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리스트’ 다시 뜬 이유 있다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1.03.1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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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와 이종걸 의원 간 치열한 ‘소송 전쟁’ 중 재부각…장씨 편지 진위 가려져야 소송도 끝날 듯

 

▲ 2009년 5월7일 ‘장자연 리스트의 진실과 조선일보’ 토론회에 참가한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2009년 7월10일 경찰은 ‘장자연 사건’의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자살한 영화배우 고 장자연씨의 소속사 대표 김성훈씨와 전 매니저 유장호씨 등 관련자 일곱 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당시 장씨가 성상납을 강요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의 실체는 끝내 밝혀내지 못한 채 숱한 소문만을 남기고 묻혀버렸다. 그로부터 1년8개월 만인 지난 3월6일 ‘장자연 리스트’가 다시 되살아났다. SBS 뉴스를 통해 장씨의 자필 편지로 추정되는 문건이 공개된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문건에는 “31명에게 100번 넘게 접대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어, 그 진실 여부에 따라 향후 큰 파문이 일 전망이다.

이번 ‘장자연 편지’의 존재와 관련해 정·관계 안팎에 소문이 돈 지는 한 달쯤 되었다. 당시 기자가 입수한 첩보 내용은 장씨와 과거 가깝게 지냈던 전 아무개씨(현재 광주교도소에 수감 중)가 자살하기 전 장씨와 주고받은 편지를 갖고 있으며, 그 편지에는 장씨가 성접대를 강요받은 절절한 사연들이 가감 없이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2009년 3월 장씨의 자살로 충격을 받은 전씨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편지 사본을 경찰과 재판부에 제출했으나, 제대로 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전씨는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정치권과 일부 언론에 편지를 전달할 예정이거나, 또는 전달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런 와중에 민주당에서 ‘장자연 편지’를 입수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이종걸 의원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종걸 의원실이 주목받은 이유는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해 현재 조선일보와 벌이는 치열한 소송전 때문이다. 2009년 당시 경찰이 장씨의 성접대 의혹 사건을 수사했을 때에는 총 20명의 인사가 조사를 받았다. 인터넷에는 장씨가 술 자리를 갖고 성접대를 했다는 유력 인사의 이름이 들어 있는 ‘장자연 리스트’가 떠돌았지만 당시 언론은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해 실명을 거론한 이가 바로 이종걸 의원이다. 이의원은 지난 2009년 4월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임시국회에서 대정부 질의를 통해 “장씨로부터 접대를 받은 의혹이 제기된 언론사 인사가 ‘조선일보 방(상훈)사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의원이 조선일보 사주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양측 간에 치열한 소송전이 펼쳐졌다. 조선일보는 이의원에게 명예훼손 및 10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한 민·형사 소송을 걸었다. 조선일보는 “본사의 특정 임원이 장씨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는데도 이의원이 대정부 질의 등에서 관련된 것처럼 언급해 회사와 해당 임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라고 밝혔다. 이 사건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에서 조사하고 있다.

장자연 사건 관심도와 상관없이 공방 치열

2009년 7월 경찰 수사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면서 이 사건은 흐지부지되는 듯했고, 따라서 양측의 소송전도 한풀 꺾일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취재 결과, 뜻밖에도 양측의 소송전은 이 사건의 관심도와 상관없이 지금까지 계속 팽팽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조선일보 경영기획실의 한 관계자는 “형사재판은 진행 여부를 알 수 없으나, 민사 차원만 이야기한다면 조선일보는 처음의 입장을 거둔 적이 없다. (이의원측에서) 어떤 제의가 들어오더라도 이의원이 전혀 근거가 없는 사실을 이야기해 (조선일보의) 명예가 훼손되었다는 부분에서만큼은 협상을 거부할 것이다. 이것은 ‘의지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다”라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이종걸 의원 쪽도 마찬가지다. 이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이 소송은 굉장히 싱겁게 끝날 소송이다. 거대 언론사가 자신의 힘을 이용해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넘어서는 행위를 보이고 있다”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유력 언론사와 소송전이 길게 이어지는 것에 대한 부담도 묻어난다. 이 관계자는 “명예훼손 소송이 오래 걸려 있다 보니 더 이상 크게 휘말리고 싶지 않다. 사실 요즘 소송에 관해 언급하는 것은 자제하고 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명예훼손 건의 경우 소송이 진행된 이후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가 세 차례나 바뀌었고 여러 차례 검찰의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아직 결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장자연 사건’이 다시 부각되고 경찰의 재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조선일보와 이의원 사이의 소송 진행 역시 재탄력을 받으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 2009년 전씨가 재판부에 제출한 ‘장자연씨 편지’ 사본. ⓒ시사저널 유장훈

조선일보 쪽은 이번 ‘장자연 편지’가 공개된 배후에, 소송전에 부담을 느낀 이종걸 의원실이 개입되어 있을 것으로 의심하는 분위기이다. 정치권에서도 대체적으로 그렇게 보는 이들이 많다. 이에 대해 이의원실 관계자는 “3주 전쯤 법조계 출입 기자들로부터 ‘이의원이 장씨의 지인으로 알려진 전씨로부터 장씨의 원본 편지를 받은 적이 있지 않느냐’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하지만 아는 바 없는 사실이어서 원본 편지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다만 이와 관련해 들은 이야기는 있다. 전씨가 처음에 편지를 경찰 쪽에 전했는데 경찰이 이를 묵살하고 일부 원본을 빼앗겼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전씨가 원본을 빼돌려 이곳저곳에 보냈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유력 언론 매체인 조선일보와 야당 중진인 이종걸 의원 간의 치열한 소송전 속에 새로운 돌발 변수로 튀어나온 ‘장자연 편지’는 아직 그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경기지방경찰청은 지난 3월9일 새벽 6시쯤 전씨의 감방을 압수수색했고, 장씨의 자필 편지 원본으로 추정되는 편지 23장과 편지 봉투 20여 장, 신문 스크랩 70여 장 등을 확보했다. 경찰은 원본 편지가 장자연의 친필로 쓰인 것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필적 감정을 의뢰했다. 장씨 편지의 진위 여부에 따라 조선일보와 이의원 사이의 소송 역시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수사 대상 20명 중 소속사 대표·매니저 2명만 처벌
‘장자연 사건’ 어떻게 처리되었나

배우 고 장자연씨가 경기도 분당의 자택에서 자살한 때는 지난 2009년 3월7일이다. 당시 경찰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사건을 종결지으려 했으나 장씨의 자살 직후 전 매니저였던 유장호씨가 장씨의 성상납 피해 사실을 폭로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사건 발생 3일 만인 3월10일 고 장자연씨가 소속사 사장 김성훈씨의 강요에 의해 유력 인사들에게 성상납을 했다는 내용과 관련 인물의 실명이 담긴 문건인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가 공개되었다. 이 문건이 공개되면서 경찰은 바로 재수사에 들어갔다.

사건 수사를 맡은 경기도 분당경찰서는 41명의 전담팀을 꾸리고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한 수사를 벌였다. 4개월이 넘게 진행된 경찰 수사는 2009년 7월10일 최종 종결되었다. 당시 경찰은 사건 수사 대상자 20명 중 소속사 전 대표 김씨와 전 매니저 유씨, 금융인 2명, 기획사 대표 1명, 드라마 PD 2명까지 총 7명만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나머지 13명은 불기소 의견을 내고 내사 종결한 채로 검찰에 넘겼다. 이 가운데 김씨와 유씨만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결국 당시 ‘장자연 문건’에 등장한 20명 가운데 단 두 명만이 성상납과 관계없는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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