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칫하다 ‘외톨이’ 될 수 있다
  • 홍현익│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 ()
  • 승인 2011.08.03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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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회담’ 이후 6자회담 재개될 가능성 커져…북한의 ‘통미봉남’ 대비한 대북 정책 방향 전환 요구돼

▲ 지난 7월23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과 이야기를 나누는 마스모토 다케아키 일본 외무장관의 앞과 뒤로 박위천 북한 외무장관과 김성환 외무장관이 서 있다 ⓒAP연합

8·15를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이 고민에 빠졌다. 지난 7월22일 6자회담 남북 수석대표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회담을 개최해 일단 6자회담과 남북 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했다. 그러나 향후 대북 정책 방향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북한은 우리 정부의 금강산 관광과 관련한 실무 회담 제안을 사실상 거부하고 대규모 군사 훈련을 준비하는 등 대남 강경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반면, ‘발리 회담’ 직후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미국을 방문해 협상을 벌이면서 북·미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하고 있다. 발리 회담을 성사시킨 대북 정책에서의 유연성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취해진 것이므로, 우리 정부가 향후 기존 정책 노선을 고수해야 하는지, 아니면 이 기회에 정책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지를 선택하는 것은 중대한 고민 거리일 수밖에 없다.

향후 국제 정세는 6자회담이 재개되는 쪽으로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남북 관계는 이 흐름에 연계되지 않을 수 있다. 북한은 우리 정부와의 협상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눈치를 보아야 하기 때문에 회담에 응한 것으로 보인다. 즉, 남북 회담에 응하면 곧이어 북·미 회담을 할 수 있다고 미·중이 한목소리로 설득·압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내부 경제 사정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발리 회담을 계기로 향후에도 계속 우리에게 저자세를 보일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를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북한은 북·미 대화의 진전과 함께 우리에게는 ‘통미봉남’(通美封南)의 강경 입장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 주변 정세도 발리 회담 이후 빠르게 변할 가능성이 크다. 먼저 미국은 ‘천안함 사건’ 이후 북한을 압박해오다 올해 들어 ‘전략적 인내’에서 압박과 협상을 병행하는 ‘전략적 관여’로 정책 기조를 선회해 왔다. 단지 우리 정부와의 공조를 고려하고 미국 내 대북 강경파의 비판을 의식해 지금까지 반년 이상 더 인내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제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던 북한과의 대화를 진지하게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오바마 행정부도 북한의 도발로 대화 시도가 무산되었던 경험이 두 차례 이상 있으므로 섣불리 북한을 신뢰하거나 협상을 과속으로 진전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일단 우리의 요구대로 남북 비핵화 회담(발리 회담)을 한 차례 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6자회담 재개 움직임에 우리 고유의 조건을 계속 내세우기는 쉽지 않게 되었다.

“강경보다는 유연한 입장 취해야”

▲ 지난해 12월29일 통일부 새해 업무보고를 하러 청와대를 찾은 현인택 통일부장관(오른쪽). ⓒ연합뉴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은 종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6자회담의 조속 재개를 추진할 것이다. 한반도 정세 안정을 바라는 러시아 역시 영향력 확대를 위해 종전처럼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를 환영할 것이다. 또한 연초부터 북한과의 협상 및 관계 개선 가능성을 표출해온 일본 정부도 지지율 만회를 위해 북·일 협상을 추진할 것으로 보이고, 전례로 보면 간 총리의 전격적인 평양 방문 가능성조차 배제하기 어렵다. 일본이 경제 지원을 제공하면서 북·일 관계를 개선한다면 북한의 대남 협상력은 더욱 강화될 수도 있다.

거꾸로 그동안 원칙에 입각한 대북 강경책을 펼친 우리 정부는 오히려 압박을 받고 있다. 지난해 천안함 사건에 따른 ‘5·24 조치’로 개성공단을 제외한 모든 남북 교역이 중단되어 북한의 수입이 감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남북 교역이나 위탁 가공업에 종사하던 7백여 개 우리 기업도 덩달아 도산 위기에 처했다. 금강산·개성 관광 사업 중단으로 현대아산과 함께 금강산 인근 고성군의 경제도 상당한 손실을 보았다. 남북 교역 중단과 국제 제재로 위기에 처한 북한은 자원과 토지 이용권을 마구 중국에 넘기고 중국의 경제 지원에 점점 더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통일 과정에서 중국이 부당하게 개입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북·미 협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은 기로에 놓여 있다. 먼저 정부가 이제까지처럼 여러 가지 전제 조건을 내세우고 북한이 모두를 충족시켜야 6자회담이 재개될 수 있다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할 때,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의 적극적인 대화에 나선다면 우리는 고립될 수 있다. 설사 미·일이 우리 입장에 공조하더라도 북한의 선택이 관건이 될 수 있다. 북한이 이를 끝까지 거부할 경우 상황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이나 핵 실험 또는 대남 군사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 그 여파로 북한은 더욱 강력한 국제 제재를 받겠지만, 중국에 더욱 의존하면서 핵무장으로 돌진할 것이며 남북 간 정면 대결을 불사할 것이다. 우리에게도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북한이 북·미 협상에서 우리의 요구 조건을 수용해준다면 최선이지만, 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보다는 북·미 협상을 통해 미국은 식량을 지원하고, 북한은 우리가 내건 조건을 완화해 수용함으로써 통미봉남의 구도하에 6자회담으로 갈 가능성이 훨씬 더 커 보인다. 이 경우 우리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6자회담이 개최되어도 우리는 주도권을 행사하기 힘들고, 북한의 핵 포기 결단을 유도하는 대타협도 도출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6자회담 재개 조건에 대해 많은 북한 전문가는 이명박 정부를 향해 “한·미·일 공조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되 강경한 입장보다는 유연한 입장을 취해 주도권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는 조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현재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의 독자적 관계 개선에 나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우리도 남북 관계 정상화 쪽으로 정책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중국, 러시아, EU(유럽연합)는 물론이고 미국도 조만간 인도적 대북 지원에 나설 것이므로 우리 정부 역시 모니터링 강화 조치를 취한 뒤 북한 주민에게 인도적인 지원을 제공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동시에 대북 특사를 파견해 평화 공존과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통치자 간 의지를 교환하는 것이 남북 관계 정상화의 첩경이라는 지적이다.

이명박 정부가 3년 이상 원칙에 입각한 강력한 대북 정책을 고수해 북한의 기대 수준이 낮아졌기 때문에, 이제 전향적으로 북한과 협상을 벌일 경우 의외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많다. 물론 북한이 우리의 제의에 성실한 태도로 임하도록 하려면 우리 정부 역시 북한을 대하는 태도와 접근 방식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즉, 북한을 도덕적 잣대에 입각해 박대하기보다는 좀 더 큰 대의를 위해 ‘있는 그대로의 북한’과 상생한다는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남북 관계를 정상화하고 호혜적인 경협을 진흥해 북한을 철저히 통제·관리하는 동시에 개혁·개방으로 인도하는 것이 좀 더 현실주의적이고 합리적인 대북 실용 정책이라는 목소리가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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