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길’ 찾는 독일의 꿍꿍이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1.04.04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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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입장 분명히 밝혀…원전 정책에서도 ‘폐쇄’ 방침 굳혀

 

▲ 지난 3월17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 정상회의가 끝난 후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EPA

리비아 공습과 일본 지진을 계기로 독일이 ‘독자 노선’을 선택했다. 2차 대전 이후 굳건히 유지해 온 서구 동맹에서 이탈하는가 하면 유럽 동맹들에 등을 돌리고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도 결별했다. 나아가서는 미국과 결별하는 것도 불사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독일의 파격적 변신은 리비아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표결에 기권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독일은 리비아에 비행 금지 구역을 설치하려는 국제회의에도 불참했다. 또 영국, 프랑스, 미국이 주도한 리비아 군사 개입에 정면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선언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이 이단적 노선 때문에 리비아 사태에 대해 단일 외교 노선을 구축하려던 서방의 노력은 무산되었다. 리비아 반군 세력을 맨 먼저 합법적 정부로 승인한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독일은 원자력 발전 정책에서도 다른 길을 택했다. 원전 의존 정책을 철회함으로써 전력 수요의 75%를 원전에 의존하는 프랑스와도 차별화하는 쪽을 선택했다. 독일과 유럽 동맹들과의 갈등은 그리스와 아일랜드처럼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한 나라에 유로화 구제 금융을 제공하는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유럽에서 재무 상태가 가장 양호한 독일은 금융 지원에 앞서 해당 국가가 먼저 엄격한 자구책을 취할 것을 요구했다. 2차 대전 이후 서구 동맹의 강력한 주축이었던 독일의 이탈은 서구 동맹국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독일은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과 함께 안보리 표결에서 기권했다. 프랑스에 있는 전략연구재단의 선임연구원 프랑수아 하이스부르크는 독일이 이 그룹에 가담한 행동을 두고 ‘딴 나라’(another country)가 되었다고 비꼬았다. 그는 독일의 선택에 나름의 이유는 있으나 유럽 및 서구 동맹을 배신하고 국제 신의를 경시한 것은 독일의 세계사적 위상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메르켈의 결정은 국내에서도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제1 야당인 녹색당은 “독일이 유엔과 중동에서 신의를 저버렸으며 이로 인해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려던 꿈은 영영 사라졌다”라고 개탄했다. 전 독일군 사령관 클라우스 노이만은 메르켈 정부가 용납할 수 없는 ‘소극’(笑劇; farce)을 연출했다고 말했다.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집권 기민당(CDU) 중진의 말을 인용해 독일에 ‘파국의 신호’가 왔다고 전했다. 쉬드도이체 짜이퉁 지의 외신국장 스테판 폴렌츠는 독일이 어쩌면 유럽 동맹의 붕괴와 유로 경제의 침몰을 상징하는 상주(喪主)가 될지 모른다고 전망했다. 

“국제 질서에서 제3의 노선 찾고 있는 듯”

독일이 리비아 관련 표결에서 기권한 것은 반전주의(反戰主義), 예외주의 그리고 대내적인 정치 환경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메르켈은 가장 타이밍이 나쁠 때 애매모호한 선택을 함으로써 국가와 자신의 정치적 위상에 치명상을 입혔다. 리비아의 카다피를 응징하는 국제 여론을 무시하는 것과 일본의 원전 사고에 따른 불안감은 3월27일 실시된 주 의회 선거에서 기민당 연정에 참패를 안겨주었다. 비록 지방 선거이기는 하나 기민당이 야당에 패배한 것은 58년 만에 처음이다. 더구나 공산당에 뿌리를 둔 녹색당과 사회민주당(SPD)에 패배함으로써 독일의 진로에 대해 수많은 억측을 자아냈다. 보수와 진보가 역할 교대를 했다는 풍자마저 뒤따랐다. 익명의 정부 관리는 독일이 정치적 쓰나미를 만났다고 말했다. 이 관리는 9·11, 베를린 장벽 붕괴, 케네디 암살,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차원에서 역사는 기록될 것이라면서 2년 후의 총선에서 지각 변동이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욕타임스는 독일이 냉전 이후 고착된 국제 질서에서 제3의 길을 찾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이 길이 당장은 불편하지만 장기적으로 독일에 이익이 될 것으로 메르켈은 보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은 리비아에 대한 군사 개입은 의회의 승인을 필요로 한다는 궁색한 이유를 들어 지중해에서 해군 병력을 철수시켰다. 그러면서 이 결정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듯 아프가니스탄 주둔 나토군에 병력 3백명을 증파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의회의 야당 지도자들은 “옹졸한 처사이다”라고 일축했다. 메르켈은 결국 우방과 야당으로부터 동시에 버림받은 꼴이 되고 말았다. 

메르켈이 자초한 전환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선거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 모순을 드러냈다. 이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기민당을 버리고 녹색당을 선택했다. 이 주는 전후 독일 부흥을 이룩한 보수의 보루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을 준다. 이제 옛날 공산주의자들이 이끄는 녹색당은 창당 이래 처음으로 주 총리를 배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1945년 이후의 독일의 소멸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기존 원전 정책의 폐기를 상징한다. 메르켈은 선거 결과에 대해 “이 고통을 극복하는 데 많은 세월이 걸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2차 대전 이후 독일을 지배해 온 중도 우파의 기민당 시대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셈이다.

주 선거에서 녹색당 승리…숱한 갈등 예고

▲ 지난 3월 27일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빈프리트 크레슈만 녹색당 당수가 선거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EPA

녹색당의 탄생 과정을 감안하면 이번 선거는 더욱 아이러니컬하다. 녹색당은 1970년대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독일 사회를 부정하는 슬로건을 들고 태어났다. 그런 당이 주 정부의 집권 세력이 되고 기민당은 소수 야당으로 전락했다. 녹색당은 미국의 좌파로 비유될 수 있는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기본 노선에서는 강력한 보수주의를 고수하고 있고, 그것이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당은 사실상 새로운 정당이다. 사회 문제에는 진보적이고 현대적 삶의 형식에는 저항하는 편이다. 이 당은 디지털 기술과 그 기술을 시민에 관한 정보 수집에 이용하는 행태를 증오한다. 전력 수요를 원전에 의존하는 정책에 반대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자연과 원시림을 보호하는 것이 독일의 먼 미래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녹색당 당수인 62세의 전직 교사 빈프리트 크레슈만은 자신이 학생 시절에 추구했던 극단주의에 오류가 있었음을 시인하고 앞으로는 가톨릭을 중시하겠다고 밝혔다. 베를린 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게로 노이베바우어는, 녹색당은 긴 세월 동안 독일의 주류였으며 이제 주 무대에 나섰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당의 전도는 험난하다. 이번 승리가 일과성 해프닝으로 끝날지, 독일의 항구적 변신을 담보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당장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전력의 절반을 공급하는 원전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다. 메르켈은 일본의 원전 사고 이후 대대적인 원전 반대 시위에 밀려 이 주의 원전 일곱 기를 잠정적으로 폐쇄했다. 녹색당은 선거 공약에 따라 당장 1개 원전의 문을 영구히 닫고 나머지는 2012년까지 완전 폐쇄할 계획이다. 그러나 대체 전력을 어디서 끌어올지가 막연하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에너지연구소의 전문가 게오르그 자흐만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가 지난한 선택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녹색당은 “원치 않은 자산을 소유하게 되었고 그 점에서 이 자산은 독약이 될지도 모른다”라고도 했다.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의 논평이 의미심장하다. “이 승리는 예외적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 승리를 업고 정상적인 통치를 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독일의 변신은 일단 일리 있어 보인다. 하지만 변신이 초래할 수많은 갈등과 마찰을 순탄하게 극복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총체적으로 독일의 외로운 선택은 득보다 실이 많으리라는 것이 중평이다. 혹시 게르만 민족의 우월감이 예외주의로, 또는 서구 동맹과의 결별로 표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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