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보다 학비 비싼 ‘귀족 고교’들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11.03.1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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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6곳 학비 연간 1천만원 이상…“학생 납부금도 따로 내야 해 실제 비용은 더 많아”

 

▲ 민족사관고등학교 학생들이 강의실로 향하고 있다. ⓒ뉴스뱅크

“수업료에 기숙사비까지 해서 한 2천만원 정도 들었다.” 민족사관고등학교(민사고)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한 학부모의 말이다. 3년 동안이 아니라 지난 한 해에 이 학교에 지불한 금액이다. 그는 “수업과 관련된 비용이 분기당 3백만원, 기숙사 비용 등이 매달 70만~80만원쯤 된다”라고 설명했다. 등록금이 비싸다는 웬만한 사립 대학교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간 셈이다.

일부 자율형 사립고와 국제고, 외국어고의 연간 학생 납부액이 1천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학교가 정부에 제출한 회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이다. 실제 학부모가 지불하는 금액은 이보다 더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회계에 잡히지 않는 ‘숨은 돈’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공개된 비용은 최소라고 보아야 한다. 여기에 1천만원을 더 보태야 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은 가장 최근에 나온 교비 회계 세입 결산서(2009학년도)를 분석하고 세입 예산서(2010학년도)를 참조해 상위 학교의 학생 1인당 납부액이 어느 정도인지 조사했다. 그 결과 1천만원 이상 고액의 등록금을 내는 학교가 모두 여섯 곳이나 되었다. 이들 학교로부터 관련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는 작업도 거쳤다. 10위 이내 학교의 평균 납부액도 1천100만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사고, 평균 1천7백65만원으로 최고액

학교 형태에 따라 명칭과 분류가 다소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학부모가 부담해야 하는 학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먼저 흔히 말하는 등록금이 있다. 회계 자료상 ‘납교금’에 해당하는데, 수업료를 비롯해 입학금과수험료 등이 포함된다. 다음으로 과거 육성회비에 해당하는 ‘학교 운영 지원 회비’가 있다. 연간 몇십만 원 정도여서 차이가 크지는 않다.

가장 많은 부분은 ‘수익자 부담 교육비’가 차지하고 있다. 특기 적성 교육비(방과 후 학교 교육비), 기숙사 및 급식비, 현장 학습비 등이 여기에 속한다. 납부액 상위 학교일수록 그 비중이 높아 학교별 격차를 크게 만든다.

학생 1인당 납부액이 가장 많은 학교는 민사고였다. 등록금은 3백만원이 조금 넘어 순위에 오른 다른 사립 학교보다 오히려 낮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수익자 부담 교육비가 1천3백80만원에 이르러 평균 납부 총액이 1천7백65만원이나 되었다.

민사고는 ‘민족 정신으로 무장한 세계적 지도자 양성’을 교육 목표로 지난 1997년 문을 열었다. 이후 전국의 영재들을 모아 무료로 교육을 시켰다. 졸업생 상당수가 외국의 유명 대학에 진학해 유학 명문고로 명성이 높다. 하지만 학교 설립자이자 이사장인 최명재 전 파스퇴르유업 회장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무료 교육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높은 학비가 대신했다.

민사고의 법인 관계자는 “귀족 학교라고 왜곡되어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학부모 대부분이 중산층이다. 수준 높은 교육을 하려다 보니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학생 기숙사를 10년째 못 짓고 있을 정도로 재정에 어려움이 있다. 아직도 학생 전원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무료 교육을 하는 꿈을 갖고 있다. 실력이 뛰어난 학생이 돈이 없어서 원서조차 못내는 경우가 있는데, 앞으로 펀드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장학금을 늘려나갈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민사고 다음으로 많은 학비가 드는 학교는 하나고와 청심국제고였다. 지난 2010년 개교한 하나고는 아직 결산 자료가 없어서 예산을 기준으로 분석했다. 일반적으로 예산이 결산보다 금액이 다소 적게 책정된다. 조사 결과 하나고의 학생 1인당 1년 평균 납부액은 1천3백71만원이었다. 하나금융지주가 설립한 하나고는 서울 지역의 유일한 자율고이다. 전교생이 사용하는 최고급 기숙사 시설과 우수한 교사진 등으로 주목받는 한편, 높은 학비로 인해 민사고와 마찬가지로 ‘귀족 학교’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

하나고 관계자는 “학생 전원이 기숙 생활을 하다 보니 비용이 많이 든다. 기숙사가 없는 학교와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 이 보다 학교 법인이 학생에게 지원하는 금액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하나고의 경우 지난해 장학금만 4억5천만원이나 지급되었다. 학생 1인당 2백만원의 장학금을 받은 셈이다. 그리고 학생 10%는 학교에서 등록금은 물론 기숙사비와 식비 전액을 대신 내준다. 방과 후 학교 교육비도 80% 정도 지급한다. 지난해 20명이 혜택을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청심국제고도 학생 1인당 납부액이 1천3백54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청심국제고는 청심국제중학교와 함께 통일교 산하 재단이 운영하는 학교로 지난 2006년 개교했다. 민사고, 하나고와 마찬가지로 기숙형 학교이다. 이 학교 관계자는 “서울에 있는 외국어고의 경우 기숙사비를 안 내고 학비만 내다 보니 차이가 있다. 기숙사비를 제외하고 비교하면 상황이 다르다. 그리고 금액이 얼마나 많고 적은가에서 의미를 찾기보다는 교육의 질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올해부터 자율고로 전환한 한국외국어대 부속 용인외국어고가 네 번째로 학비가 많았다. 등록금이 4백82만원으로 상위 학교 가운데에서도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 1인당 납부 총액은 1천1백86만원이었다. 외국어고 가운데에서는 김포외국어고가 1천1백28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김포외고 관계자는 “급식이나 방과 후 수업은 선택이어서 학생들마다 내는 비용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학교측 “기숙 생활 비용 등은 어쩔 수 없다”

▲ 고교 입시 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들. ⓒ연합뉴스

경기외국어고도 학생 1인당 납부액이 1천만원을 넘었다. 등록금은 4백49만원이고, 총액은 1천55만원이었다. 경기외고 관계자는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학생이 들어오기 어렵다는 지적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숙사비와 식비 등은 꼭 들어가야 할 비용이라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라고 밝혔다.

그 밖에 자율고인 상산고와 현대청운고, 외국어고인 인천외국어고와 고양외국어고가 10위권 내에 들었다. 서울에 있는 외국어고들은 12위에서 16위를 차지했다. 6백만원에서 7백만원대였다. 등록금이 안 드는 국공립 학교 중에서는 서울국제고가 6백만원이 넘어 가장 학비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부산국제고와 성남외국어고가 4백만원대로 20위권 내에 들었다.

고액의 학비가 들어가는 학교에서는 기숙 생활을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통학을 할 수 있는 학생까지 전원 기숙사에 들어가야 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경기 지역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기숙 생활을 해야 하니까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학교 가까이에 사는 학생들도 기숙 생활을 해야 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일반 서민이 이러한 학교에 자녀를 보내기는 쉽지 않다. 방과 후 학교 교육비 등 등록금 외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교육 전문가인 이범 서울시교육청 정책보좌관은 “등록금으로 규정되지는 않았지만 추가 경비가 많다. 일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데, 비리 혐의가 없는 한 교육 당국에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학교에서는 강제로 시킨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실제 학교에 들어가면 다 해야 하는 분위기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보여주기식 교육을 줄이면 그만큼 학비를 낮출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의 한 외국어고 교사는 “체험 학습을 해외로 나가는 것은 이미 일반화되었다. 일부 외국어고의 경우 방학이 되면 보름 정도 해외로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한다”라고 전했다. 물론 체험 학습도 학생이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장은숙 참교육학부모회 회장은 “해외로 체험 학습을 가는데 비용 문제로 가지 않는다고 할 때 다른 학생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민주당 간사를 맡고 있는 안민석 의원은 “수업료와는 달리 수익자 부담 경비는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고교 평균에 비해 많게는 수십 배나 비싼 경우가 있다. 지나친 귀족 교육은 다른 학생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할 뿐 아니라 사회적 배려 대상자나 서민층 자녀가 입학을 하더라도 학교를 계속 다닐 엄두를 못 내도록 만든다. 일부 학교의 경우 거품이 끼어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학생 한 명에게 들어가는 교육비는 하나고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무려 2천7백53만원에 이른다. 학생 1인당 교육비는 2010학년도 세출 예산 기준이다. 그 비용이 높다는 것은 비싼 학비 이외에 학교 투자도 많다는 의미이다. 하나고의 경우 학교 법인의 지난해 전입금이 22억원에 이른다.

두 번째로 교육비가 많은 학교는 청심국제고로 학생 1인당 2천2백89만원이나 되었다. 청심국제고 관계자는 “재단 전입금이 연간 30억원 이상 들어간다. 학생 한 명당 5백만원 이상 지원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 다음으로는 민사고가 학생 1인당 교육비가 높았다. 1천9백90만원으로 학생 납부액보다 2백30만원 정도 많았다. 자율고인 현대청운고는 1천4백18만원으로 학비의 두 배 가까이나 되었다. 반면 외국어고의 경우 대부분 학비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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