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든 <시> 한 편 덕에 충무로는 시시하지 않았네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0.12.2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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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영화계 결산 / 주목된 영화인은 감독 이창동·배우 원빈

2010년 영화계에서는 어떤 작품과 어떤 영화인이 주목받았을까. <시사저널> 필진과 영화평론가 여덟 명에게 각각 올해 두드러진 성취를 이룬 세 편의 영화와 세 명의 영화인을 추천받았다.

영화는 <시> <소셜네트워크>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악마를 보았다> <부당거래>가 올해의 영화로 거명되었다. 이 가운데 압도적인 지목률을 보인 것은 이창동 감독의 <시>였다. 무려 여섯 명이 올해의 영화로 꼽았고, 올해의 영화인으로 이감독을 뽑은 이도 세 명으로 모두 9표를 획득했다. “칸은 이 영화에 더 큰 상을 줬어야 했다”(전찬일)라거나 “예술이란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세상에 만연한 윤리적 불감증을 견딜 수 없어 하는 지점에서 나온다는 것을 설파하는 작품”(황진미)이라는 상찬이 이어졌다.

▲ 국내 개봉된 외화 중에서 돋보인 ⓒ소니픽쳐스릴리징 제공

외화 중에는 <소셜네트워크>가 최고의 평점을 받았다. 세 표를 얻어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와 공동 2위에 올랐지만 감독 데이비드 핀처와 주연 배우가 올해의 영화인 부문에서 각각 두 표와 한 표를 얻어 모두 여섯 표를 얻었다. “전형적일 수도 있는 20대 사업가의 성공담에 방점을 찍는 대신 고립된 20대의 외로움에 방점을 찍어 놀라운 영화로 만들어 냈다”(김종철)라는 평을 들었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작품과 감독과 배우에 골고루 표가 돌아갔다. 영화는 한 표를 얻는 데 그쳤지만 신인 장철수 감독과 주연 배우 서영희는 올해의 영화인 부문에서 각각 두 표씩을 얻어 모두 다섯 표를 획득했다. 장감독은 거의 모든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휩쓸었고, 오랜 조연 배우 생활을 거친 서영희는 국내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뚝심 있는 연출력으로 장르의 규칙을 따라가면서도 나중에는 장르의 규칙을 뒤집어버린다”(라제기)라는 평가를 얻었다.

‘김지운+이병헌+최민식’의 <악마를…> 화제 만발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는 올해의 영화 부문에서 세 표, 주연 배우인 최민식이 올해의 영화인 부문에서 한 표를 얻어 총 네 표를 얻었다.

‘김지운+이병헌+최민식’이라는 한국 주류 상업 영화의 최강 브랜드만 믿고 극장을 찾았던 일반 관객들은 이 영화에 ‘지독하다’ 또는 ‘엽기적이다’라고 반응했지만, B급 영화 신봉자들은 엄청나게 지지했다. “이렇게 멋스럽게 나온 고어 영화는 이전에 없었다. 신체 훼손 자체가 인물의 감정에 따라 터지는 일종의 액션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더 강하게 느껴졌다.”(김종철)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영화 신동으로 불리던 류승완 감독은 지난 몇 년간 하향 곡선을 타다가 올해 감독작 <부당거래>와 프로듀서를 맡은 <해결사>를 통해 더 강하게 부활했다. <부당거래>로 영화도 두 표, 감독도 두 표를 얻었다. “어둡고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다루면서도 비관주의에 빠지거나 오버하지 않고 딱 중간 지점에서 바라본다. 단역조차 대단한 기량을 발휘한 배우의 연기는 감독의 역량이다.”(김형석)

올해의 영화인 부문에서는 이창동 감독과 영화 <아저씨>를 통해 액션 배우로도 존재감을 알린 원빈이 각각 세 표를 얻어 공동 1위에 올랐다. 원빈에 대해 “연기파 배우가 한국 영화를 이끌어 왔었는데 이제 스타성 있는 배우가 한국 영화를 이끌어가는 시작점 노릇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이용철)라는 평이 나왔다.

이어서 배우 강동원, 장철수 감독, 류승완 감독, 배우 서영희, 데이빗 핀처 감독, 배우 송새벽 등이 공동 3위에 올랐다. 특히 “이전에 없었던 배우이다”(최광희)라는 평까지 끌어낸 송새벽은 단연 ‘올해의 발견’감이다.    

설문에 응해주신 분
영화평론가│전찬일·황진미·이지선·김종철·이용철·최광희·김형석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 담당 기자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아내가 살인 혐의로 체포당했다. 모든 증거와 정황은 아내가 범인이라고 말한다. 재심 청구도 해보고 대법원 상고도 해보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아내에게 떨어진 형량은 종신형. 이제 아내를 만날 수 있는 길은 잠깐의 면회밖에 없다. 아들은 점점 엄마를 경원시하고, 주변의 어느 누구도 아내가 무죄라고 믿지 않는다.  

아마도 보통의 남자였다면 아내를 포기했을 절망적 상황이다. 그러나 <쓰리 데이즈>의 남자 존(러셀 크로우)은 포기 대신 ‘프리즌 브레이크’, 탈옥을 선택한다. 이런 무모한 결심을 정당화시키는 이유는 사랑이다. 존은 전설적인 탈옥의 대가 데이먼(리암 니슨)을 찾아가 조언을 구한 뒤 차근차근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물론 그 과정이 쉬울 리 없다. 직장과 아이를 내팽개치다시피 하고 탈옥 계획에 몰두하다 보니 일상은 엉망이 되어간다.

영화는 이 피폐한 러브 스토리를 위해 건장한 마초의 전형이었던 러셀 크로우를 완벽한 ‘아저씨’로 변신시킨다. 희끗한 머리카락,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 그리고 불룩 나온 배를 하고 동분서주하는 러셀 크로우의 모습은 절박한 아저씨 그 자체이다. 험난한 준비 과정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적어도 그가 총을 들기 전까지는 그렇다.

감독 폴 해기스는 이전의 습관대로 스토리를 차곡차곡 쌓아 올려 막판에 폭발시킨다. 오랜 준비 끝에 감행하는 탈옥의 긴장감을 높이려는 계산이었을 테다. 하지만 준비가 과하게 길었다. 현재로 시작해 과거부터 거슬러 올라오는 구성이 흥미를 유발시키기는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1시간이 지나도록 계획하고 실패하는 모습만 보는 것은 주인공에게나 관객에게나 모두 지난한 일이다. 사전에 이들 부부가 얼마나 애틋했는지를 제시하지 않은 탓에 러셀 크로우의 애절하기 짝이 없는 사랑은 맹목적으로만 보인다. 안쓰러운 그의 사랑을 보며 그를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좀 말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면, 이것은 연출상의 실패가 아닐까? 우정 출연한 리암 니슨을 포스터에 떡 하니 공동 주연으로 올려 놓은 홍보의 ‘실수’는 영화가 주는 이런 아쉬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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