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남·까도남’ 사랑받고 살벌해진 ‘악당’도 인기
  • 하재근│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0.12.20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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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TV 속 캐릭터 열전 / 여배우들은 화제성에서 뒤처져

 

▲ KBS ⓒKBS 제공

올해 드라마의 캐릭터를 돌아본다면 제일 먼저 ‘짐승남’을 떠올리게 된다. 올 초에 방영된 <추노>에서 근육질 상반신으로 화끈한 액션을 소화하는 캐릭터가 짐승남 열풍을 일으켰었다. 그것은 2PM 등 짐승남 콘셉트의 남자 아이돌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낳았다. 여자는 청순 글래머에 꿀벅지, 남자는 짐승남이었던 것이다. 한국의 짐승남 아이돌은 요즘 일본에 진출하며 해외에까지 짐승남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추노>의 대표 짐승남은 장혁이었다. 장혁은 야성이 살아 있는 몸과 처절한 연기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장혁 이외에는 누구도 그 역할을 그렇게 소화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추노>는 완성도나 주제 의식 면에서 2010년 최고의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올해 KBS에는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한 <제빵왕 김탁구>나 <수상한 삼형제> 등이 있었지만, 배우의 카리스마와 작품의 의미까지 고려했을 때 장혁에게 KBS 연기대상이 가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부드러운 꽃미남 캐릭터의 공세도 있었는데,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이승기와 <성균관 스캔들>의 송중기를 꼽을 수 있다. 이승기는 이 작품을 통해 흥행 배우의 입지를 다지면서 당대에 가장 사랑스러운 남자로서 아성을 쌓았다. 송중기는 떠오르는 꽃미남으로 화장품 CF에 가장 어울리는 남자가 되었다. 열풍은 짐승남이었지만, 여심을 사로잡는 실속은 꽃미남들이 챙긴 듯하다.

후반기에는 ‘까도남’ 신드롬이 일어났다. 까칠하고 도도한 남자라는 이 신조어는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과 함께 여심을 사로잡는 또 다른 코드가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은 <시크릿 가든>의 현빈이다. 한국의 여성들은 연말에 ‘현빈앓이’에 빠졌다. 이 작품이 너무 늦게 시작된 것이 현빈에게는 아까운 일이다. 연기대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까도남·차도남 계열에는 <성균관 스캔들>의 믹키유천과 <파스타>의 이선균도 꼽을 수 있겠다.

흑기사 캐릭터도 인기를 끌었다. <검사 프린세스>의 박시후가 전반기 대표 흑기사였다면, <성균관 스캔들>의 유아인은 후반기를 대표하는 흑기사라고 할 수 있다. 박시후는 ‘서변앓이’, 유아인은 ‘걸오앓이’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차도남이나 까도남도 은근히 흑기사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흑기사들은 대체로 잘생겼다는 공통점도 있다. 결국 여심은 의지할 수 있는, 능력 있고 잘생긴 남자에게 꽂혔다.

화려한 남자 캐릭터에 비해 여자 캐릭터는 조금 약하다. 올해 영화계에서는 남자의 독주가 특징이었는데 드라마 부문도 비슷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시청자의 지지를 받았던 ‘사랑스러운 여자’ 캐릭터로는 <파스타>의 공효진,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신민아, <신데렐라 언니>의 문근영, <부자의 탄생>의 이시영, <시크릿 가든>의 하지원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이들이 사랑을 받기는 했지만 남자들에 비해 화제성 면에서는 확실히 약했다.

<수상한 삼형제>는 ‘어처구니없는 인물’ 단체로 배출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 혹은 악당 캐릭터도 인기를 모았다. <공부의 신>의 김수로와 <대물>의 고현정이 각각 전·후반기 리더 캐릭터이다. 특히 고현정은 작품 초반에 엄청난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연기대상 2연패를 기대하게 했지만, 중반 이후 힘이 빠져서 아쉬웠다. 악당으로는 <자이언트>의 정보석, <제빵왕 김탁구>의 전인화, <동이>의 이소연 등이 강렬했다. 특히 정보석의 독기가 살벌했었는데, 그에 따라 같은 드라마의 주연인 이범수와 함께 정보석도 강력한 SBS 연기대상 후보로 떠올랐다. 둘 중 누가 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구도이다.

조연인데도 시청자를 열광하게 한 ‘미친 존재감’ 캐릭터도 있었다. <추노>의 성동일이 대표적이다. 그는 그리 많이 등장하지 않았는데도 그야말로 ‘미친 존재감’으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추노>에서 장혁 다음으로 가장 많이 사랑받은 캐릭터가 바로 그였다. <개인의 취향>에서 천연덕스러운 게이 역할로 사랑받은 류승룡도 빼놓을 수 없다. 또, 조연으로 나와 작품마다 일찍 죽었는데도 시청자들이 열광했던 김갑수도 올해의 미친 존재감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올해 가장 어처구니없는 캐릭터는 <수상한 삼형제>의 김건강, 엄청난, 김현찰, 김순경, 전과자, 주범인, 계솔이, 왕재수 등 극단적인 인물을 단체로 꼽을 수 있겠다. 이 캐릭터는 시청자에게 자극과 짜증을 동시에 주며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를 창출해냈다.

전체적으로 강력한 여자 캐릭터가 부족한 것이 올해 아쉬운 점이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영화처럼 극단적으로 남자 배우가 인기를 독식하지는 않았지만, 대중음악계의 걸그룹 이외의 부문에서 남자가 득세하는 트렌드를 역행하지는 못했다. 온갖 남자 캐릭터가 다채롭게 인기를 끌었지만, 결국 ‘돈 많고 잘생기고 스타일리시한 몸짱’으로 수렴되면서 현실의 루저에게 절망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런 데에서 연유한 절망이 <슈퍼스타K>의 허각을 향한 열광적 지지로 나타났을 것이다.  


▲ SBS ⓒSBS 제공
연애담이 주요 주제가 되는 드라마의 특성상 올해도 역시 수많은 커플이 인기를 끌었다. 올 초에는 <파스타>가 ‘붕쉐 커플’로 시청자들을 앓게 했다. 이 커플이 보여준 극강의 달달함은 한동안 힘을 잃었던 트렌디 드라마에 다시 빛을 비출 정도였다. <동이>에서 ‘깨방정’ 숙종과 동이의 왕실판 ‘하이틴 로맨스’도 인기를 끌었다. 한효주는 MBC 연기대상의 강력한 후보이기도 하다. 그녀가 비록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올해 MBC에 별다른 큰 성공작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이승기·신민아 커플도 많은 시청자를 설레게 했다. 이로 인해 신민아는 마침내 흥행작을 갖게 되었다. <성균관 스캔들>의 믹키유천·박민영 커플은 초기에 반신반의했던 시청자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올해 가장 사랑받은 커플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 밖에도 여러 커플이 있었지만, 올 최강(?)의 커플로는 아무래도 연말에 선보인 <시크릿 가든>의 하지원·현빈 커플을 꼽을 수밖에 없다. 이 커플에는 유쾌함, 설렘, 신데렐라 코드, 아픔 등 인기의 모든 요소가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아픔이 이 커플의 사랑을 올 최고의 러브 스토리로 만든 결정적 요인이라고 하겠다.

여타의 요소는 다른 드라마에서도 쉽게 구현해내는 것이지만 가슴을 치는 아픔만은 그렇지 못하다. 현빈과의 신분적 거리를 실감하며 그를 응시하는 하지원의 처연한 눈빛 그리고 거기에 깔리는 백지영의 노래가 이 커플을 특별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분위기가 유지된다면 이 커플은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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