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흘리며 나아간 사람들’을 두려워하며 쓰다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1.10.31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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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박해를 소재로 한 김훈 신작 장편소설 <흑산>, 세상의 야만성 들여다보는 눈 부족한 현실 꼬집어

▲ 흑산김훈 지음학고재 펴냄416쪽│1만3천8백원

역사를 읽어서야 현실에 눈을 뜰 때도 있다. 조선 민초들의 참상을 그린 김훈 신작 장편소설 <흑산>에서도 그것을 느꼈다. 소설에서 천주교도인 황사영은 ‘임금보다 더 높은 심판자가 있다. 그래서 다스림은 선해야 하고, 선하지 않은 다스림은 지금 당장 멸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작가가 현 세태 혹은 이 시대에 불편하게 느낀 것을 황사영의 입을 통해 말한 것은 아닐까.

<시사저널> 편집국장을 지낸 김훈 작가는 기자의 생각에 대해 “세태를 비판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당대에 속한 야만성이 보이지 않고 또 그 야만성을 들여다보려는 눈이 몹시 부족하다는 것을 말하려 했다. 우리 시대가 가진 야만성은 아주 많다. 그런데 그 야만성을 일상이라고 생각하니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을 돌아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야만성을 볼 수 있어야 그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라는 답변으로 ‘작의’를 설명했다.

불쑥 실례 하나를 덧붙였다. “얼마 전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전·의경 제도를 폐지할 것을 권고했다. 왜냐? 상습 폭행이 근절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방 의무를 다하러 온 젊은이들을 개돼지처럼 때린 것이다. 이런 것이 10년이 넘게 반복된다는 것은 국가가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 사회의 참패를 보여주는 일이다. 폭력이라는 당대의 야만성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또한 일상이라고 착각하는 데서 온 비극이다. 폭행당하고 자살하고, 총기 사고 내고, 탈영하고, 왜 그러겠나. 지도자들이 해결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흑산>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천주교도’로서 조선 사회의 전통과 충돌한 정약전·황사영 등 지식인들의 내면 풍경을 다루었다. 정약전은 한때 세상 너머를 엿보았으나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 배반의 삶을 살았다. 그는 유배지 흑산 바다에서 눈앞의 물고기를 들여다보며 실증적인 어류생태학 서적 <자산어보>를 썼다. 황사영은 세상 너머의 구원을 위해 온몸으로 기존 사회의 질서와 이념에 맞섰다. 조정의 체포망을 피해 숨은 제천 산골에서 그는 ‘황사영 백서’로 알려진, 북경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썼다. 비단 폭에 1만3천3백여 글자로 이루어진 이 글에서, 황사영은 박해의 참상을 고발하고 낡은 조선을 쓰러뜨릴 새로운 천주의 세상을 열어달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1801년 11월 배론 토굴에서 사로잡힌 그는 ‘대역부도’의 죄명으로 능지처참된다. 책의 큰 흐름은 대략 이렇다.

<흑산>은 주연급이라 할 만한 두 사람 외에 여러 계층의 인물 20여 명을 모두 비중 있게 다루었다고 해서 화제이다. 이에 대해 김작가는 “기록 속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과 현존 인물을 하나로 묶어서 창조한 인물들이다”라고 간단히 정리했다. 온갖 기록에 파고들어 현실로 끌어낸 ‘생생한 캐릭터’라는 말이다.

그중 다산 정약용에 대한 내용이 눈길을 끈다. 소설 속에서 정약용은 형틀에 묶인 채 동료 교인을 밀고하는데, 관리에게 천주교인을 식별하는 방법을 알려주기까지 한다. 이에 대해 몰랐던 독자는 역사적 사실 여부에 대해 캐물을 수도 있겠다 싶어 물었더니, 김작가는 대뜸 “다산이 포도청에 알려주었다. 다산을 심문한 기록에 나온다. 교회사에서도 인정한다”라고 말했다.

5개월간 섬에 칩거하며 썼다는 말도 들렸다. 글 쓰는 방식을 바꿨나 해서 물었더니, 김작가는 “잠적했다는 말도 들었는데, 나는 내 자리에서 일탈하지 않고 썼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정확히 있었다”라는 말로 소문을 일축했다.

<흑산>은 ‘체제 안에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을 박해한 것에 관한 소설이다. 그와 같은 야만성은 지금도 이 사회 그늘에 똬리를 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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