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빠졌던 함정에 또 빠지지 마라
  • 성병욱|중앙일보 주필 ()
  • 승인 2011.04.04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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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허브 국제공항을 내걸고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 나아가 영남 내 지역 대결로까지 치달았던 동남권 신공항 계획이 백지화로 결론 났다. 두 지역 모두 투입될 비용에 비해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 평가에서 적어도 50점은 넘어야 하는데 밀양·가덕도 모두 40점 미만의 낙제 점수를 받았다.

경제성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동남권 신공항은 처음부터 아예 추진하지 말았어야 할 사업이다. 당초 부산 신공항으로 검토했을 때부터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것을 동남권 신공항으로 수혜 지역을 넓히는 듯이 포장해 추진키로 한 것이 노무현 정부 때이고,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받아들였다. 전·현 대통령의 합작품이었던 셈이다.

특정 지역의 인기와 표를 의식해 전임자가 발제했던 것을 후임 대통령이 공약으로 승계했다가 백지화로 갔다는 점에서 세종시 때와 판박이이다. 세종시를 행정 중심 복합도시에서 경제 중심 복합도시로 선회하려던 이대통령의 계획은 같은 당의 박근혜 전 대표의 제동으로 번복되었는데, 이번에도 박 전 대표는 신공항이 필요하다며 각을 세우고 있다. 자칫하면 정부가 어렵사리 내린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결정이 ‘2년 시한부’로 다시 백지화될지도 모를 판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정치인들이 지나치게 대중 인기와 지역 이익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성향 때문이다. 국제 허브 공항을 내세운 신공항과 성격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한국공항공사 산하 14개 지방 공항 중 김포·김해·제주 공항을 제외한 대구·울산·청주·양양·무안·광주·여수·사천·포항·군산·원주 공항이 모두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예천공항은 개항 1년 반 만에 문을 닫았고, 1천3백17억원이 투입된 울진공항은 항공 수요가 없어 비행훈련원과 영화 촬영 무대로 쓰이고 있다. 김제공항 건설 계획도 4백76억원을 투입해 부지만 매입한 채 중단된 상태이다.

경부고속철도 2단계 개통과 2014년에 호남고속철도가 완공되면 국내 항공 수요는 더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애물단지도 이런 애물단지가 없다.

국제공항의 경우도, 인천국제공항의 3단계 확장 공사로 인해 앞으로 상당 기간 영남 지역에 제2의 허브 공항이 필요할 정도로 여객과 화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지 지극히 의문이다. 수요가 늘어나려면 운항 항공 노선이 많아야 하는데 인천공항에 67개 항공사가 1백72개 노선을 운항하는 데 비해 김해·대구 공항을 합쳐 17개 항공사가 25개 노선을 뛰고 있다. 영남 지역 다섯 개 공항의 수요를 모두 합쳐도 연간 국제 여객 5백30만명, 화물량 40만t으로 인천공항의 7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지금 영남과 한나라당의 분위기로는 내년 총선과 대선 국면에서 동남권 신공항이 되살아날 가능성이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1~2년 후라고 지금과 여건이 달라질 것은 거의 없다. 인천국제공항 3단계 확장 공사와 겹쳐 중복 투자 우려도 더욱 심화될 것이 분명하다. 이 문제를 표만 의식해 잘못 건드려 놓으면 다음 정부와 국민의 큰 짐이 되고 말 것이다.

장기 계획으로 회생시키려 할 경우에도 철저한 검증과 수요 예측을 거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한 번 빠졌던 함정에 다시 빠지는 우(愚)를 범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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