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스트 박태규와 어울린 여권 인사들은 누구인가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1.07.05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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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규 검찰총장이 캐나다 연방 검찰총장에게 부산저축은행 로비 의혹의 열쇠를 쥐고 있는 박태규씨의 조기 송환을 요청했다. 그만큼 검찰의 입장이 다급하다는 반증이다.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내려면 박태규씨에 대한 수사가 매우 중요하다. 과연 그의 주변에는 어떤 인물들이 연결되어 있을까. 박태규씨의 마당발 인맥을 파헤쳤다.

김준규 검찰총장이 6월2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검사협회(IAP) 연례 총회에서 브라이언 손더스 캐나다 연방 검찰총장에게 박태규씨의 조기 송환을 요청했다. 박태규씨는 부산저축은행의 거물급 로비스트로 알려진 인물로, 현재 캐나다에 도피 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제 행사 참석차 방문한 외국의 대표단을 따로 만나서 이렇게 직접 실무적인 요청을 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만큼 지금 검찰의 입장이 다급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국회는 6월29일 본회의를 열어 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 계획서를 처리했다. 국정조사 기간은 8월12일까지 46일간이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검찰 수사에 대해 ‘불신감’을 공공연히 표출해왔다. 심지어는 이재오 특임장관까지 나서 “(검찰 수사 결과를) 나도 못 믿겠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 사건을 수사해온 검찰 입장에서는 부실 수사라는 오명과 함께 ‘또’ 한 번 치욕을 당한 셈이다. 여기에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 문제까지 겹치면서 정치권을 향한 검찰의 불만 역시 대폭발로 치달을 수 있는 일촉즉발의 형국이다. 

“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변죽만 울렸다”라는 따가운 비난 여론은 검찰을 적잖이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박태규씨에게 목을 매고 있는 검찰의 절박한 심경은 여기서 비롯된다. 사건 초기만 해도 검찰 안팎에서는 “마침내 정권 말기에 ‘초대형 게이트’가 터졌다” “검찰이 드디어 명예 회복을 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라는 기대감이 분출했다. 그러면서 저축은행 불법 로비 의혹과 관련해 정치권 인사, 특히 여권 인사들의 이름이 검찰청사 담장 밖으로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맥이 빠져버렸다. 대검 중수부 내부 사정에 정통한 인사는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수사하는) 중수부 수사가 소강 상태이며, 이미 마무리 수순에 들어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가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이다. 정치권에서 마치 조롱하듯이 검찰의 부실 수사를 강하게 질타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박씨가 해외 도피한 것이 결정적이었던 셈이다.

 

▲ 박태규씨의 아지트였던 서울 논현동의 ㅇ고깃집(왼쪽)과 ㅎ일식집 및 ㄹ룸살롱(오른쪽). ⓒ시사저널 박은숙

 

현 정권 청와대 수석·고위직 지낸 인사와 어울려

박태규씨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었다. <시사저널>이 지난 제1131호(6월21일자)에 내보낸 ‘박태규, 누가 빼돌렸나’ 보도는 상당히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나마 박씨에 대한 실체에 어느 정도 근접한 내용 때문이었다. 이 보도 이후 박씨에 대한 추가 제보와 함께 관계자들의 증언이 더 이어졌다. 박씨의 실체는 그야말로 양파 껍질처럼 한 꺼풀씩 벗겨지면 벗겨질수록 새로운 의혹이 생겨나는 미스터리였다.

박태규씨의 인맥을 보면, 정·관계뿐 아니라 언론계와 법조계까지 마치 거미줄처럼 촘촘하다. ‘박태규 사람들’이 어디까지 퍼져 있는지도 현재로서는 정확히 가늠하기 힘들다. 박씨는 2010년 6월 부산저축은행이 삼성꿈장학재단과 포스텍으로부터 각각 5백억원씩을 끌어와 유상 증자할 때 여권 실세에게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또, 부산저축은행이 자회사인 중앙부산저축은행과 전주저축은행 등을 지난해 매각하려는 과정에서 박씨가 정·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도 의문의 대상이다.

박씨의 막강한 인맥 저수지는 바로 정치권이었다. 올해 72세인 박씨는 정계와 꽤 오랫동안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의 지인과 주변 사람들의 전언에 따르면, 그는 젊은 시절부터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다. 멀리 보면, 1960년대 야당의 지도자급 인사였던 박 아무개 의원의 비서였다는 말도 들린다. 하지만 이보다는 전두환·노태우 정권의 주류였던 민정계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탄탄한 인맥을 구축했다는 증언이 새롭게 제기되었다.

정치권에서 20년 이상 활동하고 있는 한 인사는 지난 6월29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몇 해 전에 박회장(박태규씨를 회장으로 칭했다)은 검은색 안경테를 쓰고 다녔고, 과거에 민정계에서 활동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김영삼 정부 때는 상도동계와, 김대중 정부 때는 동교동계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당시 여당 색채가 강했던 ‘한 중앙 일간지’의 ‘명예 회장’ 명함을 가지고 다녔다. 당시 여당 사람들의 모임에도 가끔 참석해 술값을 내기도 했다. 특히 동교동계의 한 핵심 실세와 절친했던 것으로 안다.”

‘동교동계 핵심 실세’는 7월1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박씨는 1960년대 야당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내가 박씨를 알기는 하지만, 만난 지 10년이 넘었다. 박씨와 예전에 골프를 같이 치기도 했지만 단 둘이 만난 적은 전혀 없다. 항상 언론사 간부들과 함께 만났다”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정치권의 인사는 “박회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 등장한 집권 세력 인사들과 가까웠다”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처세의 달인’ ‘민원 해결사’로도 통했다고 한다. 과거 여권의 한 인사는 이런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10년 전쯤 여당의 한 국회의원이 자신에게 청탁이 들어온 민원을 해결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였다. 이를 본 다른 여당 동료 의원이 ‘무얼 그리 걱정하느냐. 박회장(박태규)에게 부탁하면 되지’라고 했고, 실제로 박회장에게 부탁해서 민원이 해결된 적도 있었다. 당시 박회장은 공무원을 통해서 민원을 해결했던 것으로 안다.” 박씨의 인맥이 얼마나 탄탄했는지, 거기서 나온 영향력이 얼마나 셌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박씨가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여권 인사들과 가까웠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박씨와 술자리를 몇 차례 가진 적이 있는 법조계의 한 인사를 지난 6월22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 인사는 “박회장은 술자리에서 (이명박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를 잘 안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그와 박회장은 매우 가까운 것 같았다. 한번은 현 정권의 청와대에서 고위직을 지낸 인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가 박회장과 동향이라고 들었다”라고 말했다.

박씨 송환 여부에 수사 성패 달려

법조계와 언론계에도 박태규씨의 인맥 그물이 치밀하게 짜여 있다. 기자는 박씨와 술자리 등에서 여러 차례 만남을 가졌던 언론계와 법조계 인사 여러 명과 접촉했다. 그들은 “박회장과 만난 적은 있지만, 가깝지는 않았다.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몰랐다.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였다는 것도 최근에서야 알았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박씨의 술자리에 초대된 적이 있는 전직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는 “2년 전쯤 ‘박회장을 형님으로 모시는 한 사업가’로부터 전화를 받고서 술자리에 갔더니 거기에 박회장이 있었다. 거기서 홍상표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인사하기도 했다. 당시 YTN에 근무하고 있던 홍 전 수석의 인상이 워낙 깔끔해서 지금도 기억이 난다. 또 ‘한 유력 일간지’ 출신 청와대 행정관을 소개받기도 했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직 검사들이 박씨와 어울렸다는 말도 들렸다. 한 변호사는 “나는 박회장의 술자리에서 현직 검사들을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박회장과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현직 검사들과도 술자리를 갖는 등 친밀한 만남을 가졌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로비’는 비밀스럽고 음모적인 부분이 적지 않다. 드러내놓고 할 행위가 아니다. 부산저축은행의 정·관계 로비의 핵심 인물인 박씨가 입을 열지 않는다면 또 하나의 미제 사건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검찰 수사 진행되던 시기에도 단골 식당에 자주 드나들었다

부산저축은행 거물급 로비스트로 통하는 박태규씨가 자주 드나들었던 아지트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경복아파트 사거리 일대의 고급 음식점과 룸살롱이었다. 특히 ㅇ 고깃집이나 ㅎ 일식집에서 1차로 저녁 식사를 한 후, 2차는 인근 ㄹ 룸살롱으로 직행했다. 박씨의 지인들에 따르면, 두주불사형이었던 박씨는 폭탄주를 마시면서도 새벽까지 주연(酒宴)을 이어갔다. 특히 ㄹ 룸살롱의 안 아무개 마담이 박씨의 ‘전속 마담’이었다고 한다. 

지난 6월28일 저녁, 기자는 ㄹ 룸살롱을 찾아갔다. 한 종업원은 “안마담은 가끔 나오는데 오늘은 안 나왔다. 왜 그러느냐”라며 잔뜩 경계하는 눈치였다. “여기 단골손님인 박태규 회장에 대해 아느냐”라고 질문하자, 이 종업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기자를 피했다.

박씨의 단골 식당이었던 인근의 ㅇ 고깃집 여사장은 “박회장님이 자주 온 것은 사실이다. 나와 같이 골프를 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분이 사업을 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박회장님은 ‘예전에 어느 신문사에서 일했다’고만 말했다”라며 자신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ㅎ 일식당의 여사장은 “박사장(박태규)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농담도 잘 하시는 편이었다. 업무적인 말씀은 전혀 안 했다.

박사장이 두세 달 전쯤에 온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왜 안 오시나’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뉴스에 나오시더라. 그래서 그런 분인 줄 처음 알았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지난 4월12일 캐나다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일식당 사장의 전언대로라면, 박씨는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2월17일)를 당하고, 검찰 수사가 진행되던 3~4월께에도 단골 식당에 들렀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과연 박씨는 누구와 함께 이 일식당에 들러 ‘부산저축은행 사태’와 관련된 대책 등을 논의했을까. 일식당 여사장은 “손님에 대한 것은 일체 말할 수 없다”라고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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