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 어보’ 미군 약탈 기록 찾았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1.04.25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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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47과 불법 반출 사실 드러나

▲ 지난 1월11일 국립고궁박물관 정계옥 유물과학과장이 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조선 어보 책자 발간 설명회에서 조선 어보 진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AP연합
조선 시대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물은 어보(왕실의 도장)이다. 어보는 존호나 시호를 올릴 때나 가례, 길례 등 각종 궁중 의식에 의례적으로 사용된 왕권의 상징물이다. 국왕 외에 왕비나 왕세자도 인장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 시대 왕실 어보는 기록상으로 보면 3백66과가 만들어졌다. 현재 국내에 소장된 어보는 3백22과이다. 경복궁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문화재청 산하)에 3백16과가 있고, 국립 중앙박물관에 4과,고려대에 2과가 있다. 해외에는 미국에 1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기록상의 어보와 국내외에 소장된 어보를 비교해보면 43과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사라진 어보는 어디에 있을까. <시사저널>과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사라진 어보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오랫동안 관련 기록들을 찾아나섰다. 국내외에 옥새나 어보로 추정되는 물건에 대한 기록을 샅샅이 훑었다. 그러던 중 미국 ‘아델리아 홀 레코드’에 어보에 관한 기록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문화재제자리찾기측은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미국 메릴랜드 국가기록 보존소를 직접 방문해 현지 조사를 벌였다. 그리고 반세기 동안 숨겨져왔던 역사의 기록을 찾아냈다. 사라진 어보 43과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기념품 수집용’으로 가져가 미국이나 일본으로 빼돌린 것이었다.

유출 경위 ‘아델리아 홀 레코드’에 기록돼

아델리아 홀 레코드에는 한국과 관련해‘4:774, Korean Embassy Case’와 ‘10:621, Korean Losses’라는 두 개의 파일이 있었다. ‘4:774’파일에는 1953년 1월부터 1955년 5월 사이의 일이 비교적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미군이 한국에서 약탈한 문화재에 관한 내용이다. 1956년 5월21일 당시 미국 국무부 관리였던 아델리아 홀이 양유찬 주미 대사와 전화로 나눈 통화 내용도 남아 있었다. 전화 내용에는 어보로 보이는 기록이 있었다.

‘10:621’파일에는 좀 더 중요한 자료가 포함되어 있다. 이 파일은 1953년 11월에 작성된 것으로 ‘한국의 분실품’이라는 제목 아래
미군 병사에 의해 약탈된 한국의 문화재에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특히 파일에 수록된 1953년 11월17일 볼티모어 선의 기사(제목 : 한국의 보물이 사라졌다)가 눈에 띈다. 당시 우리 정부가 주미 대사를 통해 미군이 약탈한 어보의 반환을 요청했고, 주미 대사였던 양유찬 박사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소개되어 있다. 고인이 된 양유찬 박사는 1951년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주미 대사로 발탁되었고, 유엔 총회 한국측 수석대표로 임명되어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국제적 지위 향상에 공헌한 인물이다. 볼티모어 선 기사의 주요 내용을 보자.

‘한국 대사 양유찬 박사는 ‘한국 정부도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의 세기를 뛰어넘은 물건들이 기념품 사냥을 하는 미국 군인들
에 의해 47점(이후에 3점 반환, 1점 소재 확인) 모두 한국으로부터 일본이나 미국으로 사라졌다고 믿고 있다’라고 말했다.

양박사는 이 물건들을 현재 간직하고 있거나 어디있는지 알고 있는 단서를 가진 미국의 군인들은 워싱턴 한국 대사관에 연락해주기를 요청했다. 양박사는 한국의 첫 번째 통치자의 역사적 기념물들을 소지하고 있을 누군가는 이 물건의 가치를 안다면 한국에 돌려주어야 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대부분 도장들은 지름이 2~4인치 크기로 조각되었다. 이 도장들은 조선 최초의 왕 태조 때부터 내려온 순금 거북이 모양처럼 동물의 형상을 띄고 있는 점 등 때문에 미국인들도 식별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도장은 역사적 성지와도 같은 한국의 왕실에서 1950년 사라졌다. 한국 정부는 이 인장들을 갖고 있는 누군가로부터 구입하거나 또는 한국으로 가져오면 일련의 보상을 할 것이라고 양박사는 말했다. 양박사는 47점의 사라진 것들은 값을 매길 수 조차 없다고 말했다. 인장들은 그 자체의 금과 은의 무게만으로도 당연히 가치가 있으며, 그 외에도 한국 정부에게는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

당시 우리 정부의 반환 요구는 반쪽짜리였다. 어보가 어디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돌려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1987년에 미군이 약탈한 어보 중 고종, 순종, 명성황후의 어보 3과를 한국에 돌려주었다. 당시 스미스유니언 미술관의 학예사인 조창수씨의 노력으로 한국 정부에 반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뒤 어보의 소재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러다가 사라진 어보 중 1과가 약 60년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2006년 로스앤젤레스카운티 미술관장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미술관에 소장된 한국 문화재의 실태 조사를 제의했다. 그 뒤 양측은 실태 조사에 대한 협약을 체결하고 2007년부터 2008년까지 2년간 현지 조사를 실시했다. 이때 미술관 한국실에 전시되어 있는 ‘금보’의 소재가 파악된 것이다.

▲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 미술관의 한국관에 문정왕후의 금보(돌출 사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AP연합
미국 LA 미술관에 ‘문정왕후 금보’ 소장

이 금보의 주인은 중종의 왕비였던 문정왕후였다. 금보의 높이는 6.45cm, 가로와 세로가 각각 10.1cm로 거북이 모양의 손잡이가 있다. 아래 인면(도장을 찍는 면)에 문정왕후의 존호인 ‘성열대왕대비지보’(聖烈大王大妃之寶)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1547년 아들인 명종이 “경복궁 근정전 섬돌 위에 나가 ‘성열인명대왕대비’라는 존호를 올리고,덕을 칭송하는 옥책문과 악장을 올렸다”라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있다. 이런 것을 볼 때 문정왕후 금보는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금보의 소재를 파악한 후에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2007년에 금보가 로스앤젤레스카운티 미술관에 있다는 것이 파악되었을 뿐 3년동안 보고서조차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국립문화재연구소의 관계자는“박물관과 보고서에 대한 협약서가 체결되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안 되고 있다. 그쪽 담당자가 자주 바뀌면서 협의가 제대로 되지않았다. 보고서의 원고 등은 정리가 되어서 협약서가 체결되면 곧바로 완성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문정왕후) 금보의 역사적인 가치는 따질 수가 없을 정도이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문화재청도 아델리아 홀 레코드의 기록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1950년대에 주미 대사가 미국 정부와 언론에 어보의 유출 경위를 제시하고 반환을 요청했는데도 이런 점에 대해 깊이 있게 검토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경훈 문화재청 국제교류과장은 “(미술관 소장에 대해) 합법인지 불법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지금 경위와 출처를 파악하고 있다. 그런 뒤에 구체적인 대처 방안을 마련할 것이다. 우리는 좀 더 신중한 입장이다. 해외에 있는 문화재라고 해서 모두 돌려달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문화재제자리찾기는 문정왕후 금보의 반환에 적극 나설 방침이다. 이 단체 사무처장인 혜문 스님은 “문정왕후 금보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약탈된 문화재로 볼 수 있다. 우리 정부는 1950년대에 미국 정부와 언론에 공식적으로 반환을 요청했고, 이런 경과가 아델리아 홀 레코드에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을 보면 미국 정부도 ‘미군 병사의 절도’에 의한 사실을 인정했다. 미술관도 합리적인 틀 속에서 반환에 나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 단체는 이미 미국 국무부에 아델리아 홀의 ‘Korean Official Seals’의 기록에 대해 추가로 질의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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