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쟁으로 치닫지 않게 ‘논쟁’이 갖춰야 할 조건
  • 조철 기자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1.11.1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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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을 감동시키고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내는 방법 제시

▲ 논쟁 vs. 언쟁 - 아고라 전장에서 살아남는 법조제희 지음들녘 펴냄296쪽│1만3천원

국회가 또 전쟁터가 된 모양이다. TV로 그 난장판을 지켜보는 국민은 그들로부터 아무런 해답을 찾지 못한다. 분명 시작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떻게 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였는데…. 논쟁이 언쟁이 되고, 급기야 전쟁이 된 형국이다.

국내 최초로 ‘수사학과 글쓰기(Rhetoric & Writing)’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조제희 교수는 <논쟁 vs. 언쟁>에서 ‘논쟁’이라는 말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논쟁은 자신이 속한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서로 머리 맞대고 의견을 교환하면서 최선을 창출해가는 과정을 청중이나 독자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장이다.’

그러므로 둘이 마주 보고 말싸움을 벌이는 토론 프로그램에서도 시청자는 논쟁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부정적인 면만을 집중 공격하거나 토론은 뒷전에 두고 인신공격에만 골몰하는 말과 표정으로 ‘언쟁’만 벌일 뿐이다. 그래서 조교수는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논쟁이 전무한 사회라는 오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라고 말했다. 어떤 주제를 놓고 모여 앉아 서로 주장을 펼친다고 해서 모두 논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일반인들도 논쟁과 언쟁 사이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보통 네티즌들은 인터넷 게시판에 댓글을 달거나 토론방에 글을 올려 자기 의견을 알리는 행위를 논쟁에 참여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보통 논쟁으로 시작하다가 결국은 언쟁이나 억지 주장으로 치달아 논쟁의 흔적은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만다. 조교수도 ‘아고라’ 같은 인터넷 토론장에서 격렬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행위가 논쟁의 범주에 속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단적으로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술집에서 토론을 벌이다가 언성을 높이고 말다툼한 끝에 멱살잡이라는 파국에 이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조교수는 논쟁이 언쟁으로 막을 내리지 않게 하려면 무엇보다 논쟁의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먼저 당면한 현실을 세심히 파악하고, 논쟁을 벌일 상대방이 아니라 청중을 설득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필요한 논리적 사고와 비판적 사고를 함양하고, 그것들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도록 기술과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논쟁은 남을 헐뜯는 행위도 아니고, 당사자 간의 힘겨루기도 아니며, 논쟁의 장 역시 상스러운 말이나 표현이 난무하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되는 까닭은? 다시 말해 설득의 대상은 논쟁 상대가 아니라 ‘청중’이기 때문이다. 논쟁 주체들은 그동안 청중의 존재를 간과해왔던 것이다. 왜 국회가 논쟁을 벗어나 ‘전쟁’을 벌이는지 이해할 수 있다.

조교수는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투표하는 과정을 지닌 모임에는 반드시 논쟁이 필요하다. 자신의 계획을 보여주고 청중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이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논쟁에서는 거짓이 아닌 사실만을 이야기해야 한다. 논쟁은 말싸움도 말장난도 되어서는 안 된다. 논쟁은 발표자와 청중이 이루어내는 창조적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국민(청중)을 의식한다면 국회가 바뀔 수 있을까. 기본으로 돌아가 그들이 진정 ‘논쟁’을 벌이기를 바란다. 그렇게 논쟁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은 “의원들이 어떤 주제에 대해 제가끔 다른 의견을 드러내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또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상황을 바탕으로 좀 더 큰 그림을 그려보면 그들은 결국 국민을 위해 ‘새로운 그 무엇’을 창출하려고 논쟁이라는 노력을 벌이는 구나”라고 이해할 것이다.

언성을 좀 높여도, 탁자를 주먹으로 좀 내리쳐도, 그런 모습을 국민이 흐뭇하게 바라보는 날이 있을 것이다. 논쟁의 기본만 안다면 말이다. 

ⓒ한겨레출판 제공
‘꽃’을 노래해 유명해진 시인이었다. 세월과 함께 모진 풍파 겪더니 그 또한 꽃이 되었다. 도종환 시인은 최근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한겨레출판 펴냄)라는 산문집으로 자신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았다.

앞만 바라보고 살고자 하는 기자로서는 과거보다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전화를 걸었다. 그는 지금 충북 보은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자청한 외로움을 보듬고 살고 있다. 건강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세상에서 도피했다거나 혼자 잘 살아보자고 간 것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그의 시에 진득하니 배여 있는 심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 책이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선배의 조언으로도 읽힌다고 하자, 그는 “지금 젊은이들이 많이 힘들어한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힘들지 않으면, 시련과 고난을 겪지 않으면 탐욕이 생기고 경솔해지게 된다. 쉽게 이루면 세상을 쉽게 보는 사람이 되어 세상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가지기 십상이다. 인생에 고난이 주어지는 이유를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산문집을 내게 된 데 대해 “시가 쓰인 배경과 내 지나온 삶을 연대기적으로 기술했다. 시련을 겪으며 살아내는 과정에서 시가 이렇게 나왔고, 그 시가 다시 삶을 가꾸어가고 이끌어갔음을 이야기했다. 에세이 한 편 한 편에 한 편의 시가 꼭 들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 시들은 쥐어짜낸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에서 나온 것임을 밝히는 내용들이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문학이 시작될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는 책 속에서도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가난과 외로움과 좌절과 절망과 방황과 소외와 고난과 눈물과 고통과 두려움으로부터 내 문학은 시작되었고, 그것들과 함께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것들이 없었다면 나는 시인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 많은 아픔의 시간을. 거기서 우러난 문학을. 나의 삶, 나의 시를.’

그런 서정시를 쓴 사람이 오히려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선정되기도 한 것은, 우울하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그의 시에 공감한 뒤 ‘꽃은 젖어도 향기를 잃지 않는’ 모습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독자가 그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해보며 또 읊조리겠다.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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