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낙엽에는 ‘철저한 순서’가 있다
  •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1.10.31 01: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겨울나기 위한 나무들의 생존 전략 / 잎의 양분을 줄기로 옮긴 뒤 ‘떨켜’ 만들어 수분 공급 차단

가을은 낙엽의 계절이다. 하나, 둘, 셋…. 가을이 깊어질 즈음 거리에는 낙엽이 울긋불긋 수를 놓는다. 여름 내내 나뭇가지를 꼭 붙잡고 있던 조막손을 놓고 바닥에 수북이 쌓여 낙엽 밟는 이들에게 자연의 소리를 전하는가 하면, 바람결에 이리저리 뒹굴며 가을 냄새를 풍긴다. 그런데 낙엽은 마구잡이로 그냥 쏟아지는 것이 아니다.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에도 철저히 준비된 순서가 있다. 낙엽은 나무가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 과정이고, 지혜이다.

영양 만점인 잎이 그대로 떨어지면 에너지 손실 엄청 커

낙엽, 그것은 ‘스스로 버림으로써 얻는’ 나무들의 생존 전략이다. 동물은 살아가기 위한 양분을 식물이나 다른 동물에게서 얻고, 필요 없는 것은 몸 밖으로 배설한다. 그런데 식물에게는 자신이 살기 위해 필요한 양분을 만드는 부분이 노화해서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으면 배설과 같은 수단을 쓰지 않고 몸 자체를 버린다. 낙엽이나 마른 가지는 사실, 식물의 배설 작용으로 버려지는 것과 같다.

나무는 잎에 있는 엽록소를 통해 흡수한 빛에너지, 공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 뿌리를 통해 흡수한 물과 반응해 생명 활동의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을 만든다. 이를 ‘광합성’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나무의 잎과 줄기, 뿌리 중에 양분이 가장 많은 곳은 잎이다.

잎은 크게 잎맥과 톱니로 구성되어 있다. 잎맥은 물관과 체관이 있어서 물, 무기염류, 양분 등을 이동시킴으로써 식물이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기관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만든 양분을 식물의 모든 부위에 전달할 뿐 아니라 꽃과 열매를 맺게 하기 때문에, 영양 만점인 잎이 그대로 떨어져 나가게 되면 에너지 손실이 엄청 크다.

그래서 나뭇잎을 떨어뜨리기에 앞서 잎에 있는 양분의 50%를 줄기로 이동시켜놓는 작업이 먼저 이루어진다. 줄기로 옮겨지는 양분은 나무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질소(N), 칼륨(K), 인(P) 등이다. 이 작업이 낙엽 지는 순서의 첫 단계이다.

그 다음 단계는 잎자루에 ‘떨켜’를 만드는 일이다. 기온이 더욱 내려가면 기후가 건조해져 뿌리를 통해 빨아들이는 수분이 감소한다. 그러나 잎을 통해 발산하는 수분의 양에는 큰 변화가 없기 때문에 나무가 빨아들이는 수분보다 잃어버리는 수분이 점차 많아진다.

더구나 가을이 되면 빛의 양이 줄어듦에 따라 잎에서는 광합성이 거의 일어나지 않아 증산 작용으로 인한 물 손실, 열 손실이 클 수밖에 없다. 특히 활엽수의 경우 넓은 잎이 엄청난 양의 수분을 증발시킨다. 어느 한계를 지나면 나뭇잎을 통해 잃어버리는 수분으로 몸체가 더는 지탱하기 어렵게 된다. 이는 식물에 해가 된다. 따라서 식물은 몸체의 수분을 보존하고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잎을 떨어뜨린다.

그 첫 작업이 바로 나뭇잎과 가지를 잇는 잎자루에 코르크처럼 단단한 떨켜(세포층)를 만드는 것이다. 떨켜가 만들어지면 기공이 닫히면서 잎으로 드나들던 양분과 수분이 더 이상 공급되지 못하고, 그 결과 엽록소의 합성도 멈춰 파괴된다. 이로써 생명 활동을 멈춘 잎이 줄기로부터 떨어질 준비가 끝난다. 이때 비를 맞거나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또는 사람이나 동물들이 스치기만 해도 마른 나뭇잎은 줄기에 더 이상 붙어 있을 힘이 없어 떨어지게 된다. 이것이 낙엽이다.

식물들은 추위를 이기는 전략으로 크게 두 가지를 선택한다. 하나는 추위에 잎을 가지고 있으면 에너지가 소비되기 때문에 잎을 떨어뜨리는 것이고, 둘째는 따뜻한 봄이 되면 가장 먼저 많이 광합성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잎을 떨어뜨리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시사철 푸르른 상록수가 후자에 속한다. 또 새싹의 ‘눈’을 보호하기 위해 이듬해 봄까지 나뭇잎을 달고 있다가 새싹이 나오면 그때야 잎을 떨어뜨리는 나무도 있다.

그렇다고 상록수의 잎이 전혀 낙엽으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상록수의 잎은 가을에 한꺼번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년 조금씩 지고 봄에는 또 새잎이 돋아나기 때문에 항상 그 잎을 달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물론 두 전략 중 어느 것이 더 유리하고 불리하다고는 할 수 없다. 둘 다 생물들이 자신에게 맞춰 살아가는 전략이고 지혜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돋은 나뭇잎, 가장 늦게 진다

낙엽이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물이 도출해낸 해법이라면, 형형색색으로 물든 단풍은 자신의 몸속으로 이동할 수 없는 물질들이 모여서 내는 아름다운 색이다. 가을철 기온이 내려가면 잎의 엽록소 파괴가 급격히 늘어나 녹색이 줄어들고, 잎 속에 숨어 있던 안토시아닌과 카로티노이드 색소가 드러나 노란색과 주황색 단풍을 연출한다.

이는 엽록소와 결합되어 있던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아미노산이 떨켜로 인해 이동하지 못하고 잎에 축적되면서 잎의 산도를 높인다. 높아진 산도는 엽록소를 빠르게 파괴하고, 엽록소에 가려 있던 색소들이 색을 드러내는데, 이것이 단풍이다. 결국 잎이 녹색으로 보였던 이유는 녹색으로 보이게 하는 엽록소가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고, 엽록소가 파괴된 단풍은 잎을 떨어뜨리기 위한 하나의 과정인 셈이다.

그렇다면 낙엽은 어떤 순서를 가지고 지는 것일까. 낙엽 지는 순서는 가장 먼저 돋아난 나뭇잎이 가장 늦게까지 붙어 있고, 가장 늦게 돋아난 나뭇잎이 가장 먼저 떨어진다. 줄기의 안쪽부터 낙엽이 지기 시작해 나무 꼭대기의 잎이 마지막까지 남는다는 얘기이다. 이것은 식물의 성장호르몬과 관련이 있다. 성장호르몬(옥신, 지베렐린, 사이토키닌 등) 분비가 끝나는 순서대로 떨어져 썩으면서 나무를 먹여살리는 영양원이 된다.

낙엽은 그렇게 빛나는 임종을 마치며 아낌없이 후생(後生)의 거름으로 돌아간다. 숲 바닥에 쌓여 있던 낙엽이나 가지는, 햇빛으로 토양 온도가 상승하고, 그래서 왕성해진 미생물의 활동으로 썩기 시작해 좋은 비료로 재순환된다. 그 결과 식물이 없던 숲 바닥에는 새로운 작은 키 나무와 풀들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가을 끝자락에서 이제 남은 것은 나무들이 겨울을 잘 견뎌내는 일이다. 그리고 봄이 되면 새싹을 틔워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결국 가을은 나무들이 마지막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새 삶을 위해 최종적으로 자신을 정리하는 계절인 셈이다. 


ⓒ시사저널 이종현

가을 하면 낙엽, 낙엽 하면 도심의 도로변을 노란색 물결로 물들이는 은행나무를 빼놓을 수 없다. 은행나무는 소나무, 버드나무와 함께 3대 가로수로 심어져 늦가을의 정취를 더해준다. 하지만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린 은행 열매들은 가을의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코를 찌르는 은행 열매 특유의 고약한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은행나무 밑을 지나는 이들은 분뇨에서나 풍겨나올 법한 역한 냄새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린다. 몇몇 사람들은 바닥에 떨어진 열매를 피하려고 지그재그로 걷기도 하고, 아예 은행나무를 피해 멀찌감치 떨어져 걷기도 한다. 자칫 밟기라도 하면 신발에 묻은 냄새가 계속 따라다녀 그야말로 고역이다. 노란 은행잎의 아름다움으로만 보면 가로수로 안성맞춤인데, 고약한 냄새 탓에 생긴 ‘은행의 딜레마’이다. 도대체 은행 열매에서는 왜 이처럼 역한 냄새가 풍겨나는 것일까?

은행나무 열매는 외종피(은행 알 겉껍질), 중종피(딱딱한 껍질) 그리고 내종피(식용으로 쓰이는 연질 부분을 덮고 있는 얇은 막)로 되어 있다. 코를 움켜쥐게 만드는 고약한 냄새의 비밀은 바로 열매의 겉껍질에 있다. 겉껍질을 감싸고 있는 과육질에 ‘빌로볼(Bilobol)’과 ‘은행산(ginkgoic acid)’ 등의 유독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은행나무가 이렇게 고약한 냄새를 내뿜는 이유는 간단하다. 스컹크와 같은 자기방어의 일환이다. 곤충이나 새와 같은 천적들로부터 개체 수 증식의 원천이 될 씨앗(종자)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의 수단이다. 냄새가 고약하고 독이 있으면 동물들에게 기피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 다시 말해 고약한 냄새는 나무의 심통이 아니라 내년에 싹이 틀 씨앗에 끝까지 손이 타지 못하도록 노력하는 자구책의 하나이다.

은행나무의 자기방어 체계는 여러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그 1차 관문이 악취이다. 동물들이 이 성분에 닿으면 옻이 오르는 것과 같은 접촉성 피부염이 유발된다. 설령 동물(곤충)이 이 악취를 견뎌냈다고 해도 은행을 먹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중간 껍질인 중종피는 사람이 도구를 사용해도 벗겨내기 힘들 만큼 딱딱하다. 또 굳건한 의지로 두 관문을 넘어 은행을 먹었다고 하더라도 은행을 다량 섭취했다면 복통이나 설사 증세를 일으키기 십상이다. 그저 아름다운 가로수로만 여겼던 은행나무의 철저한 자기방어 체계가 참 놀랍지 않은가!

그런데 사람들은 왜 굳이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선택해서 심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공해에 잘 견디고 병충해에도 강해 생명력이 길기 때문이다. 다른 나무에 비해 성장을 잘한다는 것은 그만큼 예산 비용이 절감되는 효과 또한 가져오므로 가로수로 적합하다. 또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선사하고, 가을에는 아름다운 경관과 영양 많은 은행을 선물해 주기 때문에 일거양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냄새나지 않는 은행나무만을 심을 수는 없을까. 그럴 때는 수나무만을 골라 심으면 된다.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자라는데, 열매는 암나무에만 열린다. 우리가 열매라고 표현하는 것은 실은 열매가 아니라 은행나무 씨앗이다. 독이 든 과육을 제거하고 먹는 바로 그것이다. 은행나무의 고약한 냄새가 이 씨앗을 보호해 자기 종족을 번식하려고 오랜 노력 끝에 터득한 전략이라면, 희망을 품은 채 작별을 고하는 열매의 냄새가 구수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