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의 ‘비공식’ 부인과 아들은…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10.18 16:0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씨 타계 후 일각에서 ‘미국 이민설’ 나돌아…“현재 둘째오빠와 함께 국내에 살고 있다” 제보도

 

▲ 2004년 11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내연녀 모자가 외출하고 있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시사저널 임준선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타계하면서 그의 가족들에 대한 관심이 새삼스럽게 부각되고 있다. 1997년 2월 남한으로 망명하면서, 북한에 남겨두고 온 부인과 2남1녀는 모두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망명 생활이 적적했을 1998년 2월, 그는 김철호 전 명성그룹 회장의 여동생으로 자신의 망명을 도왔던 김숙향씨(68)를 수양딸로 삼아 자신의 한국 호적에 올렸다. 김씨는 상주로서 ‘아버지’의 빈소를 지킨 남한에서의 유일한 ‘공식적’인 가족인 셈이다.

하지만 남한에는 황 전 비서의 ‘비공식적’인 가족이 또 있다.  망명 직후부터 국정원 내 안가(安家)에서 생활했던 황 전 비서는 2003년 8월 망명한 지 6년4개월 만에 국정원의 ‘특별 보호 대상’에서 벗어나 경찰의 경호를 받게 되었다. 그러면서 국정원을 나와 황 전 비서가 사망했던 곳인 ‘논현동 안가’에 새 둥지를 틀었다.

그즈음 기자는 사정 당국 주변에서 “황 전 비서가 망명한 이후 낳은 자식이 있다”라는 은밀한 소문이 나도는 정황을 포착했다. 당시 기자는 정부 고위 인사와 황 전 비서의 지인, 탈북자 고위 인사 등을 만나는 과정에서 황 전 비서의 ‘비공식 가족들’이 실존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단독 보도했다. 그때가 2004년 12월이었다.

황 전 비서의 핏줄은 지난 1998년 10월26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태어나 올해로 열두 살이 된 엄 아무개군이다. 엄군의 성이 ‘황씨’가 아닌 ‘엄씨’인 까닭은 엄군의 생모인 엄 아무개씨의 성을 따랐기 때문이다. 엄군은 황 전 비서가 아닌 엄씨의 호적 등본에 등재되어 있다. 엄군의 출생 비밀을 감출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엄씨 호적에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기자는 엄군을 직접 만날 수 있었는데, 엄마의 이름은 제대로 말했지만 아버지가 누군지는 모르는 듯했다. 첫눈에도 황 전 비서의 눈매를 빼닮았으며, 여느 일곱 살 아이들처럼 활달해 보였다. 

▲ 서울 논현동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안가. ⓒ시사저널 유장훈

엄군의 생모인 엄씨는 1961년 충북 괴산군 출생으로 올해 49세이다. 1923년생인 황 전 비서와는 무려 38세 차이가 난다. 엄씨의 가계도를 보면, 그녀는 3남2녀 가운데 막내이다. 부친은 지난 1981년 7월에, 모친은 1987년 8월에 사망했다. 이후 그녀는 큰오빠(72)의 호적에 등재되었다가, 아들인 엄군이 태어난 지 한 달 정도 지난 1998년 11월23일 큰오빠의 호적에서 분가했다. 그러면서 엄군을 자신의 호적에 올렸다.  

그렇다면 황 전 비서와 엄씨는 어떻게 처음 만나 아들까지 낳게 되었을까. 2004년 당시 기자가 접촉했던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황 전 비서가 망명해 우리나라로 들어온 다음 국정원 안가에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났다. 당시 황 전 비서의 밥을 해주는 등 수발을 들면서 황씨를 처음 알게 되어 아들을 낳게 되었다”라고 전했다.

▲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내연녀였던 ‘엄씨’가 소유하고 있는 서울 논현동 건물. ⓒ시사저널 유장훈

기자가 엄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04년 11월7일이었다. 엄씨가 운영하는 서울 논현동의 ㄷ식당 앞에서였다. ㄷ식당이 입주해 있는 건물(지하 1층, 지상 6층)과 토지는 엄씨 소유로, 2003년 5월부터 10월까지 황 전 비서의 개인 연구소도 이 건물에 있었다.

당시 기자가 신분만 밝힌 채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았는데도 엄씨는 다짜고짜 “할 말이 없다”라며 상당히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자리를 피했다. 다음 날 다시 ㄷ식당 앞에서 그녀를 만났다. 역시 기자가 질문도 하기 전에 “조용히 살려고 하는데 왜 그러느냐”라며 길거리에서 언성을 높였다. 기자가 “엄군이 황장엽 선생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왔다”라고 하자 “남의 사생활을 갖고 왜 그러느냐. 그분(황장엽)하고 상관있다면 그분한테 물어보라”라고 쏘아붙인 다음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그 자리를 피했다.

생전 황씨, 엄씨 모자 관련 질문에 발끈

이와 관련해 황 전 비서와는 엄씨를 처음 만난 지 한 달 정도 지난 2004년 12월6일 전화 통화를 했다. “엄 아무개씨를 잘 아느냐”라는 질문에 황 전 비서는 “알고 있다. 그 사람은 내 비서를 한 적이 있다. 나라의 정체성과 관련해 중요한 문제가 많은데 왜 당신네들은 그런 시시한 문제를 가지고 자꾸 얘기하나”라며 역정을 냈다. 기자가 “엄군이 황선생님의 아들이 맞지 않나”라고 묻자 “엄군인지 뭔지 얘기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거 왜 자꾸 물어보나”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황 전 비서는 당시 엄씨 모자와 관련해 ‘시시한 문제’라고 몇 차례 반복하며 애써 무시하려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풍겼다.

 황 전 비서가 타계할 때까지 거주했던 ‘논현동 안가’와 엄씨가 소유하고 있는 ‘논현동 건물’은 불과 1㎞ 정도 떨어져 있다. 도보로 1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두 사람이 쉽게 만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황 전 비서가 타계한 지금 엄씨 모자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일각에서 엄씨 모자의 미국 이민설이 제기되었지만 정보 당국 관계자는 “확인된 바 없다”라고 말했다.

▲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에 고인의 빈소 안내 사진이 보인다. ⓒ시사저널 유장훈

기자는 지난 10월13일 엄씨가 운영했던 ㄷ식당을 다시 찾아갔다. 이 식당은 2005년 10월부터 엄씨가 아닌 그녀의 큰언니(58)가 운영하고 있었다. 종업원들은 “사장님(엄씨의 큰언니)은 시장에 가서 지금 없다”라고 했다. 기자가 엄군의 생모인 엄씨의 근황을 묻자 “예전 사장님(엄씨)이 요즘은 가게에 자주 안 온다”라고만 말했다. 같은 날 저녁, 식당으로 전화를 걸어 기자 신분을 밝히며 “사장님(엄씨의 큰언니) 계시느냐”라고 묻자 전화를 받은 여성은 대뜸 화난 목소리로 “그런 사람 없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엄씨를 잘 아는 한 인사는 “엄씨는 한때 미국에 갔었지만 현재는 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둘째오빠(55)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는 국내에 거주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황 전 비서는 사실혼 관계였던 엄씨와 아들 엄군에 대해 ‘공식적으로’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채 눈을 감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