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불법 행위를 어떻게 단죄할 것인가
  • 조 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0.11.1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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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국가 범죄와 그 법적 청산의 기록

 

▲ 국가 범죄 / 이재승 지음 / 앨피 펴냄 / 728쪽│3만5천원

지난 10월29일 서울중앙지법은 민청학련 사건으로 처벌받은 장영달 전 의원 등 피해자와 친·인척 1백51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배상금과 이자 등 5백20억여 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법원은 “수사관이 구타와 고문, 외유와 협박 등 가혹 행위로 ‘민청학련을 구성하고 폭동을 모의했다’는 허위의 자백을 받아냈다. 이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지니는 국가가 오히려 가해자가 되어 당시 피고인과 그 가족에게 불법 행위를 저지른 것이므로 배상 의무가 있다”라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국가가 가해자, 즉 범죄자였다고 판결한 것이다. ‘국가범죄’는 법전에는 없는 말이다. 다만, 국가 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 유린 행위를 설명하는 용어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국가가 ‘가진 자들의 편에 서서 주변부를 누르는 악몽’일 수밖에 없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 시대의 책임자를 처벌하고 과거를 청산하는 일에 매진했던 교수가 ‘국가 범죄’의 법적 청산을 다룬 본격 연구서를 펴냈다. 각종 과거 청산 관련 위원회에 몸담아 우리 현대사의 난제들과 씨름한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이재승 교수는 “지난 10년간 이른바 ‘과거청산당’에 몸을 담았다. 그 활동 내역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라고 책머리에서 밝혔다. 독일 법철학자 라드브루흐 연구자인 저자는 과거 청산은 곧 인권의 문제이며, 과거 청산 작업은 인권의 관점에서 미래를 만드는 작업이라고 역설했다. 과거는 미래에 흔적을 남기며, 국가 범죄라는 악몽은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의 꿈속에 출몰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주 4·3사건에서부터 광주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군인들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 수십 년 동안 자행된 간첩 조작 사건, 정치적인 목적으로 자행된 감금·고문 사건들…. 이런 국가 범죄의 개념을 이해하려면 국가의 존립 이유라는 매우 근본적인 문제를 파고들지 않을 수 없다. 국가가 국민의 행복을 추구해 정책을 수행하는 기관인지, 권력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비호하는 조직인지 말이다.

국가 범죄는 때로는 정치적인 이유로, 때로는 국가 안보나 범죄와의 전쟁을 위해 ‘정당한 듯’ 자행된다. 국가주의자들은 국가 범죄를 비상사태 때 나타나는 불가피하고도 예외적 현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저자는 과거를 청산하려 싸우는 데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어떠한 정치 구조와 문화 속에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공공적인 의제 설정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국가 범죄는 일상적 사법 제도나 법 논리로 처리하기에는 합당치 않은 비상적인 한계 사례들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국가 범죄는 많은 경우 합법적으로 자행되기 때문에 윤리적·정치적·철학적 논쟁을 수반한다. 또한 그 처리 원칙이 중대한 정치적 의제로 떠오른다. 어떤 경우이든 국가 범죄의 처리 원칙은, 중대한 인권 침해 행위를 저지른 가해자가 져야 할 책임을 여러 가지 이유로 면제해주는 불처벌과의 투쟁으로 확립되었다”라며, 정책적 해법을 제안하는 데 주력했다.

국가 범죄의 주체에는 제한이 없다. 위기 상황에서는 군사 조직, 보안 경찰, 권력자의 조종을 받는 폭력 집단이나 민병대 등이 주로 자행한다. 평화 시에는 세련된 논리를 갖춘 법 장치들이 학살자의 역할을 조용히 수행한다. 국가 범죄가 꼭 공식적인 국가 기구나 국가의 후원을 받는 집단에 의해서만 자행되는 것은 아니다. 사기업이나 민간 조직조차 국가 범죄의 도구가 될 수 있기에, 국가는 어떠한 경우에도 제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적인 사회로 이행하려 할 때 반드시 치러야 할 투쟁이 국가 범죄를 상대로 한 싸움이다”라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과거 청산’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강운구-문학동네 제공

“나는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풍경의 안쪽에서 말들이 돋아나기를 바랐는데, 풍경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풍경은 미발생의 말들을 모두 끌어안은 채 적막강산이었다. 그래서 나는 말을 거느리고 풍경과 사물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현재의 이야기를 하겠다고 말했던 것 같기도 하다. 김훈 작가는 최근 <내 젊은 날의 숲> (문학동네 펴냄)에서 세밀화 그리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여주인공을 통해 ‘사람이 함께 열리고 깨어나고 열매 맺고 소통하는 장면’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펼쳐 보였다.

김작가는 이 책을 쓰기 전 다른 글에서 ‘화가가 팔레트 위에서 없었던 색을 빚어내듯이 이미지와 사유가 서로 스며서 태어나는 새로운 언어’를 구사하겠다고 말했다. 그런 언어로 피어나는 새로운 풍경을 그려서 보여주겠다고도 했다. 그리고 ‘삶의 일상성과 구체성을 추수하듯이 챙기는 글’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이번 책은 그런 노력이 만든 결실을 추수해낸 것처럼 보인다. “풀을 들여다보면서, 내 몸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식물들의 시간을 나는 느꼈다. 색깔들이 물안개로 피어나는 시간이었다”라면서 김작가가 그려내는 새로운 풍경 안에서, 독자들은 사람이 태어나고 만나고 관계 짓고 헤어지고 역시 스러지는 모든 순간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그는 또 고백했다. “돌이켜보니, 나는 단 한 번도 ‘사랑’이나 ‘희망’ 같은 단어들을 써본 적이 없다. 중생의 말로 ‘사랑’이라고 쓸 때, 그 두 글자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부재와 결핍을 드러내는 꼴이 될 것 같아서 겁 많은 나는 저어했던 모양이다. 그토록 덧없는 것들이 이 무인지경의 적막강산에 한 뼘의 근거지를 만들고 은신처를 파기 위해서는 사랑을 거듭 말할 수밖에 없을 터이니, 사랑이야말로 이 덧없는 것들의 중대 사업이 아닐 것인가. … 여생의 시간들이, 사랑과 희망이 말하여지는 날들이기를 나는 갈구한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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