저 삼켜버린다.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된 자기 대신 인숙의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둔갑시키려는 것이다.

나영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욕망은 지금껏 많은 드라마가 다루어왔던 것보다 훨씬 강하다. 그녀는 가난한 아버지를 부정하고, 자신의 성공을 위해 언니를 밀어내며, 심지어 자식을 버린다. 사회적인 잣대로 바라보면 그녀는 패륜아이다. 게다가 결혼조차 그녀에게는 하나의 성공을 위한 통과 의례로 여겨진다. 타인의 자식을 자신의 아이로 둔갑시키는 것 역시 그 사랑 없는 결혼 생활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마련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이 희대의 악녀에 공분하다가도 어느 한 편으로는 측은함을 느끼게 되고 때로는 이해까지도 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이 드라마가 시대가 가진 아픔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가난이 싫다’는 이 나영이라는 캐릭터는 다름 아닌 개발 시대의 욕망이 극대화된 인물이다. 반인륜적인 그녀의 행동에 혀를 차다가도 어느 한 편으로 ‘오죽하면 저랬을까’ 하는 마음이 들게 된다. 물론 이 악녀는 결국에는 무너지게 되어 있지만 그 무너짐이 개발 시대의 끝자락에서 우리가 발견한 ‘성공이 행복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깨달음으로 확장된다는 점에서 어떤 진한 페이소스를 남기게 된다.

지난 시절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반영

이처럼 시대극 속의 막장 캐릭터들이 당대의 비뚤어진 욕망을 보여주는 것은 <욕망의 불꽃>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현재 우리네 시대극이 가진 하나의 경향이 되었다. 종영한 시대극 <제빵왕 김탁구>에서 서인숙(전인화)이라는 악녀는 남아 선호 사상과 지나친 혈연 의식이라는 1970~80년대 우리네 비뚤어진 자화상을 그려낸 인물이다. 물론 이 드라마는 제빵왕이 되려는 김탁구라는 인물의 성장 이야기가 주요 내용이지만, 그 기저에 깔린 갈등 상황들은 이 시대의 엇나간 욕망이 만들어내고 있다. 아들을 낳지 못한다고 구박당하는 며느리 서인숙은 결국 남편의 친구이자 비서실장인 한승재(정성모)와 불륜을 통해 아들 구마준(주원)을 낳게 되고, 남편이 밖에서 데리고 들어온 김탁구와 후계 다툼을 벌인다는 것이 그 갈등의 핵심이다. 따라서 서인숙이라는 인물의 욕망과 그 좌절은 한 시대를 엇나가게 만들었던 잘못된 혈연 의식으로 확장된다.

한편 SBS <자이언트>에서 조필연(정보석)이라는 캐릭터는 성공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조차 예사로 치부하는 악역 중의 악역이다. 그는 자식조차 자신의 성공을 위한 도구처럼 활용하는 비정함을 보인다. 이 캐릭터의 밑바탕에 깔린 시대 정서는 바로 1970~80년대에 걸쳐 있는 군사 문화이다. ‘안 되면 되게 하라’라는 이 시대의 모토에는, 도저히 인륜으로는 ‘돼서는 안 되는 일’을 우격다짐으로라도 되게 만들라는 시대의 명령이 담겨 있다.

오로지 성공에 대한 목표만 있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것이 마치 삶의 금과옥조인 양 제시되던 이 ‘개발의 정서’는 조필연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극명하게 그려진다. 강남이라는 부동산 신기루의 탄생과 그 밑바탕에 깔린 개발에 대한 욕망은 이 조필연이라는 희대의 악역이 가진 욕망으로 대변된다. 결국 무너지는 조필연의 운명은 허망한 성공의 끝자락에 놓인 파편화된 가족과 파괴된 자신을 발견하는 1990년대의 시대 정서(구제 금융 시대를 맞아 대마불패가 사라지고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던)와 맞닿아 있다.

사실 드라마 속의 악역이 당대의 욕망을 대변하는 것은 어찌 보면 공식화된 시대극의 작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시대극이란 과거를 되돌아보기 마련이고, 그 과거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때, 거기에 존재하는 악역은 그 시대의 어두운 욕망을 품기 마련이니까. 게다가 시대극은 다루는 시간적 배경은 과거이지만, 그것을 보는 시각은 현재이다. 즉,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들여다보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 달라진 가치관은 과거의 시대 정서를 비판적으로 담을 수밖에 없다. 한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졌던 남아 선호 사상이나,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용인되던 것들, 혹은 잘살겠다는 끝없는 성공에 대한 욕망 같은 것들이 지금 바라보면 시대를 역류한 행위들이었다는 것을 새삼 떠올리게 만드는 것은 시대극이 갖는 하나의 효용 가치이기도 하다.

따라서 시대극 속에 독하디 독한 악역이 존재한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우리가 겪어낸 시대의 아픔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토록 아등바등 살아왔던가 하는 회한이 이들 시대극 속에는 공기처럼 흐르고 있다. 그리고 한 발짝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이러한 시대 정서는 과거의 어느 것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말도 된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현재의 대중들이 시대극을 바라보며 여전히 통쾌함과 안타까움을 느낄까. 즉, 과거의 빗나간 발걸음으로 인해 지금도 엉뚱하게 걸어가고 있는 그 길을 이 시대극들은 극명한 악역들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과거에 대한 회한은 물론이고 지금 현재의 변화까지도 요구하고 있다. 욕망을 덕지덕지 붙인 시대극의 막장 캐릭터들은 그래서 그 자체로 지금의 대중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당신은 이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떤 시대의 길을 걸어갈 것인가.  

 희대의 악역을 명품 중견 연기자가 맡는 이유 

살펴보면 시대극에 등장하는 희대의 악역은 모두 이른바 명품 중견 연기자의 몫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빵왕 김탁구>의 전인화는 특유의 표독스런 연기로 대중들을 공분하게 만들었고, <자이언트>의 조필연은 그 살기 어린 눈빛으로 대중들을 소름끼치게 했다. <욕망의 불꽃>으로 돌아온 신은경이 주목받는 것은 살 떨리게 만드는 악역 연기 속에서도 어떤 욕망에 어쩔 줄 모르는 가련한 존재의 떨림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중견 연기자가 악역을 연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드라마에서 악역이 갖는 비중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시대극처럼 선악 구도가 명쾌한 드라마는 악역이 팽팽하게 설수록 극의 긴장감은 더 고조될 수 있다. 악역은 극적인 구조를 가지는 드라마에서는 어찌 보면 기둥 같은 역할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물론 결국 무너질 기둥이겠지만. 이런 중요성 때문에 현재의 악역은 중견 연기자의 섬세한 연기와 어우러져 심지어 공감까지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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