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노후의 삶 ‘따뜻한 콘텐츠’에 달렸다
  • 우재룡│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소장 ()
  • 승인 2011.10.2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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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소득·건강·사회 활동·취미 등 두루 ‘설계’해야 자금 문제와 인생 설계가 뒤엉켜 있으면 준비 허술해져

ⓒ일러스트 임성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은퇴를 매우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오히려 은퇴를 애타게 기다릴 정도이다. 연금 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는 데다 오랜 기간 노후 자금을 충분하게 마련해놓기 때문에 은퇴는 곧 ‘생계를 위한 근로에서 자유로워지는 즐거운 생활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래서 은퇴 후 생활을 황금의 시기(golden age)라고 할 정도이다. 하지만 은퇴 문화가 생소한 우리는 ‘은퇴’ 하면 퇴장, 은둔, 질병, 외로움, 소외를 떠올릴 정도로 부정적인 의미로 느낀다. 현재 은퇴를 고민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중년층들은 부모를 부양한 마지막 세대이면서 자식에게 부양을 기대하기 어려운 첫 번째 세대이다. 오랜 세월 동안 부모 부양, 자식 교육, 내 집 마련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조기 퇴직과 같은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당연하게 노후 생활비와 의료비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으며, 30년이 넘는 은퇴 생활을 보람 있게 영위하는 방법마저 잘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노후 준비에는 노후 생활비와 의료비를 중심으로 한 재무적 준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재무적 준비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모래 위에 세워진 누각처럼 허술해진다. 아무리 노후 자금이 많더라도 건강, 가족, 사회 활동 등이 뒷받침되지 못해 외롭고 무료한 생활이 기다린다면 곤란할 것이다. 그러므로 노후 행복을 위해서는 가족, 소득, 건강, 사회 활동, 취미·여가라는 다섯 가지를 골고루 갖추는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 은퇴 후 지나치게 건강에만 신경 쓰거나, 취미·여가 활동에만 몰두하게 되면 평균 수명 90세 시대에 너무 오랫동안 지루한 삶이 기다린다. 이제는 은퇴자들이 집에서 나와서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봉사와 재능 기부를 하는 ‘나누는 삶’을 통해 행복도를 높여야 한다.

은퇴 후 ‘최고의 친구’와 지낼 준비

▲ 은퇴 후에는 가족 생활·취미 활동·사회 활동 등을 균형 있게 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 뉴스뱅크(위) ⓒ 연합뉴스(아래)

첫째, 가족은 은퇴 이후 최고의 친구이다. 은퇴 이후에는 사회 활동이 줄어드는 대신 부인이나 자녀 등 가족과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그런데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오히려 전에 없던 갈등이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특히 평생을 회사에서 보내면서 ‘회사형 인간’으로 살아온 남편이 부하 직원에게 업무를 지시하듯 부인이나 자녀에게 이야기하다 보면 오해와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가족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은퇴 전부터 잔소리가 아닌 대화를 나누는 연습이 필요하다. 우스갯소리로 친구 사이에는 있는데 부부 사이에는 없는 것이 바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한 부부라도 표현하고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부부나 가족 간의 대화를 늘리고는 싶지만 평생 하지 않던 일을 은퇴하고 나서야 하려니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따라서 은퇴 전부터 가족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다.

또한 남편처럼 부인도 집안일에서 은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대기업에서 임원을 지낸 한 은퇴자는 부인이 언제부터인가 자주 화를 내면서 부부간의 갈등이 깊어졌다고 한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던 그는 친구의 조언을 듣고서야 비로소 해답을 찾았다. 자신은 은퇴해서 비교적 여유롭게 생활하고 있지만, 부인은 여전히 집안일 등에 치여 여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고민 끝에 일주일에 한두 번 이상은 외식을 해 부인이 그 시간만은 식사 준비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했다. 더 나아가 가끔씩이라도 설거지나 청소 같은 집안일을 나눠서 하니 부부 관계가 급속도로 좋아졌다고 한다.

둘째, 건강은 무엇보다 중요하며 행복한 은퇴 생활의 밑바탕이 된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 건강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꾸준한 운동과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통해 건강을 유지하고 활발한 노후 생활을 최대한 길게 연장해야 한다. 통계청의 ‘100세 이상 고령자 조사’에 따르면 오랫동안 건강하게 사는 이들의 장수 비결은 절제된 식습관(54.4%), 낙천적인 성격(31.0%), 규칙적인 생활(30.9%) 순으로 나타났다. 식습관과 관련해서는 채소류를 많이 먹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67.5%가 채소류를 좋아하고 있으며 47.2%는 육류를, 32.8%는 어패류를 선호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일반적인 상식과 다르지 않게 금주와 금연은 장수에 도움이 되는 듯하다. 고령자의 69.8%가 평생 금주를, 71.1%는 평생 금연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미있는 일’ 찾아야 행복

셋째, 즐거운 사회 활동은 은퇴 생활을 행복하게 하는 중요한 열쇠이다. 은퇴 이후의 일은 단순히 경제적인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삶의 보람과 역할에 대한 만족감을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또 일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유지해나갈 수도 있다. 또한 어떤 일을 하느냐도 매우 중요하다. 그저 빈둥댈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일이나 한다면 은퇴 이후의 삶이 무의미해질 수 있다. 미국의 은퇴 전문가인 어니 J. 젤린스키는 은퇴자가 추구해야 할 ‘재미있는 일’은 지위, 권력, 수입, 승진의 기회처럼 출세 가치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직업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재미있고 좋은 직업은 보수 없이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 곧 노는 것 같은 일이라고도 말했다. 어찌 되었든 결국 선진국의 은퇴 전문가들이 말하는 ‘앙코르 커리어’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아파트 경비원이나 행정 기관 업무 보조와는 다른 개념이다. 은퇴 후 추구해야 할 일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즐거운 일이어야 한다.

넷째, 자신에게 맞는 취미와 여가 활동은 노후를 풍요롭게 만든다. 노후에는 의무적인 일에서 벗어나면서 여가 시간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풍부하게 주어진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큰 과제가 되고 있다. 이 시간의 대부분을 텔레비전 앞에서 허비한다면 은퇴 생활은 지루해질 수밖에 없다. 적절한 여가 활동은 건강을 증진시켜주며 삶의 질을 높이고 생활의 만족감을 증대시켜준다. 여가 활동은 은퇴 생활의 모든 면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우선 여가 시간에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신체적 활동은 은퇴자의 건강을 지키는 데 기여한다. 운동과 같은 신체적 여가 활동은 은퇴 이후의 삶을 건강하게 만들어준다.

자원 봉사와 같은 여가 활동은 자신이 타인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확신을 갖게 해준다. 적지 않은 은퇴자들이 컴퓨터나 제과·제빵, 요리와 같은 자기 개발이 가능한 여가 활동을 통해 자신의 취미를 개발하고 기술을 습득해나간다. 여가 시간을 활용해 각종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다 보면 결국 취업으로 연결되어 경제적 소득원이 되는 사례도 많다. 여가를 잘 활용하면 은퇴 이후 닥쳐올 고독감이나 고립감을 해소하고 남은 삶을 의미 있게 재설계할 수 있다. 따라서 은퇴자들은 신체적 여가 활동, 자아 실현적 여가 활동, 사회 참여 및 자원 봉사, 능력 개발 등을 통해 노후 생활에 필요한 심신의 건강을 유지하고, 재미있고 보람 있는 활동 그리고 사회적인 접촉을 통해 생산적이며 통합적인 은퇴 생활을 만들어갈 수 있다.

▲ 서울 송파구 성내천 물빛광장에서 열린 ‘행복한 노년을 위한 러브샷’ 행사에 참석한 노년의 부부들이 러브샷 후 입을 맞추고 있다. ⓒ연합뉴스

현금 흐름 위주의 자산 포트폴리오 만들기

다섯 번째는 부와 소득이다. 은퇴 이후의 삶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미리 적절한 생활 자금을 만들어두어야 한다. 이때 생활 자금에서는 부동산이나 거액의 목돈보다는 매월 얼마씩이라도 일정하게 받을 수 있는 현금 흐름(Cash Flow)이 유용하다. 부동산이나 거액의 목돈은 바로 현금화하기 불편할 뿐 아니라 관리하는 데 어려움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저성장·저금리 기조로 고착되면서 목돈을 굴릴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현금 흐름에 대한 선호도를 높이고 있다.

은행의 예금 금리는 계속 낮은 수준인 데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지속되고 주식시장 역시 변동성이 커지면서 자산을 굴리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목돈 관리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원치 않게 판단력이 흐려질 수도 있고, 만일 치매나 뇌졸중이라도 걸린다면 더 이상 자금 관리가 불가능하게 된다. 그 밖에도 목돈을 가지고 있으면 주위 사람들이 빌려달라고 하거나 투자를 제의하는 경우가 많아서 제대로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자칫 무모한 창업으로 그동안 어렵게 모은 퇴직금을 한꺼번에 날릴 위험도 있다.

지나친 부동산 편중은 은퇴 이후 생길 수 있는 여러 현금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 부동산 자산은 금융 자산과 달리 즉각 현금으로 바꾸기 어려운 특징이 있다.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려 목돈이 필요한데 ‘땅만 팔리면 되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국에도 ‘캘리포니아의 땅 많은 가난뱅이’라는 표현이 있다. ‘부동산 부자’이지만 현금이 없어 고생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서둘러 금융 자산과 부동산 자산의 비중을 균형 있게 재조정해야 한다. 은퇴 이후 필요한 소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 등 ‘3층 노후 보장 체계’를 기반으로 한 연금 소득 확보가 중요하다.

우리는 노후를 매우 불안해하면서도 준비를 차일피일 미루는 태도를 너무 강하게 가지고 있다. 이제부터 은퇴 계획을 다시 세우자. 어디서 살며 무엇을 하며 제2의 인생을 보람 있게 보낼 것인가, 자녀와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 갈 것인가를 꼼꼼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러면 과감하게 많은 포기와 선택할 사항들이 나오며, 우리의 인생 설계는 명확해질 수 있다. 노후 준비가 허술한 것은 자금 문제와 인생 설계가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현명한 판단으로 이를 잘 풀어내야 한다.  


ⓒ연합뉴스
은퇴 후에 어디에서 살 것인지 물어보면 많은 사람이 전원주택이나 농촌 등을 막연하게 꼽는다. 한적한 시골에서 텃밭을 일구며 사는 것이 꿈이라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국토해양부 국토연구원 조사(2010 주거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은퇴 후 희망 생활 양식에서 전원 생활을 희망하는 비율이 45.18%로 도시적 생활을 희망하는 비율(33.76%)보다 높게 나왔다. 이처럼 전원 생활을 희망하는 비율이 높은 것은 우리나라가 농경 국가의 전통을 가진 데다 도시 생활로 심신이 워낙 지쳐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전 국민 중 90% 정도가 복잡한 도시에 살다 보니 노후는 생활비가 저렴하고 경치가 좋은 전원에서 편안하게 보내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는 것이다. 하지만 은퇴 이후의 주거지는 삶의 여러 방면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막연한 바람으로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 전에 꼼꼼하게 검토한 뒤 결정해야 한다. 어디에서 사느냐 하는 것은 주거 비용은 물론 가족이나 친구와의 사회적 관계, 기후나 의료 서비스에 따른 건강 관리 등에 영향을 미친다. 만일 주거지를 잘못 선택했을 경우 이를 되돌리는 데에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은퇴 이후의 주거지를 결정할 때에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교통이 편리한 곳이어야 한다. 많이 걷지 않고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이가 많아지면 걷는 것이 힘들고 불편해지므로 많이 걷지 않는 곳이 좋다. 특히 긴급할 때 교통수단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의료 시설·여가 시설 등 각종 복지 시설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야 한다.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 쉽게 의료 시설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다양한 여가 시설을 이용하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빈번한 접촉을 통해 사회적·심리적 만족감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은퇴 이후에 발생하는 생활 단계의 변화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이왕이면 모든 단계에 고루 적합한 주거 환경이 가장 좋다. 주거 계획을 세울 때에는 나이가 들면 노화가 진행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50대 중반과 같은 건강을 평생 유지하면서 살다가 인생을 끝맺을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은퇴 이후의 생활 단계는 60~70대의 활동기, 80대 초반의 회고기, 80대 중·후반의 남편 간병기 그리고 남편 사별 후 부인 홀로 생존기와 부인 간병기 등 총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은퇴 이후에는 생활 단계마다 라이프스타일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적합한 주거 환경도 바뀌게 된다. 활동기에는 꿈과 같던 집이 회고기나 간병기에는 악몽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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