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나라의 ‘잊혀질 권리’를 찾아서
  • 김회권 기자·이규대 인턴기자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1.05.15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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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세계에서 내뱉은 말은 공기 속으로 사라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잊히기 마련이다. 반면, 온라인 세계에서 내뱉은 글은 사라지지 않고 인터넷 어딘가에 저장되고 남게 된다. 글을 내뱉기는 쉽지만 그것을 없애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자신의 글이나 사진이 돌아다닐 경우 이것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일명 ‘무한 복제’와 ‘무한 펌질’을 통한 확산은 사용자의 통제 능력을 벗어나기 일쑤이다.

자신이 직접 올린 글로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경우는 허다했다. 사적으로 남겨놓은 글을 누군가 퍼가면서 여론의 돌팔매질을 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 저잣거리에서 돌팔매질로 죽임을 당하던 전근대적 형벌은 온라인 세상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원래는 유명 인사들이 주된 대상이었다. 병역 면제 의혹을 받던 가수 MC몽은 한 포털 사이트에 치아 발치와 관련된 병역 면제 방법을 묻는 글을 남긴 것이 드러나 여론에 난타를 당했다. 자신도 2005년에 남긴 글이 6년 뒤에 이렇게 문제가 될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 분명하다.

이제는 일반인들의 흔적도 유포되고 공격당한다. 북한이 지난해 11월 연평도를 포격한 날, 몇몇 여성들은 자신의 트위터에 “피난을 가더라도 명품 가방에 짐을 챙겨갔으면 좋겠다” “남편의 생일을 맞아 북에서 쏘아준 축포인가”라는 글을 남겼다. 이것은 곧바로 스크린캡처가 되어 여러 게시판으로 퍼져나갔다. 글을 남긴 사용자의 사진·아이디·이름·생년월일·휴대전화번호·이메일 등이 모두 노출되었다. 검색을 통해 공개된 개인정보는 여과 없이 대중에 드러났다.

유럽에서는 인터넷에 오른 정보들로 인해 생기는 사생활 침해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 인터넷에 올린 기록을 없애려면 인터넷업체를 반드시 통해야 한다. 정보는 개인의 것이지만 정보의 삭제 권한은 기업에 있는 셈이다. 일단 삭제했다고 해도 ‘복원 가능성’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의 데이터를 웹 공간에서 퇴출하려 해도 그 의지와 반대로 ‘저장’되고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는’ 위험은 존재한다.

무심코 남긴 SNS 기록이 인생을 바꾼다

ⓒ시사저널 우태윤

그래서 유럽연합(EU)은 인터넷 공간에서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 즉 자신의 데이터를 완전히 삭제하는 것을 기업에 요구할 수 있고, 기업은 이런 요청을 책임 있게 실행해야 할 권리를 설정하려고 움직이고 있다. 우리 정부도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최근 ‘잊혀질 권리’에 관련한 제도적 검토에 나섰다.

정보 수집과 인맥 만들기가 요긴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개인정보의 검색은 더욱 요긴해지고 있다. SNS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사진 및 동영상 등을 올리기도 한다. 만일 매일의 업데이트 정보를 퍼즐처럼 조합하면 사용자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누구인지 알 방법이 많다.

미국에서는 SNS가 이혼을 결심한 부부들 서로에게 치명타가 되고 있다. 지난해 7월7일 미국 결혼 전문 변호사학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회원 중 81%가 최근 5년간 이혼 소송에서 SNS에서 얻은 증거물을 상대측에 제시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증거 수집에 가장 많이 이용된 서비스는 페이스북(66%)이었고, 마이스페이스(15%)와 트위터(5%)가 그 뒤를 이었다.

이런 정보를 요긴하게 쓰는 곳은 또 있다. 최근 미국 기업에서는 입사지원서를 낸 구직자의 ‘흔적’을 검색하는 일이 적지 않다. 인사 담당자가 인재의 평판 평가 요소로서 SNS와 검색 엔진을 활용하는 것이다. 미국 취업정보회사인 ‘캐리어빌더’가 지난 2009년 주요 기업의 인사 담당자 2천6백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인사 담당자의 45%는 SNS로 취업 희망자의 성향을 조사한다고 답변했다. 이들 중 35%는 취업 희망자가 자신의 SNS 때문에 채용 전형 대상에서 제외되었다고 말했다.

SNS 정보 중 채용 과정에서 영향을 주는 요소는 무엇일까. 성적인 요소나 부적절한 사진이 53%이고, 음주나 약물 사용에 관한 정보가 44%였다. 이전 직장이나 동료에 대한 험담이 35%, 전 직장의 기밀을 언급한 경우도 제외했다는 답변이 20%나 되었다.

비록 미국의 상황이기는 하지만 국내에서도 이런 상황이 곧 도래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우리의 경우도 미국처럼 상당수의 젊은이들이 SNS를 사용하고 있으며, 다양한 개인정보가 온라인을 통해 떠다니고 있다. 검색을 통해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는 개인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아직 SNS를 통한 온라인 평판 시스템이 국내에서 제대로 시행된 적은 없다.

한 외국계 인사컨설팅회사의 수석위원은 “수많은 구직자의 웹 조각을 모아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그리 효율적이지 않다. 아직까지는 시행하려면 더 좋은 툴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생산은 쉽고 삭제는 어려운 ‘온라인 딜레마’

그러나 가까운 미래에 이런 시스템이 도입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헤드헌팅 업체 ‘커리어캐어’의 이은아 팀장은 “이직을 위한 평판 조회 서비스 중에 ‘소셜 미디어 조회’를 포함시키고 있다. 아직 소셜 미디어 조회를 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오지는 않고 있지만 앞으로는 주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아무 생각 없이 SNS에 친구와 나눈 직장 상사에 관해 올린 험담, 연예인에 대한 비난 등 과거의 흔적 때문에 자칫하면 직장을 얻지 못하거나 쫓겨나는 사례가 나올 개연성이 커진다는 이야기이다.

모바일 세상이 도래하면서 정보의 파급 효과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때로는 잘못된 정보가 유통되는 바람에 개인적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작사·작곡가인 조운파씨의 사례가 그렇다. 조운파씨는 남진의 <빈잔>, 태진아의 <옥경이> 등 많은 히트곡을 작사·작곡한 유명인이다. 그는 지난해 8월, 한 팬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조씨가 쓴 <달빛>이라는 노래가 인터넷에서 1970년대 유머 소설 <얄개전>을 쓴 조흔파씨가 쓴 시로 소개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직접 확인해보니 그렇게 잘못된 작사자로 기재된 블로그나 카페의 수가 엄청났다.

조씨에게 전화한 나계수씨는 “자신이 활동하는 카페에서 받은 <달빛> 음악 메일을 감상하다가 저작권협회 등 사이트를 검색해서 자료를 찾아보니 작사가가 ‘조흔파’가 아니라 ‘조운파’였다. 그래서 조운파 선생님께 사실 확인을 한 뒤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바로잡는 과정에 있었다. 조씨나 나씨 등 일개인이 하기에는 광대한 작업이었다. ‘조흔파’의 오기로 올라온 최초 자료들은 2000년부터 시작되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게 퍼진 상황이었다. 나씨는 “잘못된 정보가 이미 널리 퍼진 상태라 인터넷 쪽으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내가 직접 포털에 연락을 해도 이해 당사자가 아니어서 그런지 자기들이 거기까지는 손을 댈 수 없다고 말했다. ‘조흔파’로 검색이 안 되도록 막아버리면 될 것 같은데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지워달라는 요청을 하다 하다 너무 많아 힘에 부쳐서 어쩔 수 없이 남겨둔 상태이다”라고 말했다.

포털의 잘못된 정보는 사용자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삭제가 가능하다. 일일이 모든 게시물 주소를 확인해서 요청해야 하기 때문에 조씨의 경우처럼 확산이 오랜 시간 이루어졌을 경우 개인이 하기에 쉽지 않다. 생산은 쉬워도 파괴는 어렵기 때문에 ‘잊혀질 권리’가 중요해진다.

지난 5월2일 방통위는 국가 정보화전략위원회에서 ‘잊혀질 권리’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일단은 ‘SNS’에 한정해 적용하겠다는 방침이다. 방통위의 행보에 비해 기업은 이제 논의를 시작해보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포털 사이트 관계자는 “본인이 요청을 하면 언제든 반영할 생각이다.

사용자의 중요한 권리이기 때문에 보장해주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도 ‘이용자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형성된다면’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의 한 관계자도 “아직 ‘잊혀질 권리’에 대해서 합의된 견해는 없다. 각 포털들이 기본적으로 SNS 사업 등을 활발히 하고 있기 때문에 곧 논의할 필요는 있을 것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인터넷으로 편리해진 세상은 거꾸로 자연스럽게 잊을 일까지 되살리고 있다. 나 혹은 다른 사람이 생산한 정보가 나를 공격하는 상황에 매번 놓여 있는 셈이다.    


 자신이 지우고 싶은 정보를 삭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턴기자가 온라인에서 직접 자신의 신상을 털어보니…

구글에 내 이름 석 자를 넣었다. 한 커뮤니티에 올린 나의 글이 나왔다. 글을 쓴 아이디에 네이버 메일 주소를 붙여 검색해 보았더니 나의 개인 블로그를 찾을 수 있었다. 블로그 방명록의 친구들 코멘트는 나의 이름과 출신 지역을 알려주고 있었다.

네이버에서는 해당 아이디가 ‘클럽장’을 수행하고 있는 클럽을 검색할 수 있다. 내가 맡고 있는 클럽은 없지만 학교 동창회나 직장 커뮤니티에서 클럽장을 맡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학교나 직장에 관한 정보도 바로 노출될 것 같다.

네이버 메일 주소로 ‘싸이월드 사람 찾기’에서 검색을 해보았다. 내 미니홈피가 나왔다. 비밀 설정을 해두지 않은 다이어리가 무분별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미니홈피에는 내 트위터 계정 주소가 노출되어 있다.

트위터까지 흘러들어왔다. 트위터에 적힌 프로필 문구에서는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의 정보를 알 수 있다. 친구들과 주고받은 멘션을 쭉 읽어보면 나에 대한 세세한 정보 파악이 가능했다. 최근 무엇을 하는지, 언제 졸업했는지….

<시사저널> 이규대 인턴기자가 온라인상에서 직접 자신의 신상을 털어보았다. 이기자는 “실명과 소속 등을 직접 입력해서는 의외로 잘 나오지 않는다. 포털에서 개인정보는 걸러내기 때문인 것 같다. 반면 아이디를 경유하는 방법을 쓸 경우 개인정보나 해당 아이디가 쓴 글을 검색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아이디 뒤에 각종 메일 계정을 붙여보니 해당 작성자의 블로그나 미니홈피를 검색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게시물을 훑어보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해지더라는 말이었다. 이처럼 탐색해가는 과정에서 개인의 신상에 대한 힌트들은 조금씩 쏟아져 나온다. 개인정보를 검색하는 과정은 퍼즐 맞추듯 한 사람을 재구성해내는 과정이었다.

만약 이렇게 새어나오는 자신의 흔적들을 없애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요 포털에서는 자사 고객센터 페이지에 신고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두었다. ‘네이버’의 경우 고객센터에서 해당 게시물에 대해 신고를 할 경우 네이버 내의 블로그, 카페, SNS 서비스 등에 대해서는 즉시 삭제 요청을 반영한다.

 ‘다음’ 역시 마찬가지다. ‘구글’의 경우는 ‘구글 웹마스터 센터’에서 삭제를 요청해야 한다. 구글의 삭제 요청 매뉴얼은 한국인터넷진흥원의 기업자료실에서 제공하고 있다. 삭제 요청을 하기 위해서는 권리 침해 당사자가 본인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도록 신분증 등의 본인 증명 서류를 첨부해야 한다.

다만 타사의 콘텐츠는 제외된다. 네이버 관계자는 “다른 회사에서 운영하는 콘텐츠가 문제가 될 경우 검색 자체는 블라인드 처리가 되지만 해당 페이지 자체를 소멸시킬 수 없다”라고 밝혔다. 다음 관계자 역시 “타사의 콘텐츠 삭제는 해당 사이트 관리자에게 직접 요구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지우고픈 게시물의 주소를 일일이 찾아 제시해야 한다는 점 역시 사용자를 번거롭게 만드는 일이다. 손품(?)을 팔아야 자신의 흔적을 파괴할 수 있다는 점은 모든 포털 사이트가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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