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사르코지를 움직여 공격의 선봉에 세웠나
  • 최정민│파리 통신원 ()
  • 승인 2011.03.28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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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인 앙리 레비가 결정적 역할 반군 대표부와 대통령 면담도 주선

 

▲ 지난해 10월23일 스페인 말라가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발언을 하고 있다. ⓒEPA

“그렇다. 우리는 전쟁에 반대한다.” 지난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유엔에 출석한 프랑스 외무장관 도미니크 드빌팡의 일갈이었다. 당시 프랑스는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이 최선의 선택일 수 없다”라고 반전 의사를 분명히 했다. 8년이 지난 지금, 상황이 달라졌다. 이번 대리비아 공습의 선봉에 선 것은 미국도, 영국도 아닌 프랑스였다.

워싱턴을 비롯한 국제 외교가에서는 사르코지의 강공 드라이브를 놓고 다양한 분석이 나왔다. ‘대선을 앞둔 국내 정세에 기인한 선택이다’ ‘북아프리카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전략적 포석이다’ 등등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사르코지를 움직인 인물이 정부 인사가 아닌 베르나르 앙리 레비라는 철학자였다는 점이다. 지난 3월4일 리비아 반군의 거점인 벵가지를 방문한 그는, 반군 대표부가 3월10일 파리의 엘리제궁에서 사르코지를 면담할 수 있도록 주선한 주인공이다.

프랑스 지성계의 대표 주자인 그의 면면은 화려하다. 부유한 목재상의 아들로 태어나 데리다와 알튀세르가 있는 프랑스 최고 엘리트인 ‘에콜 노르말 쉬페리얼’을 나왔다. 이미 30대에 <야만의 얼굴을 한 인간>이라는 저서로 프랑스 지성계에 도전장을 내고, 소르본느를 발칵 뒤집어놓기도 했다. 그 후 활발한 저작 활동과 현실 참여로 프랑스 지성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국제 분쟁에 개입한 것 또한 이번 리비아 사태가 처음이 아니다. 이미 18년 전 보스니아 내전 당시 미테랑 대통령을 보스니아 내전에 참여토록 종용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렇다면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이번 리비아 사태에 적극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적극적 개입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실책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르 피가로는 지적했다. 그것은 아프가니스탄 내 반(反)탈레반 진영의 마수드 장군의 경우를 말한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에서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던 그는 탈레반에 맞설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9·11 사태 이전까지 국제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냉대를 받았다. 2001년 4월 프랑스를 방문한 마수드는 당시 여권 및 야권의 어떠한 대표도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9·11이 일어나기 3일 전 알자지라 방송 취재팀으로 위장한 알카에다와 탈레반의 폭탄 테러로 암살되었다. 그의 암살은 9·11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헤게모니를 선점하려는 알카에다의 준비된 포석이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국제 사회가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할 경우 마수드가 협조하는 것을 미리 차단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현 리비아 반군의 대표부와 사르코지의 만남을 주선하고 지원을 촉구했다는 것이다.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사르코지에게 “리비아의 마수드를 받아주겠는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의 설득 작업 이후 프랑스는 서방 국가 중 최초로 리비아 반정부군을 인정했다.

정치권 밖 인사의 정책 개입에 대한 우려도

▲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EPA

현재 사르코지의 군사 작전에 대한 프랑스 정계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중도 우파의 프랑수아 바이루 총재는 작전 직후 “외교적 승리이다”라고 논평했으며, 지난 3월21일 민영 카날 플뤼스에 출연한 사회당 마틴 오브리 당수는 “프랑스가 국제 사회에서 중심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이행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라고 평했다. 국제 사회에서는 이번 사르코지의 선택이 불리한 국내 정세의 반전을 꾀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을 내놓았지만, 실효는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극우의 득세로 고민에 빠진 프랑스 우파 여당에게는 리비아 공습으로 대변되는 ‘강한 프랑스’와 ‘인권 수호의 본분을 다하는 모습의 프랑스’는 분명 호재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선거 결과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투표율은 40%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은 15%를 넘는 지지율을 획득하는 기세를 유지했다.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외교적 영향력에 대해서는 찬사 속에 우려 섞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지난 대선 후보였던 사회당의 세골렌 루와이얄은 자신의 사이트에 그의 행동을 찬사하는 글을 올렸으며, 마틴 오브리 사회당 당수 또한 그의 역할론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외무를 담당한 장관이 아닌 원외 인사와의 독대를 통해 정책을 결정한 것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 튀니지 사태로 실각한 미셀 안리오 마리에 이어 외무장관직을 맡은 알랭 쥐페는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개입으로 유명무실한 장관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최근 사르코지 정부에 구원투수로 등장한 그의 영향력을 제한하기 위한 사르코지의 견제구였다는 분석까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의 군사 개입이 결정되기까지 관계 장관인 그는 아무런 사전 통보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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