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장막 걷히니 세계가 낯 뜨겁다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0.12.0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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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살 테러로 인해 차량이 폭발하는 모습. ⓒAP연합

폭로 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가 최근 공개한 미국 국무부 외교 전문 25만여 건이 지구촌을 크게 흔들고 있다. 이 전문 속에는 민감한 외교 사안에 관한 비밀 대화와 각국 지도자들에 대한 ‘뒷담화’까지 담겨 있어 놀라움을 주고 있다. 세계 외교의 ‘판도라 상자’를 열어젖힌 위키리크스는 어떤 곳이며, 공개된 내용은 무엇인지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일개 민간 사이트지만 파급력은 ‘일개’가 아니다. 위키리크스가 최근 발표한 25만여 건의 미국 국무부 외교 전문은 전세계를 뒤흔들었다. 방대한 국가 기밀을 입수해 폭로한 위키리크스의 능력에 대한 놀라움과 함께 어두운 외교 이면을 들켜버린 각국 정부의 당황스러움이 미묘하게 섞였다.

줄리안 어샌지. 위키리크스의 창립자인 그는 ‘진실을 쫓는 행동가’로, 혹은 ‘인터넷 시대의 무정부주의자’로 불린다. 1971년 호주 타운즈빌에서 태어난 그는, 학교보다는 도서관을 좋아했고 교과서보다는 카프카를 즐겨 읽었다. 14세가 될 때까지 37번 거주지를 옮겼고 정식 학교 교육 대신 집에서 교육을 받았다. 컴퓨터 해킹도 독학으로 배웠다. 16세 때 첫 해킹을 시도했던 어샌지는 1991년 스무 살 때 자신의 해커 친구와 함께 캐나다 한 통신회사의 네트워크 단말기에 침입했다가 체포되었다. 이후 멜버른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지만 곧 중퇴했다.

위키리크스는 2009년 다국적 해운 기업 토라피규라(Trafigura)가 코트디부아르 유독 폐기물을 불법 투기하는 내부 자료를 공개하면서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 최대의 특종은 2007년 7월 미군의 공격 헬기가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 기자와 시민을 향해 총격하는 공중 촬영 영상을 지난 4월 공개한 것이었다. 관타나모 수용 시설의 운영 실태와 지구온난화 문제의 세계적인 연구 기관인 영국 이스트앵글 대학의 기후연구소(Climatic Research Unit, CRU) 연구자들이 데이터를 변조했다는 이메일 증거를 내놓은 곳도 위키리크스였다.

“위키리크스가 입수한 한국 관련 문서 수천 건”

자원봉사와 기부된 자금으로 굴러가는 위키리크스는 운영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어샌지는 위키리크스를 벤처와 비교한다. “스스로의 성장을 따라갈 수 없다”라는 문제와 부딪치면서 딜레마를 겪는다는 이야기이다. 자원봉사자와 자금은 늘어나야 하지만 조직의 성격상 믿을 수 있는 사람과 돈이어야 하기 때문에 위키리크스의 성장은 더딜 수밖에 없다.

위키리크스가 다룬 세계의 이면은 세계 주요 언론에 의해 공개되면서 신빙성을 얻고 있다. 여기에는 우리에게 민감한 한반도 문제도 언급되고 있다. 중국이 한국을 배제하고 북한과 미국 사이에 중재를 서서 3자 회담을 추진한 내용,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의 북한 새 미사일 기지가 대포동 발사 기지보다 크다는 설명, 북한 고위 외교관 다수 망명설 등 민감한 내용들이 국내 정치에 미묘한 파장을 불러왔다.

재미 언론인 안치용씨에 따르면 위키리크스가 입수한 한국 관련 외교 문서는 수천 건인데, 그중 2007년 대선 당시 문서만도 4백80여 건에 달한다고 한다. 이른바 ‘백성학 간첩 의혹 사건’과 BBK 등 당시 대형 정치 이슈들이 외교 문서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커 앞으로 계속해서 열릴(어쩌면 닫힐지도 모르지만) 정보가 어쩌면 국내 정치권에 큰 파장을 부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거물들의 수난이 이어지고 있다. 위키리크스에 언급된 세계 지도자들은 적극적으로 반박하거나, 무시하거나, 혹은 웃어넘겼지만 아픈 곳을 찔린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 외교 공관의 외교 전문에는 상대국들 정상에 대한 평가들이 담겨 있다. 주관적 평가, 사생활 그리고 비리까지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세계 각국 정상들의 이야기를 모았다.



1 │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의 ‘로빈’이다. ‘로빈’은 ‘배트맨’의 조수. 로빈을 부리는 배트맨은 푸틴 총리이다. 지난 2010년 2월8일,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러시아의 민주주의가 사라졌으며, 정보 기관에 의한 과두 지배 정부이다”라고 말했다. 게이츠 국방장관은 “메드베데프는 푸틴보다는 더 실용적인 사람이지만 실제로는 변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다”라고 프랑스 관계자에게 말했다.

2010년 2월25일, 윌리엄 번즈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은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의 발언을 보고했다. 알리예프 대통령은 “메드베데프는 자기 주위의 사람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러시아 관료는 메드베데프를 리더로 인식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메드베데프가 정책을 결정하는 데 승낙이 더 필요한 경우도 있었고 아마도 총리실 같은 다른 집단에 의해 좌절된 경우도 알리예프는 보았다고 했다. 외교 전문은 “알리예프는 팀 내 두 인물 사이에 강한 대립의 신호가 있다고 말했다”라고 덧붙였다.


2 │ 무하마드 카다피 리비아 대통령

카다피 대통령은 매우 ‘변덕스러운 사람’이다. 게다가 카다피 대통령은 네 명의 우크라이나 출신 간호사에게 꽤 의존하고 있는데 그중 한 명인 38세의 매우 육감적인 금발 미녀와는 로맨틱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관료들은 “그가 카다피가 가는 모든 곳에 함께 간다고 전했다”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또 다른 외교 전문은 카다피를 이렇게 묘사했다. “높은 층을 매우 두려워해 항상 1층에 머무른다. 8시간 이상의 비행을 싫어한다. 경마와 플라멩코(스페인의 정열적인 춤)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3 │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 
한 외교 전문은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을 ‘히틀러’라고 표현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미국뿐만이 아니다. 아랍권 역시 이란을 골치 아파했다. 다른 전문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이집트는 이란을 두고 ‘악’이라고 말했고 ‘실재하는 위협’이라고 표현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 국왕은 이란을 군사적으로 공격할 것을 요구했고, 아델 알주베이르 주미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가 미국 대사관에 “국왕이 뱀의 머리(이란)를 제거하라고 말했다”라고 보고했다. 요르단과 바레인 당국자들 역시 군사 수단을 행사해서라도 이란의 핵개발을 저지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4 │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벌거벗은 임금님.’ 외교 전문은 사르코지 대통령을 이렇게 빗댄다. 주변 참모들이 진언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파리 주재 미국 외교관은 사르코지 대통령을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미국과 가장 친밀한 대통령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미국을 좋아하는 것은 본능적이다.”2007년의 외교 전문에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이혼 관련 보고가 올라오기도 했다.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세실리아(전 부인)와 이혼한 뒤로 평정심을 잃을까 걱정된다”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5 │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 
로마에서 워싱턴으로 전해진 한 외교 전문은 베를루스코니 총리를 ‘신체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약한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그의 파티광(狂)적인 기질도 지적했다. “늦은 밤의 파티를 자주 즐기느라 충분한 휴식조차 취하지 않는다”라고 꼬집었다.  

외교 전문은 베를루스코니가 “자만심이 강하고, 현대 유럽의 리더로서는 적합하지 않다”라고 평가했다. 다른 수많은 외교 전문에는 베를루스코니와 푸틴 총리 사이가 매우 가까워졌음을 언급하고 있는데, 한 외교 전문은 베를루스코니를 “유럽 내 푸틴의 대변인이다”라고 적고 있다.


6 │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두고 ‘뇌졸중으로 고통받는 무기력해진 늙은이(flabby old chap)’라고 빗댔다. 반면 북한에 꽤 영향력이 있는 한 여성 사업가는 김위원장과의 면담 결과를 선양 주재 미국 총영사관에 알렸는데, 그 내용이 상반된다. 그녀는 “김위원장의 건강은 좋아 보였고 정신도 또렷했다. 카리스마도 있었으며, 기억력이 좋은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라고 전했다. 김위원장은 여성 사업가와의 식사 자리에서 줄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7 │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매우 나약한 인물’이라는 것으로 모아진다. 외교 전문에 따르면 “하미드 대통령은 사실을 들으려 하지 않는 대신 기이한 이야기에 쉽게 마음이 흔들리고는 한다”라고 전했다.  

2009년 10월의 다른 외교 전문은 미국 관료가 아프가니스탄 남부 주의회의 수장이자 카르자이 대통령의 의붓형제인 아흐마드 왈리 카르자이를 만났는데, 그를 ‘선거의 의미를 의심하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부패에 관한 전문도 볼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워싱턴으로 전해진 비밀 메시지는 “전 부통령이었던 아흐메드 지아 마수드 부통령이 5천만 달러 이상의 유동 자산을 들고 도망갔다”는데, 카르자이 대통령이 이를 방관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8 │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
 

미국 외교관이 바라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의 정부 내 인물들은 정치 이해 수준이 떨어지고 아첨을 일삼으며 무능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게다가 현직 총리의 비리도 언급된다. 2004년 12월30일 에릭 에덜먼 당시 미국 대사가 보낸 외교 전문은 에르도안 총리의 금품 수수 의혹을 본국에 보고했다. 이에 따르면 “두 사람의 정보원이 에르도안 총리가 스위스 은행에 8개의 계좌가 있다고 말해주었다. 아들 결혼식 때 받은 선물들로부터 시작되며 터키의 한 사업가가 아들의 미국 유학비를 후원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터키의 미래에 관한 언급도 나온다. 앙카라 소재 주미 대사관의 외교관은 터키가 ‘유럽연합(EU)의 가입국’이 되기보다는 ‘이슬람의 일원’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9 │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2008년 작성된 전문에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호화 생활이 담겨 있다. 클럽하우스를 갖춘 실내·외 승마장이 등장하고 터키 등 국외에 있는 별장이 나온다.  

카자흐스탄의 권력자들도 등장한다. 이들은 상당한 재력을 뽐낸다. 특히 대통령의 친·인척인 나자르바예프의 둘째사위는 자신의 생일 파티에 100만 파운드의 행사료를 지불하고 세계적인 팝스타 엘튼 존을 불러 ‘행사’를 뛰게 하기도 했다



ⓒAP연합
줄리안 어샌지(사진)는 “위키리크스가 받는 정보는 기본적으로 내부 고발에 의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내부 고발이 들어오면 먼저 그것을 확인하는 작업이 시작된다. 해킹을 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직접 현장에 가서 확인을 시도한다. 지난 4월 이라크에서 미군 헬기가 민간인을 공격하는 동영상을 공개했을 때는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두 명의 활동가(전체 활동가의 숫자는 베일에 싸여 있다)가 직접 이라크로 가 추적 조사를 하기도 했다.

내부 고발에 대해서는 철저히 비밀을 유지하므로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정보를 확인하는 작업과 더불어 내부 고발자를 철저히 은닉하기 때문에 위키리크스가 내부 고발 사이트로서 권위를 가지고 있다”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위키리크스 내부에서도 내부 고발자의 신원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보 접수를 받는 창구도 하나가 아니다. 정보 제공자를 보호하는 형태를 갖춘 창구가 여러 개 설치되어 있다. 정보원이 드러날지도 모르는 중앙 서버는 개인정보 보호 조치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스웨덴에 있다. 서버의 접근 기록을 쉽게 더듬을 수 없도록 암호화 작업도 되어 있다. 때로는 인터넷이 아닌 우편 등 전통적인 방법으로 정보를 제공받기도 한다.

위키리크스에 기밀을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은 브래들리 매닝 전 미군 일병(23)이 유일하다. 이라크 주둔 사단에서 정보분석병으로 근무하던 매닝은 지난 5월 미군 헬기의 민간인 공격 동영상을 위키리크스에 제공한 혐의로 체포되었고, 현재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와이어드(Wired.com)’의 보도에 따르면, 매닝 일병의 검거는 정보원이 노출된 탓이 아니라 본인의 실수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민간인 공격 동영상이 공개된 직후에 매닝은 ‘내가 이 정보를 호주인(어샌지는 호주 사람이다)에게 건넸다’라고 다른 친구에게 공개하면서 이 사실이 알려졌다. 크리스틴 흐라픈손 위키리크스 대변인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자료 제공자에게 길을 열어줄 뿐 출처에 대해서는 절대 관여하지 않는다. 매닝이 정보 제공자인지 나는 전혀 모르지만 만약 그가 맞다면 그는 나의 영웅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미국 외교 전문의 유출은 사안별 사실 확인이 아니라 광범위한 수집에 가깝다. 일종의 해킹을 통해 정보를 모은 것으로 보인다. 독일의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이번 외교 전문 유출의 정보원은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이다. 외교 전문을 공유하기 위해 사용한 국방부 전산망인 ‘시프르넷(SiprNet)’에는 약 2백50만명의 미국 공무원이 PC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라고 보도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12월1일 ‘군’이 정보 유출의 근원지로 밝혀지자 정보 공유를 중단하기로 결정했고, 어샌지는 최근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정보의 출처를 묻는 질문에 “우리는 취재원을 보호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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