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성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 라제기│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1.09.20 11: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통증> <도가니> <의뢰인> 등 사회 비판 영화 잇달아 개봉…‘불가침 영역’ 종교 집단에까지 일침 가하기도

철거민과 철거 용역 직원들이 낡은 건물 위에서 사투를 벌인다. 한 해결사 남자는 철거민과 대치 중에 건물에서 추락 사고를 당한 것처럼 꾸미려 한다. 철거민에 동정적인 여론을 뒤집기 위해 건설업자에게 돈을 받고 짠 일종의 계략. 새총으로 항거하는 철거민을 뚫고 옥상에 오른 남자는 용역 직원이 휘두른 곤봉에 의해 건물에서 떨어진다.

추석 개봉 영화 <통증>(감독 곽경택)의 마지막 장면이다. 바닥 인생을 사는 두 남녀의 농밀한 감정에 초점을 맞춘 영화로서는 의외의 묘사이다. 2009년 1월 벌어진 용산 철거민 참사가 떠오른다.

이뿐 아니다. <통증>은 안타까운 남녀의 사랑에 무게를 두면서도 우리 사회의 어둠을 곳곳에 배치했다. 한 몸 누일 곳조차 없어 찜질방을 전전하고, 지하철역 물품 보관함에 세간을 놓고 다니는 등장인물의 삶은 가슴을 누른다. 어린 시절 정신적 충격 때문에 통증을 못 느끼게 된 불행한 ‘재능’ 하나로 밥벌이하는 주인공 남자의 모습도 이 사회의 어둠을 대변한다. <통증>은 멜로의 외피를 두르고 있으면서도 우리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을 피하지 않고 있다.

 충무로가 변하고 있다. 사회 현안에 대해 은유법 대신 직설법을 택하며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명박 정권 초기, 사회 문제를 에둘러 표현하거나 눈에 띄지 않게 하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전형적인 정권 후반기 현상이거나 우리 사회의 심각한 병리 현상에 대한 영화의 자연스런 반영으로 볼 수 있다.

<통증>은 그래도 점잖은 비판에 속한다. 9월22일 개봉하는 <도가니>(감독 황동혁)는 이 사회에 대한 매서운 비판으로 일관한다. 공지영의 동명 소설을 밑그림 삼은 이 영화는 한국 사회의 총체적인 부조리를 헤집는다. 한 청각장애학교에서 벌어진 성폭행과 아동 학대 사건을 뼈대로 삼아 복지재단의 비리, 경찰의 뇌물 수수, 법원의 온당치 못한 전관예우 관행 등을 살로 붙이며, 지금 이곳에 직격탄을 날린다. 학연과 혈연, 지연 등 갖은 연으로 이어진 ‘끼리끼리’ 문화가 어떻게 거대 악을 형성하게 되는지를 촘촘하게 묘사하며 잘 만들어진 사회 비판 드라마로서의 면모를 발휘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이야기이니 비판의 울림이 더욱 클 영화이다.

<도가니>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장면은 우리 사회 불가침의 성역으로 여겨져온 종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다. 아이들을 유린하고도 뻔뻔스레 교회 장로임을 내세워 결백을 주장하는 청각장애학교 교장, 자신들의 장로가 억울한 누명을 썼다며 옹호 시위를 적극적으로 펼치는 교인의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에두른 비판일 수도 있고, 공동체의 이익보다 자신의 처지를 더 두둔하는 우리 사회 종교 집단을 향한 일침일 수도 있다.

9월29일 개봉 예정인 법정 스릴러 <의뢰인>(감독 손영성)도 비판의 칼을 벼리고 있다. ‘의뢰인’의 칼이 향하는 곳은 우리 사회 특권 집단 중 하나인 법조계이다.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된 한 남자를 둘러싼 검사와 변호사의 공방을 통해 법조계의 어둠을 직시한다. 검찰의 체면이 걸린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불법적 음모와 편법적 술수를 마다 않는 검사, 또 다른 음모 술수로 받아치는 변호사의 싸움이 비판적인 어조로 전해진다.


<모차르트 타운>은 <애니멀 타운> <댄스타운>으로 이어지는 전규환 감독의 ‘타운 3부작’ 중 첫 작품이다. 모차르트 선율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백인 여성 피아니스트의 내레이션이 들린다. 교환교수로 1년간 서울에 머무르면서, 이 도시가 어떤 즐거움을 줄지 기대된다고. 그러나 영화는 그를 중심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그와 무심하게 스치는 피아노 조율사, 흑인 이주 노동자를 거쳐 스냅 사진이 걸려 있는 한 가판점에 머무른다. 영화는 가판점 여자를 비추더니, 다시 이주 노동자, 조율사, 조폭 등으로 시선을 옮겨간다. 간간히 스치는 이들은 도시라는 생태계에서 자신도 모르는 무수한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영화는 이들의 관계를 무심한 듯 비추면서, 파국을 예비한다.  

가판점 여자는 남편이 가출한 뒤 좁은 가판대에서 카메라로 행인을 찍으며 외로움을 달랜다. 그와 채팅하는 조율사는 홀아버지와 함께 살며 갑갑함을 달래기 위해 가벼운 연애를 꿈꾼다. 가판점 여자에게 호감을 느끼는 조폭은 단란주점 관리를 하며 황폐한 삶을 살아간다. 단란주점 마담은 그를 좋아한다. 이주 노동자 부부는 단속과 임금 체불과 성폭력에 시달리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이 모든 삶에 스며 있는 핵심적인 정서는 외로움이다.

하룻밤 데이트에 나선 남녀는 섹스를 할 수도 있지만, 콘돔을 산 여자는 서럽고 쓸쓸한 마음에 운다. 마담은 조폭이 자기 엉덩이를 쥐고 자위하자 외로움을 느낀다. 백인 피아니스트는 살인을 하고 도망치는 이주 노동자와 남편의 연락을 받고 출국하는 가판점 여자를 공항에서 스치지만, 이들의 사연을 알지 못한다. 그가 스치듯 본 도시에는 피 냄새도 정액 냄새도 없었을 것이다. 다시 백인 교수의 내레이션이 흐르고, 마담은 눈물이 아닌 오줌으로 조폭을 애도함으로써, 백인 교수의 피상적 시선이 일종의 허축임을 보여준다. 역설적 엔딩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