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관계, 30년 전 대결의 시대로 돌아갔다”
  • 대담: 소종섭 편집장·정리: 김지영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11.06.1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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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남북 정상회담 11주년 맞은 이희호 여사 / “야권 뭉쳐야 여권 이겨…성 김 대사 내정자 아버지 일, 연좌제 식으로 보아선 안 돼”

ⓒ시사저널 이종현

 서울 마포구 동교동 178의 1번지.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 사저’ 대문 옆에는 아직도 ‘김대중’ ‘이희호’ 이름이 아로새겨진 문패가 나란히 걸려 있다. 사저 앞마당에는 전직 대통령 부부의 친구였던 참새 떼가 지금도 끼니 때가 되면 어김없이 날아든다. 오는 8월18일이면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2년째이다. 동교동 사저에는 김 전 대통령의 숨결과 흔적들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6월15일은 첫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지 11주년이 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꽁꽁 얼어붙은 남북 관계가 언제쯤 해빙될지는 아득하기만 하다. 6·15를 정확히 일주일 앞둔 6월8일 오전, <시사저널>은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을 동교동 사저에서 만났다. 이여사는 매주 두 차례씩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김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다. 이날도 권노갑·한광옥·김옥두 전 의원 등 동교동계 인사 35명과 함께 참배를 마치고 막 돌아온 참이었다. 이여사는 최근까지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지 않았다고 한다. “고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라는 것이 이여사 비서의 전언이다. 이여사는 올해 89세의 고령이다. 하지만 본지 취재진과 일일이 악수하는 손에서는 젊은이 못지않은 ‘강한 힘’이 느껴졌다.

건강해 보이신다.

건강은 좋은 편이다. 건강을 유지하는 별다른 비결은 없다. 다만 오래전부터 규칙적인 생활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식사나 수면 시간도 규칙적으로 하고 있다.

여사께서 생각하는 건강 비결은 무엇인가?

특별한 비결은 아니겠지만, 마음의 평화가 중요한 것 같다. 조그만 것을 가지고도 ‘이것이 잘못되면 어떡하나’라고 고민하는데, 나는 그런 것이 없다. 마음을 편하게 갖는다. 과식하지 않으면서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는 것도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하루의 일과가 보통 어떠한가?

시간이 있을 때마다 성경이나 책을 읽는다. 찾아오시는 손님들도 만나고, 특별한 행사가 있으면 지방에도 가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족들, 손자·손녀들을 자주 본다. 남편을 따르는 정치인들이 지금도 많다. 가끔 찾아오시면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를 듣는다. 일주일에 두 차례씩 현충원에 들리고 있다. 이번 주말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2박3일 동안 전북 무주 반딧불 축제에 들렀다가 충남 태안 안면도로 여행을 갈 계획이다. 그리고 매달 보육원이나 장애인 시설 등을 찾아 원생들과 선생님들을 격려하고 있다. 

권양숙 여사와의 주말 여행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가?

작년에 내가 (전북) 무주구천동에 갔다가 권여사를 청해서 하루를 같이 지낸 적이 있다. 구천동에 있는 와인 동굴에 같이 들어가보기도 했다. 5월23일 (노 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마치고 권여사가 힘들어할 것 같아서 내가 무주 여행에 초청했고, 안면도는 권여사가 초청했다.

6월15일은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지 11주년이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지금의 남북 관계를 생각하면 암담하다. 6·15 당시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때는 우리 국민이 서로 만나서 같이 지낼 수 있는 기회가 금방 올 것 같은 희망이 있었다. 사실, 이산가족이 아니더라도 서로가 다 만날 수 있겠지 하는 희망과 기대가 있었다. 그 뒤로 이산가족이 만나고, 하늘길, 땅길, 바닷길이 열리고 개성공단도 만들어지지 않았나. 이대로 가면 통일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런데 현 정부가 들어선 후 역주행하고 있다. 그런데다 지난해에 천안함 사태 등이 일어나서 더 악화되고 말았다. 지금 상황은 6·15 이전으로, 20~30년 전 불신과 대결의 시대로 돌아가고 말았다. (우리나라) 식량이 남아도는데, 북한에 안 주고…. 그만큼 서로의 사이가 좋지 않아졌다. 그런데 이것이 언제 다시 복원이 될지 답답하다.

남북 관계를 잘 풀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가?

서로 왕래하고, 우리가 저쪽보다 가진 것이 많기 때문에 나누어 주고, 우리가 좀 찾아가서 어려운 사람들을 부둥켜안고 돌보아줄 것은 돌보아준다면 가까워질 것이다. 우리는 친형제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남북 정상급 지도자들이 우리 동족끼리 친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세계가 무어라 해도 우리가 그렇게 하면 국제 사회도 도와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막막하다. 다시 햇볕 정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3년째 이산가족 상봉도 중단되고, 금강산 관광도 하지 못하고 있다. 개성공단도 위태로운 지경이다. 남과 북이 결국 대화로 풀어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도 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하실 말씀이 많을 것 같다.

마음을 좁게 가져서는 안 된다. 넓게 가져야 한다. 저쪽에서 실수를 하고, 잘못을 했다고 해도 관대하게 용서해주겠다는, 그런 마음으로 대하면 그쪽도 감동할 것이다. 저쪽에 굶주리는 아이들이 있으니까, 저쪽에서 (식량을) 달라고 하기 전에 우리가 자체적으로 보내주고 돌보아줄 것이 있으면 돌보아주었으면 좋겠다.

▲ 지난 6월9일 저녁 여의도 63빌딩에 그랜드볼륨에서 열린 6·15 남북 정상회담 11주년 기념학술회의 및 만찬에 참석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남북 정상회삼의 역사성을 상기시켜며 적극적으로 햇볕 정책을 펼쳐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혹시 남북 갈등 문제를 풀기 위해 직접 방북하셔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실 의향은 없는가?

지지난해 남편의 서거 때 김정일 위원장께서 서울에 조문특사단을 보내주셨다. 거기에 답례도 하고, 2000년 보았던 평양도 다시 보고 싶고 해서 기회가 되면 평양에 한번 가보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환경이 좋지 않다. 남북 문제는 책임을 맡은 당국자들끼리 해야 할 일이다. 내가 나설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즘 물가도 오르고, 등록금 문제도 심각하다.

생활이 더 어려워졌다. 그래도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은 집 몇 채씩 갖고 있다. 외제품이 아니면 물건을 사지도 않는다. 그런 사람들이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돌아보느냐 하면, 돌아보지도 않는다. 조금 잘사는 사람들이 자기보다 못사는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

여사께서 생각하시는 DJ의 삶과 사상의 핵심은 무엇인가?

돌아가실 때도 얘기하셨지만,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 그것이 말로는 쉽지만 참 어려운 일이다. 양심에 따라 행하려고 계속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생각도 많이 날 것으로 안다. 특히 언제 가장 생각이 많이 나는가?

이렇게 6·15 기념일이나 돌아가신 날, 노벨평화상 수상일이 되면 많이 생각난다. 하늘나라에서 지금의 상황을 보시고 걱정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며칠 전 한강을 따라 드라이브를 하면서,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 들렀다. 생전에 가끔 남편과 드라이브하던 곳이다. 함께 꽃구경을 다니고, 동교동 응접실에서 정원의 꽃과 나무, 날아오는 참새를 바라보며 차를 마시던 일이 기억난다. 어제는 인터넷에 올라온 ‘돌아가신 분’(김 전 대통령)의 역사와 관련해 평가한 글을 읽었다. 

내년에 총선과 대선이 있는데.

나라가 잘되기 위해서 좋은 지도자가 나오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직접 정치 쪽에 관여해서는 안 되고, 할 생각도 없다. 확실히 나라가 잘되려면, 지도자가 정말 훌륭해야 한다. 그래야만 나라가 건전하게 잘 성장해나갈 수 있다.

어떤 지도자가 훌륭한 지도자라고 생각하는가?

우선 민주주의 정신이 투철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이상 국가이겠지만 국민 개개인의 의견이 존중되는 사회, 고루고루 같이 잘살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누구라고 지적할 수는 없지만, 민주주의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하면서 나라를 이끌어가면 잘되지 않겠나.

여사께서는 여성운동을 많이 하셨다. 그런 면에서 여권 유력 주자인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도 여성이 아닌가. 여성 대통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능력이 있으면 여성이고, 남성이고 구별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다. 과거와 달리 부모들이 딸에게도 (아들과) 같은 기회를 주어서 여성들이 많이 발전했다. 여성들도 이제 법적으로 남성과 동등하다. 하지만 실제 내면을 보면 그렇지 않은 부분도 꽤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야권에서는 연대 등 여러 논의가 나오고 있는데.

야권이 뭉쳐야 한다. 뭉치지 않고는 여당을 이길 수 없다. 여당이 국회의원 수가 많고, 같은 정권을 이어가려 할 것이 아닌가.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그러려면 각기 떨어져 있는 야당이 힘을 합해야지, 따로따로 하게 되면 이것도 저것도 다 잃게 된다. 하나가 되어야 한다.

차기 주한 미국 대사로 재미교포 1.5세대인 성 김 미국 국무부 북핵 6자회담 특사가 내정되었다. 특히 김내정자의 아버지 김재권씨(1994년 작고)는 1973년 일본에서 ‘김대중 납치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주일 공사로 재직한 사실이 있다. 일각에서 김 전 공사가 당시 납치 사건에 개입되었다는 의혹도 일었다.

성 김의 아버지를 잘 안다. 주일 공사로 있을 때, 우리가 치료를 받으러 갈 겸 일본을 자주 갔다. 갈 때마다 성 김 아버지가 친절하게 우리를 돌보아주시고 잘해주셨다. 그랬는데 납치 사건이 있었다. 성 김 아버지도 위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했을 것이다. 공직에 있는 한 지시를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시를 따르지 않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렇다 보니, 결국 본의 아니지만 그렇게 납치 사건에 관련이 되었다. 그래도 양심이 있어서 그 다음부터는 숨어서 지냈다고 한다. 내가 전해 듣기로는 미국 LA에서 한국 사람들이 많지 않은 곳으로 가서 지냈는데, 그것도 상당한 고통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죗값을 지불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성 김은) 당시 열세 살 정도였는데, 그가 무엇을 알았겠나. 아버지가 아들하고 그런 문제를 의논할 연령 차이는 아니지 않나. 연좌제 식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김 전 공사나 성 김 대사 내정자를 만났었나?

만날 기회가 없었다.

대사로 부임해 인사를 오면 무슨 말씀을 해주고 싶은가?

대사로서 잘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지난 3월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당한 일본 국민을 위로하는 편지와 성금을 간 나오토 일본 총리에게 전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국민들의 일본 구호 성금도 잇따랐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잇따른 독도 관련 망언과 독도 영유권 교과서 기술 문제로 국민 감정이 다시 안 좋아졌는데.

일본이 쓰나미와 지진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을 당하고 피해를 입은 일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하루속히 일본이 대재앙에서 벗어나 새로운 희망을 찾기 바란다. 그리고 독도 문제나 교과서 문제에서 일본 정부나 일본 국민들이 과거사를 똑바로 인식하고 진정으로 사죄하고 반성하고, 또 후세들에게 올바르게 교육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했을 때 일본은, 한국은 물론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와 손을 잡고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

얼마 전 신정아씨가 자서전 <4001>에서 ‘외할머니’에 대해 기술한 부분이 있다. 그 신씨의 ‘외할머니’를 이여사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런 얘기가 돌았던 것을 잘 안다.(웃음) 그런데 내가 언제 딸을 가져봤어야지. 신정아라는 이름도 신문에서 나와 처음 알았다. 그전에는 몰랐다. 그리고 내가 외할머니라면 그동안 왜 한 번도 나를 찾아오지도 않았겠나. 나는 딸이 없지 않은가.

이명박 정부가 임기 4년차를 맞았다. 임기 말에 어떻게 해야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다고 보는가?

이명박 대통령께서 잘 하시리라 생각한다. 서민들의 고통, 남북 관계 불안감 등 지금 국민들이 원하는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꼭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무엇일까?

우리 사회는 아직도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등록금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젊은이들, 월급으로는 생활비 충당도 어려운 비정규직이 많이 있다. 이런 문제들이 빨리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남북 관계를 빨리 정상화해야 한다.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처럼 남북이 서로 왕래하고 협력하는 관계로 빨리 돌아가야 한다. 모든 국민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남과 북이 손을 잡고 세계에서 우뚝 서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가?

내 나이가 아흔 살이 다 되었다. 특별히 계획을 갖고 일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다. 건강을 잘 유지하면서 남편의 유지를 받드는 일을 힘닿는 대로 하려고 한다. 그리고 시간과 힘이 되는대로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 불우한 친구들을 찾아가 격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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