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병에 걸린 군대, 문화의 뿌리부터 다잡아라
  • 표명렬 / 평화재향군인회 상임대표 ()
  • 승인 2011.07.12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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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해병대 부대원 사살 사건은 축적되어온 문제점들이 곪아 터진 것…군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 없애는 개혁 서둘러야

악성 종양의 중병에 걸린 환자라도 자각 증세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 초기에는 그냥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병세가 악화되어 3, 4기에 들어서게 되면 심각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지금 대한민국 국군은 매우 심각한 중병에 걸려 있다. 광복 후 국군을 완전 장악해 지금까지도 군부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일본군 출신 친일 세력들은 “군대는 본래 그런 거야”라고만 해왔다. 국민들은 “이것은 아닌데…”라는 의구심을 품어왔지만, 군대를 독점한 그들의 배타적 삼엄함에 주눅 들어 입을 다물어왔다. 이들은 군대가 병들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를 오히려 즐겼다. 오로지 자신들의 기득권을 영속화하기 위해서 군대를 이용해 먹는 데에만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최근 강화도 해병초소에서 발생한 김 아무개 상병의 부대원 사살 사건은 축적되어온 군의 문제점들이 곪아 터져 불거져나오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결코 군대의 특성 때문에 일어날 수도 있는 그런 일반적이고 단발적인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군대가 근본적인 원인을 종합 진단해 일대 수술을 단행해야 할 중병에 걸려 있다는 것을 알려준 대사건이다.

국군의 정통성과 정체성 확립 시급

주지하다시피 해병대는 사기가 높고 군기가 엄정해 대원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특히 이 정부는 해병대야말로 모든 부대가 이상적 모본으로 삼아야 할 최정예 부대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부대의 중대장이 부대원을 성추행하는가 하면 구타 사고가 빈발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까지 받았다. 지난 6월17일에는 대공 감시초소에서 민항기를 향해 포를 쏘는 등 위험천만한 사고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이 연속 터지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해병대만의 문제도 아니다. 바로 우리 군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가 매우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압축·웅변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05년 6월에도 경기도 연천 전방초소(GP) 내무반에서 김 아무개 일병이 소총을 난사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었다. 당시에도 “군, 이대로는 안 된다. 군대 문화의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대개혁을 단행해야 한다”라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일본군 출신 친일 간부들에 의해서 뿌리내려진 부하 인권 무시, 생명 경시, 무조건적인 절대복종 등 극단적 권위주의 문화를 타파해 인간 존엄의 민주적인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군대 문화를 창출함으로써 진정으로 강한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고들 주장했다. 여러 개혁 조치도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었으나 최근 몇 년 사이 이런 관심들은 중단되거나 회석되어 옛날로 회귀하고 있는 것 같아 심히 안타깝다.

이번에도 언론 향배에 초점을 맞춰 요란법석하다가 여론이 잠잠해지면 결국 몇몇 장병들에게 책임을 전가해 처벌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어, 본질적인 문제에는 접근도 하지 못한 채 내성만 더욱 키우게 될 것이 뻔하다.

그동안 우리 군에서는 너무나 억울하게 죽어간 의문사 희생자들, 자초지종이 분명치 않는 수많은 자살 사고들, 고참병의 구타와 육체적·정신적 폭압으로 인해 좌절과 분노에 병든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제도적인 모순 등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아 그 뿌리를 제거하려는 노력은 소홀히 하면서 감시·감독 체제만 강화하고 상급 제대 간부들의 책임을 면제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데에만 급급해왔다.

훈련과 보초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힘들어 군대 생활이 어렵다는 병사는 거의 없다. 군대 생활이 너무나 숨 막히게 지겹고 공포감을 갖게 되는 것은 지나치게 엄격 일변도의 잘못된 내무생활 문화 때문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를 악물어 잘들 견뎌내고는 있지만 우리 병사들은 인권과 인격 자율성이 철저히 무시·배제된 감옥 같은 질서의 황당한 내무 생활 분위기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 군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다. 

이것은 우리 군의 자랑스러운 정통성과 정체성인 항일 자주 독립 전쟁의 위대한 발자취와 정신을 고의로 지워 없애버렸기 때문에 장병들이 국군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구체적 근거를 잃어버려 생긴 병폐들이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 때문에 목숨을 바쳐야 하는지에 대한 의의와 보람을 갖지 못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복종에만 길들여져 상관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하면서도 겉으로만 강한 척 큰소리치는 이상한 군대가 된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막상 적과 맞닥뜨려 전투에 임하게 되면 필승을 기할 수 있겠는가?

▲ 지난 7월6일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해병대 부대원 사살 사건으로 숨진 해병대원 4명에 대한 합동 영결식이 열렸다. ⓒ연합뉴스

‘적개심 고취’가 정상적인 군대 교육인가

일본군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독립군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던 친일 매국노들을 영웅처럼 떠받들도록 조작해 세뇌 교육하고 있는 이런 군대인데, 과연 우리 장병들에게서 기꺼운 마음으로 임무를 관철하겠다는 의욕과 의지가 솟아나올 수 있겠는가? 잃어버리고 일그러진 국군의 정통성을 되찾고 바로 세워 철두철미하게 교육함으로써 자부심과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일이 국방 개혁의 시급·중대한 핵심 과제이다. 이것이 완전히 새로운 군대로 확 달라지게 할 수 있는 길이다.

전투형의 군대로 개혁한다며 평화와 자비의 마음으로 아로새겨져야 할 병사들의 심성을 증오와 분노의 적대 의식으로 망가뜨려 조폭처럼 잔인무도하게 길들이는 것이 강한 군대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염려된다. ‘대적관’이라는 말장난으로 포장한 동족 살상의 적개심을 고취하는 교육을 실시하는 이런 군대는 지구상에 없다. 적개심은 군인 정신 요소도 아니다. 이것은 정상적인 군대 교육이 아니다. 남북 화해와 평화 통일을 부정하고 영구·적대적 구도를 구축해야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확대할 수 있는 극우 정파의 목적과 이익에 복무하는 정치군인의 모습이다.

이런 인성 파괴적 교육의 결과가 바로 강화도 초소에서의 해병 전우 사살 사건과 같은 잔인무도함으로 나타날 수도 있음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불타는 증오심으로 살기가 등등해 “때려잡자 ○○○”이라 꽥꽥 외치고 김정일 초상화를 사격 표적지로 삼아 쏘아대는 이런 식의 군대를 전투형의 군대라고 여긴다면 이는 너무나 유치한 소아병적 착각이다. 강한 척 보이게 하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 평화 의식이야말로 진정으로 강한 힘이다.

개혁은 문제 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하고 있느냐의 여부가 개혁의 성패를 좌우한다. 문제가 무엇인지에 관한 전체적인 구도를 분명히 그린 다음 우리 군이 지향해야 할 비전을 기준으로 개혁해야 할 문제점을 도출한 뒤  경중완급을 가려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의 대상 영역은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영역은 무기 및 장비 등 물리적인 군사력 건설과 운영에 관련된 유형 전력 분야이다. 둘째 영역은 국방 외교 분야로서 주로 미국과 호혜 평등한 입장에서 해결하고 협력해야 할 과제가 많다. 셋째 영역은 군대 문화 개혁이다. 이것이야말로 국민들이 바라는 군대 개혁의 진짜 내용이다. 훈련이 고되기는 했어도 우애와 정이 넘치는 유쾌한 내무생활이었다고 추억할 수 있는 그런 군대로 거듭나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 군대가 친일 독재의 암흑시대를 거쳐오면서 형성되어 우리 삶에까지 뿌리내린 특이한 부정적 군대 문화가 군대는 물론 국민의식과 조직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를 심층 분석해 개혁하는 것이 한국군 개혁의 핵심 과제요, 내용임을 재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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