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싣고 떨어진 ‘특제 낙하산’들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1.05.10 05:2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감원-금융권의 감사 커넥션, ‘악어와 악어새’ 관계 금융회사 감사직에 금감원 출신 45명이나 포진

 

▲ 부산저축은행 예금자들이 지난 4월29일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금융감독원 부산지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7월 제주도에 금융감독원(금감원) 검사반원들이 내려갔다. 신한금융지주의 자회사인 제주은행에 대한 정기 검사를 실시하기 위해서였다. 제주은행은 일곱 명의 금감원 검사반원들을 위해 저녁 식사와 술자리를 마련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자리를 만든 사람이 제주은행 소속이 아니라 신한은행 감사였다는 것이다. 금감원 검사반원들과의 저녁 술자리를 주선하기 위해 신한은행 감사가 서울에서 직접 내려온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제주은행이 신한은행과 계열사 관계인 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감사를 받는 제주은행의 감사는 한국은행 출신이었지만 신한은행 감사는 금감원 출신이었다는 점에 더 큰 이유가 있었다.

금감원 검사반장은 부적절한 자리가 적발된 뒤 “여러 번 거절했는데 금감원 출신 선배의 부탁을 뿌리치기 어려워 저녁 자리에 갔다”라고 말했다. 당시 2차까지 가게 된 세 명은 금감원 감사에 걸려 검사반장은 ‘견책’을, 나머지 두 명은 ‘주의’ 조치를 받았다. 금감원과 감독 대상인 금융기관과의 커넥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감사의 로비스트 활동은 공공연한 비밀”

지금 금감원이 설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금융기관으로 이동한 금감원 출신 감사와 금감원 사이의 관계는 이처럼 냉정해지기 어렵다. 금융기관들은 금감원 출신 감사를 금감원과 소통하는 창구로 쓰려고 한다. 보통 대기업들이 권력 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나 국세청, 감사원 출신 등을 사외이사나 감사로 영입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부회장은 “금감원 출신 감사들이 금감원을 상대해 로비스트로 활동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금감원은 관행처럼 전·현직 간부를 금융회사 감사로 대거 내려보냈다. 업무 강도가 낮은 대신 높은 연봉을 보장하는 금융권 감사 자리는 인사 적체를 해소하는 데 매우 효율적인 곳이다. 재취업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는 측면에서 금감원과 금융사 간의 관계는 ‘악어와 악어새’로 비유되기도 했다. 때로는 감사 자격이 모자라는 사람을 내려보내는 탓에 일부 금융회사에서는 임시 주주총회를 소집해야 하는 웃지 못할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조영택 민주당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7년 이후 금감원에서 퇴직한 임직원 2백43명 중 금융회사 감사나 사외이사로 재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78명이었다. 특히 올해 4월을 기준으로 금융회사 감사로 재직 중인 금감원 출신 인사는 45명에 달한다. 배영식 한나라당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가장 많은 곳은 증권·투신사로 그 수가 15명이다. 그 뒤는 저축은행 아홉 명, 은행 여덟 명 순이다.

금감원 재직 직급에 따라 내려갈 수 있는 감사의 급도 차이가 난다. 시중 은행 감사는 급이 조금 높다. 대부분 금감원 국장급 이상이다. 지방 은행이나 증권사, 보험사 등은 국장이나 부국장급이다. 저축은행은 이보다 조금 낮은 직위에서도 감사로 갈 수 있다.

시중 은행의 경우 박동순 국민은행 감사는 금감원 거시감독국장 출신으로 임기 3년의 상근감사에 내정되었다. 조선호 하나은행 감사는 금감원 총괄조정국장을 지냈다. 신한은행은 지난 7월 제주도에 내려갔던 원우종 감사에 뒤이어 이석근 금감원 부원장보를 차기 감사로 내정했다. 그러나 이감사는 지난 5월6일 “조직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라며 사퇴했다.

자격이 모자라는 사람을 감사로 내려보내 일부 금융회사에서는 임시 주주총회를 소집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금감원 리스크검사지원국장 출신인 김종건 한국씨티은행 감사는 두 번의 주주총회를 거친 뒤에야 감사에 선임될 수 있었다.

씨티은행은 지난 3월25일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했지만 사외이사 선임 건을 처리하고 당기순이익 규모와 이에 따른 배당액(주당 3백30원)만을 발표했다. 그리고 불과 6일 뒤인 31일 다시 한번 임시 주총을 열어 감사 선임 건을 처리했다. 김감사에 대한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 승인 심사가 정기 주총 전인 3월24일로 잡혔기 때문이었다.  

“금감원 대신 정·관계 인사 가는 것도 문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저축은행에도 금감원 출신 감사가 적지 않다. 윤익상 솔로몬저축은행 감사, 정석구 푸른저축은행감사, 유부철 경기솔로몬 감사 등 주요 저축은행 감사에 금감원 출신들이 내려가 있다.

특히 부산저축은행 계열인 부산2·대전·중앙부산·전주 저축은행에는 금감원 출신 감사가 있었지만 이번 사태를 막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특히 부산2저축은행의 문평기 전직 감사는 대주주인 박연호 부산저축은행 회장과 공모해 불법 대출에 가담한 것이 드러나 지난 4월14일 구속되었다.

최근 임직원들이 금품을 받고 6백억원을 불법 대출해주는 바람에 뱅크런이 일어난 제일저축은행에도 금감원 출신 감사가 근무하고 있다. 김상화 제일저축은행 감사는 금감원 조사2국 팀장을, 안정석 제일2저축은행 감사는 금감원 수석검사역을 거쳤다.

특히 저축은행 부실에서 금감원 출신 감사가 감시 기능을 못한 데에는 금감원의 구조적 문제가 작용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999년 은행·보험·증권·저축은행 등 네 개 권역이 합쳐지면서 탄생한 금감원은 이들 영역의 화학적 결합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는 평가가 많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승진하는 데 인기 영역과 비인기 영역이 확연히 갈렸는데 저축은행 쪽은 대표적인 비인기 영역이다. 그래서 인력 물갈이가 잘 안 된다. 승진 대상에서 밀리고 미래를 생각할 경우 감시 대상인 저축은행과 친밀하게 지낼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결국 높아지는 친밀감만큼 어지간한 편법은 눈감아줄 개연성도 커지는 구조였다는 얘기이다.

검찰은 금감원과 저축은행의 유착 관계에 본격적으로 칼을 대기 시작했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 보해저축은행 등의 수사에서 이미 금감원 전·현직 간부 10여 명을 사법 처리하는 등 ‘검은 유착’을 정면으로 파헤치고 있다.

3월 결산법인인 증권사와 보험사들의 주주총회가 6월까지 예정되어 있고, 6월 결산법인인 저축은행들의 주주총회도 하반기에 남아 있어 2011년 감사 수요는 늘어날 전망이다. 반면 지난 5월4일 금감원은 전·현직 임직원을 금융회사의 감사로 내려보내는 관행을 철폐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금감원의 쇄신 내용은 바람직하지만 감사 선정 방법에 대해서는 두고 보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국내 증권사 팀장은 “만약 금감원 출신이 감사에서 빠지게 될 경우 결국 감사원이나 한국은행 등 다른 기관 출신이 차지하게 될 것 같다. 그보다 더 큰 우려는 이 분야를 잘 모르는 관료나 정치권에서 낙하산으로 채울 수도 있지 않겠나. 빈자리를 누가 채울 것인지는 계속 지켜보아야 할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