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돈 끌어내야 먹고산다
  • 임수택│편집위원 ()
  • 승인 2011.03.07 11: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 소자녀·고령화가 산업 지도 바꿔…소비 시장에 고령자 위한 상품들 쏟아져

 

▲ 일본 니가타 현 우라사 마을의 한 요양원에서 노인이 피아노를 치고 있다. ⓒEPA

일본에서는 90세가 된 노인들이 미래가 보이지 않아 돈을 쓸 수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경기 침체를 걱정하는 목소리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고령자가 많다는 것을 시사한다. 지난해 9월15일 총무성의 집계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인구는 2009년에 비해 2천9백44만명이 증가해 전체 인구의 23.1%이다. 이런 추세라면 2025년이 되면 세 사람당 한 사람이 고령자가 된다. 지난해 7월26일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인의 평균 수명은 남성은 79.59세, 여성은 86.44세이다. 여성의 평균 수명은 25년간 세계 1위이다. 암, 심혈관질환, 뇌혈관질환의 3대 요인에 의한 사망률과 폐렴에 의한 사망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고령화율이 7%을 초과해 2배수인 14%가 되기까지의 소요 연수를 비교하면 프랑스가 1백15년, 스웨덴이 85년 그리고 비교적 짧은 독일이 40년, 영국이 47년 걸렸다. 이에 비해 일본은 1970년에 7%를 초과한 이후 24년 만에 14%가 되었다. 일본은 평균 수명, 고령자 수, 고령화 속도라는 세 부문에서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2009년에 태어난 아이의 수는 2008년에 비해 약 2만2천명이 적은 1백6만9천명으로 2년 만에 줄어들었다.

소자녀·고령화가 진전됨에 따라 경제·사회 전반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소비 분야이다. 일본인의 개인 자산은 2009년 3월 말 현재 1천4백90조 엔이다. 이 가운데 일부 부채를 제외하면 순 금융 자산은 1천1백73조 엔이다. 대다수 노인이 이 돈을 가지고 있다. 젊은이들은 돈이 없다. 돈을 가지고 있는 고령자들은 좀처럼 돈을 쓰지 않는다.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계속되고 있는 디플레이션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다. 일본에서는 고령자들이 갖고 있는 돈을 어떻게 쓰게 할 것인가가 관심거리이다.

제일 먼저 편의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로손은 간판 색깔을 푸른색에서 검붉은색이나 녹색으로 바꾸고 있다. 세븐일레븐은 뼈가 없는 프라이드치킨을 팔기 시작했으며, 패밀리마트도 기존 도시락과는 다른 냉동도시락을 팔고 있다. 일부 편의점에서는 감기약 등 대중 약을 팔고 있다. 생선이나 야채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매장을 이에 맞게 바꾸는 편의점들도 늘어나고 있다. 대형 온라인 마켓에서 살 수 있었던 상품들을 이제는 편의점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야후와 옥션 상품을 세븐일레븐에서, 아마존 상품을 로손에서, 라쿠텐의 상품을 패밀리마트에서 판매하고 있다. 또 고령자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가격표 글씨를 크게 한다거나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끌고 다니는 카터의 통행을 위해 통로를 넓히고 있다. 고령자들만을 대상으로 카드를 발급해서 할인을 해주고 경품을 주는 서비스를 하는 곳도 있다.

가전 부문도 예외는 아니다. 교외에 있던 대형 양판점들이 도심의 지하철역으로 옮겨 오고 있다. 도쿄의 경우 신주쿠, 시부야, 이케부쿠로 주변에 대형 가전 양판점이 늘어나고 있다. 주택 시장도 영향을 받고 있다. 주택을 개조하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건축한 지 30년 이상이 되어 노후화했거나 아이들이 출가해 비게 된 방을 개조하려는 가정들이 늘고 있다. 고령자들이 생활하기 불편한 각종 턱이나 장애물들도 바꾸고 있다. 욕조와 화장실을 리폼하는 일이 대표적이다. 또 안전을 위해 모든 시설을 전기로 바꾸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아울러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고령자들의 리폼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가전 업계 중 일부는 가전 시장 규모가 늘지 않는 반면 리폼 수요가 증가하자 차별화와 생존 차원에서 주택 리폼 사업에 진출하고, 이와 연계해 가전제품을 판매하는 기업들도 있다.

각종 서비스 부문에서도 소자녀·고령화 바람이 비즈니스 지도를 바꾸고 있다. 먼저 금융서비스 부문이다. 주요 은행들은 1억 엔 이상의 부유한 고령자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1억 엔 이상은 84만2천 세대로 1백89조 엔이며, 5억 엔 이상을 소유한 세대는 6만1천 세대로 개인 자산은 65조 엔 정도이다. 아울러 베이비 붐 세대들의 퇴직금 운용도 주요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금융 기관들은 펀드, 주식, 채권, 금, 부동산, 정기예금 등의 금융서비스를 원 스톱으로 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환자를 보호하는 서비스 회사들이 전혀 다른 업종인 외식 업체에 진출하는 것도 고령화 시대의 영향이다.

교육·자동차 부문 타격, 국가 재정에도 부담

▲ 지난해 10월22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도요타 소형차 ‘Vitz’의 신차 출시 행사가 열리고 있다. ⓒAP연합

소자녀 시대에 영향을 받은 두드러진 변화 가운데 하나는 교육 부문이다. 대학 간 통폐합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지방 도시들의 학교가 심하다. 센다이 시의 경우 시립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학생 수가 과거 전성기와 비교해 70% 감소했다. 사립 대학의 경우 세 학교당 한 학교가 적자(2008년 기준)를 면치 못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보유는 2007년 7천9백23만대를 정점으로 조금씩 줄기 시작했다. 반면 차량 보유 기간은 늘어나고 있다. 또 중·대형차보다는 경차가 늘고 있다. 자동차 보유 대수 감소는 자동차 정비, 보수, 카 용품, 자동차 보험, 연료 등 관련 시장뿐만 아니라 도로 정비나 자동차 관련 세금과도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편 의료, 보건, 사회보험과 같은 산업은 고령화로 인해 소비가 늘어나고 새로운 고용 증대가 예상되고 있다. 식품산업의 경우에 인구 감소로 식비는 줄어들겠지만, 건강 관련 분야의 산업은 점점 커질 전망이다. 건설산업은 지속적인 침체가 예상되고 있다. 이외에도 건강 비즈니스, 농업, 노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세미나와 같은 시장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소자녀·고령화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영향을 미치는 분야는 국가 경제이다. 노인의 수는 향후 25년간 2천만명이 넘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1천3백만명이나 줄어든다. 이 많은 고령자의 연금이나 의료비를 젊은 세대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현행 연금 추이라면 현재 60세 이상은 일생 동안 자신이 부담하는 금액보다 6천5백만 엔이나 많은 연금과 의료비를 받는다.

반면 현재 10세 이하의 사람들은 고령 인구를 지원하기 위해 일생에 거쳐 5천2백만 엔(6억7천만원)을 부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면 80세 이상인 사람은 현재 연평균 85만 엔의 의료비가 들지만, 자신이 부담하는 것은 불과 10만 엔 정도이다. 차액 75만 엔은 젊은 사람들이 부담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결국 많은 젊은이가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의 보험료를 받지 못하게 된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최근 ‘재정적 유아 학살’이라는 과격한 표현도 등장했다.

소자녀·고령화의 인구 구조는 소비를 감소시켜 궁극적으로 성장 잠재력을 저하시킬 뿐만이 아니라 국가 재정에도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다. 일본의 2010년도 일반회계 세출은 92.3조 엔이다. 이 가운데 사회보장비가 27.3조 엔으로 전체의 29.6%이며, 국채 발행 이자 지급액이 20.6조 엔으로 전체의 22.3%이다. 사회보장비와 국채 발행 이자 지급액이 전체 예산의 50%을 넘는다. 소자녀·고령화는 국가와 기업의 성장 잠재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는 주원인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강 건너 불구경만 할 때는 아니다. 미리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