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시한폭탄 숨기고 포장엔 ‘가족극’이라 쓰다
  •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0.11.1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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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부 드라마, 주제와 달리 전개 과정에 문제점 많아

 

▲ SBS 드라마 ⓒSBS 제공

이제 ‘막장 드라마’라는 말은 흔해져버렸다. 심지어 ‘명품 막장’이라는 기묘한 조어(造語)까지 나온다. 그만큼 이제는 막장 드라마 자체를 즐기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는 얘기이다. 막장 드라마를 즐기며 보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은 김순옥 작가의 <아내의 유혹>에서부터다. 그 이전에는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 혹은 ‘논란 드라마’라고 불렸지만 <아내의 유혹>에 이르러 우리는 그 막장스러운 전개 자체를 즐기는 단계에 도달했다. 얼굴에 점 하나 붙이고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인 척하는 것이 용인된 것은 그 때문이다.

바로 그 김순옥 작가가 새로운 드라마를 들고 나왔다. 이번에는 막장이 아니란다. 주말드라마인 데다 제목부터가 <웃어요, 엄마>이다. 그런데 과연 이 드라마는 달랐을까. 첫 회에서부터 독하디 독한 김순옥표 독기가 뿜어져 나왔다. 드라마는 엄마 조복희(이미숙)의 성공에 대한 욕망 때문에 자신의 삶은 늘 뒷전으로 살아온 여배우 신달래(강민경)가 결국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지만 모두가 보는 환영 파티에서 트로피를 부숴버리고 그것으로 손목을 그은 후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으로 시작되었다. 바로 그 장면에 신달래가 마지막으로 뱉은 말이 ‘웃어요, 엄마’이다. 그러니 이 드라마의 제목은 생각만큼 잔잔한 것이 아니다. 죽음을 향해 딸이 몸을 던지며 엄마에게 던지는 말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조복희가 딸을 여배우로 성공시키기 위해 하는 짓들은 비정상적이다. 심지어 강간당할 뻔한 딸의 상황을 알아차리고서도 성공을 위해 묵인하려는 엄마의 모습은 모성애마저 부정하는 욕망의 극단을 그려낸다. 물론 김순옥 작가가 말한 것처럼 이 드라마는 전작과는 달리 가족극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이 드라마는 세 명의 엄마를 통해 엄마들의 삶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조복희는 딸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자신의 빗나간 욕망을 투사하는 엄마이고, 강신영(윤정희)은 남편과 가족을 위해 헌신하지만 결국 헌신짝처럼 버려진 후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엄마이며, 윤민주(지수원)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후 일에 몰두하느라 가족과 소원해져버린 엄마이다. 결국 이들이 어떻게 가족과 화해해가느냐가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김순옥 작가가 말했듯이, 불륜이나 폭력적인 상황이 등장하는 것만을 가지고 이 드라마를 막장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웃어요, 엄마>는 상황뿐만이 아니라 김순옥 작가의 전작에서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의 과도한 행동으로 넘쳐난다. 세상에 저런 엄마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극단화된 조복희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툭하면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대고, 윤민주는 과도할 정도로 일에만 집착하고, 반대로 강신영은 지나칠 정도로 헌신적이다. 이렇게 극단화된 인물은 바로 그 점 때문에 살아 있는 인물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조종되는 마리오네트로 보인다. 극 중 인물들이 끊임없이 독백을 하는 바람에 마치 연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는, 이 이해될 수 없는 인물이 자연스럽게 상황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그것을 채워 넣으려는 작가의 욕구처럼 보인다. 결국 인터뷰를 통해 막장이 아니고 가족극이라고 했지만, 이 말은 오히려 더 위험한 말로 들린다. 가족극 속에 막장이라는 시한폭탄이 숨겨진 셈이다.

드라마의 얼개는 탄탄하지만…

MBC 주말극 <욕망의 불꽃>은 분명히, 얼개가 느슨하기 이를 데 없는 <웃어요, 엄마>와는 궤를 달리한다. 김순옥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이 작품은 불륜과 자살과 폭력이 넘쳐나지만 막장은 아닌 드라마임이 분명하다. 초반부에 일찍부터 강간 설정이 등장하고, 언니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동생의 가족 관계를 넘어서는 과도한 욕망이 전면에 그려지면서, 살인까지 버젓이 등장하지만 드라마의 얼개는 탄탄한 편이다. 이것은 수목드라마로 새롭게 자리한 <즐거운 나의 집>도 마찬가지다. 불륜과 살인이 전면에 등장하지만 이 역시 심리 스릴러라는 새로운 요소를 통해 오히려 부부와 가정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드라마이다. 소재는 자극적인데 그 소재를 완성도 높게 짜놓은 작품인 셈이다. 하지만 완성도가 높다는 것으로 이 모든 자극적인 인물의 독하디 독한 말과 대사를 시청자에게 뿜어대는 것의 면죄부가 될까.

물론 불륜이니 살인이니 하는 소재는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등장하던 단골 소재로서 인간 본성에 관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매체이다. 이런 소재가 성인 연극에 올려지거나 영화로 상영되거나 혹은 문학 작품을 통해 표현되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TV라는 매체, 그것도 드라마라는 틀은 다르다. 아무리 연령 제한을 부여한다고 하더라도 TV는 그 성격상 모든 연령에서 접근이 용이한 매체이다. 게다가 드라마는 그 판타지적인 속성이 어린 시청자들에게는 현실과 혼동을 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이런 청소년에게 미치는 파장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드라마라는 틀만이 가진 연속극적인 속성에 관한 것이다. 드라마는 영화와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보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영화는 아무리 자극적인 소재를 끌어온다고 해도 그 전체적인 메시지가 분명하다면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예를 들어 <색, 계> 같은 작품이 그렇다), 드라마는 매주 편편이 끊어지기 때문에 주제 의식은 마지막회까지 미루어질 수밖에 없다. 즉, 드라마가 영향력을 갖는 것은 그 과정이지 마지막 결과는 아니라는 얘기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들이 드러난다. 드라마는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매번 노출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과정 지향적인 드라마에 매회 독설 난무해서야

이른바 ‘공감학’의 입장에서 보면 드라마 속에서 한 인물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독하디 독한 말을 뿜어낼 때, 감정 이입된 시청자들은 그 자체로 내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 내상은 드라마를 중독적으로 보게 만드는 의도적인 상처임에는 틀림없다. 그 정도가 수위를 넘지 않는다면 드라마가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한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도를 넘는다면 어떨까. 아무리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쳐다보아도, 또 결국은 권선징악으로 끝난다 하더라도 어딘지 마음 한 구석에 찜찜함이 남을 수밖에 없다. 20부작 드라마에서 19부가 독하고 마지막 1부가 착하다고 해서 정당화될 수 있는 드라마는 없다. 게다가 몇 부를 보고 결론을 보지 못하기 일쑤인 시청자들에게 이런 드라마는 그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인물로만 기억될 뿐이다. 막장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매회 독하디 독한 인물의 독설이 난무하는 드라마가 문제로 제기될 수 있는 것은 바로 드라마가 가진 이 과정 지향적인 성격 때문이다.  


 ‘욕하면서도 봐야 했던’ 막장 드라마의 계보

사실 막장 드라마라는 지칭 이전에 ‘논란 드라마’라는 말이 있었다. 대표적인 작가는 임성한, 문영남, 서영명. 임성한 작가의 <하늘이시여>는 친엄마가 딸을 며느리로 들이는 등의 설정으로 수많은 논란을 남기면서도 많은 시청자의 관심을 끌었다. 문영남 작가는 <소문난 칠공주>에서 그 전조를 보인 후에 본격적으로 <조강지처 클럽>과 <수상한 삼형제>를 통해 자극적인 드라마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한편 논란 드라마의 원조라고 하는 서영명 작가는 <밥줘>라는 드라마를 통해 정점을 찍었다. 방송사마저 혀를 내두르는 작가로 서게 된 것이다. 이들 다음 세대로 등장한 이가 김순옥 작가로서 그녀는 <아내의 유혹> <천사의 유혹>으로 막장의 새로운 계보를 썼다. 최근 들어 이른바 막장 드라마는 그 사회적인 논란 덕분에 수그러들고 있지만, 막장 드라마가 갖는 자극적인 설정들은 잘 만들어진 완성도 높은 드라마 속으로 스며들어오고 있다. <제빵왕 김탁구>에 이은 <욕망의 불꽃> <즐거운 나의 집> 같은 작품은 그 새로운 계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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