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게임 시장에서 ‘안타’ 퍼붓다
  •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 승인 2011.09.2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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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넘어 감독 역할 맡는 게임도 승승장구…‘프로야구매니저’ 등 마니아층 양산하며 인기몰이

▲ NHN이 만든 게임 ‘야구 9단’의 전속 모델인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 선수(왼쪽)와 게임빌이 출시한 ‘2012프로야구’ 게임의 캐릭터(오른쪽). ⓒ게임빌 제공

가상이라는 대전제가 깔려 있는 게임이 현실성의 옷을 입었다. 몰입성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전통적인 축구 시뮬레이션 게임, ‘풋볼매니저’가 그렇다. 현실성과 몰입성의 잔인한 비례 관계로 ‘악마의 게임’ ‘이혼 제조기’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풋볼매니저는 호날두·박지성·루니 등 세계적인 축구 선수를 관리·감독할 수 있는 매니저 게임이다. 스포츠라는 분야는 사실성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경기나 TV 중계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익숙해질 수 있는 만큼 게임 욕구를 자극하는 요소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 선수를 중앙 미드필더로 내보내는 것이 불만이라면? 퍼거슨의 전술이 못마땅하다면?

일본 게임업체 세가(SEGA)의 개발 스튜디오인 스포츠 인터랙티브는 일찌감치 이 점을 간파했다. 풋볼매니저 KTH 관계자는 “실존하는 세계 축구 선수들의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실성이 강한 시뮬레이션 엔진을 사용해 정교하고 폭넓은 전략과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실제 경기 결과를 예측할 정도의 뛰어난 사실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라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스포츠를 기반으로 한 게임들이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풋볼매니저가 유럽의 인기 스포츠인 축구를 바탕으로 했다면, 국내에서는 야구이다. 한국 프로야구는 최근 6백만명 관중을 돌파하며 전례 없는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야구 게임 시장이 치열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른들의 놀이터’로 급부상

▲ 스포츠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매니저 게임의 시장성도 커지고 있다. 아래는 ‘풋볼매니저’ 게임. ⓒKTH 제공

야구 매니저 게임의 첫 테이프는 지난해 4월 엔트리브소프트의 ‘프로야구매니저(이하 프야매)’가 끊었다. 마구마구, 슬러거 등의 게임들이 이미 유저들을 다수 확보하고 있었지만 프야매와는 달랐다. 프야매는 게이머들의 시점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기 시작했다.

이제 게이머들은 날아오는 공을 정확히 타격해야 하는 ‘선수’에서 선수를 관리하는 ‘감독’이자 ‘구단주’가 되어야 했다. 직접 플레이는 사라졌고 선수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경기를 치르게 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좋은 선수를 영입하고 훈련을 시키는 것도 게이머의 몫이 되었다. 마구마구나 슬러거, 혹은 피파나 위닝일레븐 등 직접 선수들을 조작하는 스포츠 게임과는 달리 정적인 성격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익숙하지 않은 게이머들에게는 지루함이 느껴질 수도 있는 요소였다. 훈련과 작전, 분석이 있을 뿐 게이머가 할 수 있는 실질적인 액션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해당 스포츠 분야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매니저 게임의 시장성은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야구나 축구를 보며 즐기기만 했던 수준에서 분석하고 비판하는 눈높이까지 올라왔고, 선수들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새로운 전략과 전술을 구상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정교하고 사실적인 설정은 마니아층까지 양산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스포츠팬을 잠재적인 사용자로 확보할 수 있는 점도 새로운 게임 트렌드의 돌파구가 되었다. 엔트리브소프트의 한 관계자는 “(매니저 게임은) 스포츠가 가지고 있는 ‘보는 재미’와 함께 ‘내가 만약 감독이라면’이라는 바람을 충실히 전달할 수 있다. 직접 플레이를 해야만 하는 액션형 스포츠 게임들은 자신의 손이 느리면 재미를 느끼기 어렵지만, 스포츠 매니지먼트 게임은 실제로 스포츠 경기를 시청할 때와 유사하게 자신의 생각과 보는 것만으로도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라고 분석했다. 프야매는 국내 게임 시장에서 매니지먼트 게임이 하나의 트렌드로 굳어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본의 게임업체 세가 게임을 원작으로 한국 현지화를 거쳐 개발된 프야매는 월 매출액만 30억원이 넘는다.

이후 유사한 매니저 게임들이 줄을 잇고 있다. 올해 출시된 NHN의 ‘야구 9단’은 이미 프야매를 넘어서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랭키닷컴 집계에 따르면 야구 9단은 지난 8월 말 기준 일평균 45만5천8백77건의 트래픽을 기록하며 스포츠·레이싱 게임 분야 1위를 차지했다. 같은 집계에서 프야매는 5위(6만4천9백65건)를 기록했다. 야구 9단은 지난 5월에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출시 후 불과 두 달여 만에 80만명에 이르는 구단이 만들어졌다. 상승세를 이끄는 가장 큰 무기는 접근성이다. 야구 9단은 포털 사이트 네이버를 통해 서비스가 제공된다. 경쟁 게임보다 접근성에서 우위를 점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야구, 게임업계 블루칩으로 두각 나타내

게임의 색깔 역시 미묘하게 다르다. 프야매와 비교했을 때 야구 9단은 좀 더 세분화된 선수 육성 요소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선수를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고 이를 통해 선수를 영입하거나 구단 운영 자금을 획득할 수 있다는 점도 야구 9단만의 장점이다. 매시 정각에 진행되는 게임에 게이머가 실제 프로야구 감독처럼 개입해 작전을 지시하고 선수를 교체해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점도 경쟁 야구 매니저 게임에서는 접할 수 없는 특징적인 요소이다. 편의성도 야구 9단 인기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프야매가 게임 프로그램을 다운받고 설치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데 반해 야구 9단은 웹게임 형태로 만들어져 설치하는 것이 편리하다. 스마트폰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야구 게임이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면서 신작들도 끊임없이 예고되고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현실감을 높인 ‘실사형 게임’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마구마구’로 재미를 본 CJ E&M의 넷마블은 ‘마구마구’의 후속작 ‘마구 더 리얼’을 발표했다. 업계 1위인 넥슨도 야구 게임에 뛰어들었다. 넥슨은 최근 미국의 유명 게임업체 ‘2K 스포츠’와 손잡고 질 높은 그래픽과 야구의 사실적인 요소를 결합한 게임을 예고했다. 모바일 게임 업체들도 업그레이드된 야구 게임을 선보이기에 바쁘다. 게임빌은 자사의 대표 모바일 게임인 ‘2012프로야구’를 스마트폰용으로 출시할 계획을 밝혔다. 게임빌 관계자는 “풀HD 그래픽을 바탕으로 새롭게 터치스크린을 활용한 투구 시스템, 특유의 타격 시스템 등을 적용해 파격적인 진화를 이루었다”라고 설명했다.

야구가 이토록 게임업계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게임업계 관계자는 “MMORPG나 캐주얼 게임은 이미 포화 상태인 데다가 외국산 게임의 영향력 또한 크다. 그에 비하면 야구 게임은 블루칩이다. 게다가 시장은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있다. 연간 1천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후발 주자들의 반격이 거세지만 프야매나 야구 9단이 저변을 탄탄하게 만들어준다면 야구 게임 시장은 더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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