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리 토끼 잡기’ 갈 길 바쁜 사르코지
  • 조명진│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
  • 승인 2011.11.21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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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통령, 재선 위해 두 가지 중대 과제와 ‘씨름’/ 국가 신용등급 유지시키고 국제적 위상 높일지 주목

유럽 정치인 가운데 연예인 수준으로 언론의 관심을 끄는 두 인물을 꼽자면, 사임하기로 한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와 더불어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사르코지는 지난 10월 부인 브루니 여사가 딸을 낳아 현직 프랑스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아버지가 되어 뉴스메이커로서 세계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지금 사르코지 대통령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그는 국내적으로는 긴축 정책을 도입해서 국가 신용등급 AAA를 고수하려는 노력을 하고, 대외적으로는 ‘투 스피드 유럽(Two-Speed Europe)’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내세워 프랑스 위상을 높이려고 애쓰고 있다.

EU 확대 전제로 ‘투 스피드 유럽’ 제시

이렇게 사르코지 대통령이 트리플A 신용등급과 국가적 자존심을 지키려는 이유는 내년에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요건이기 때문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11월8일 유럽의회가 있는 스트라스부르그 대학교 연설에서 유럽연합(EU) 회원국 수가 현재 27개 회원국에서 앞으로 32개 또는 34개로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하면서 ‘투 스피드 유럽(Two-Speed Europe)’이 미래 EU의 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로를 사용하는 회원국의 유로존은 더 긴밀한 통합을 지향하고, 유로를 사용하지 않는 국가군은 느슨한 연방을 구성한다는 것이 ‘투 스피드 유럽’의 핵심이다. 즉, 발칸 반도의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한 신생 국가들을 포함해서, EU 확대를 전제로 사르코지 대통령은 유럽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는 유로존의 재정 위기를 통해서 유로를 사용하는 17개 국가 간에 더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이것이 프랑스의 영향력을 증대할 수 있는 유기적 방법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27개 EU 회원국 중에 유로존에는 17개국이 들어 있고, 영국과 스웨덴을 포함한 10개 회원국은 주변 국가군에 속하게 된다.

한편, 17개 유로존은 영국과 폴란드처럼 인구 수가 많은 EU 회원국을 배제시킴으로써 프랑스와 독일 양국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유로존 국가들만의 의사 결정에 대해서 특히 스웨덴과 폴란드가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고, 유로존 국가 중에서 네덜란드도 이에 반대하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투 스피드 유럽’에 대해서 영국의 닉 클레그 부총리는 “우리(EU 회원국들)는 함께 움직여야 한다. 우리가 맞선 가장 큰 위험은 분열이다. 이 분열은 회원국들을 고립시킬 것이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현재 독일이 주도하는 유럽 통합에 프랑스가 단독으로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쥘 상황은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독일의 주도적 위상을 감안해, 사르코지 대통령은 EU 가입을 희망하는 국가는 먼저 국가 대 국가로 독일과 상의한 후에 EU의 실무진과 구체적인 진행을 도모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는 실리적인 입장을 취했다.

▲ 지난 11월15일 프랑스 보르도 지역을 방문한 사르코지 대통령이 연설을 끝낸 뒤 지지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EPA 연합
실제로 프랑스는 국제 무대 특히 EU 내에서 갖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니셔티브를 잡는 것이 중요한 외교력임을 간파하고 있는 프랑스는 유엔 상임이사국 자리처럼, 어떤 형태로든 메이저 그룹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과시해왔다. 그것이 프랑스 국민들에게 전통적인 정치 리더십의 표본으로 비친다는 것을 사르코지 대통령은 잘 알고 있다.

그동안 큰 변동이 없었던 프랑스 채권 시장이 11월9일 독일 채권을 안전한 투자 대상으로 여기고 몰려들어 처음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11월10일 신용평가 기관 S&P(스탠더드앤푸어스)가 프랑스 신용도를 한 단계 낮춘 것은 실수였다고 발표했다. 실수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의도성이 있어 보이는 사건이다. 왜냐하면 신용평가 기관에서 단체 메일링 리스트에 프랑스 신용도 하락을 알린 것은 버튼 하나 잘못 눌러 벌어지는 방송 사고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신용등급 하향 발표 ‘실수’에 즉각 수사 요구

▲ 지난 11월3일 프랑스 칸에서 열린 G20 회의에서 만난 정상들. 왼쪽부터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연합뉴스
AP통신이 11월11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S&P 고객들에게 발송된 이메일의 제목은 ‘프랑스, 트리플A 상실하다(France had lost its AAA rating)’였다. 골자는 프랑스 또한 이탈리아가 겪는 위기에 똑같이 빠진다는 것이다. S&P가 실수였다고 주장하는 이 이메일은 발송 후 한 시간 반 뒤에 정정되었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바로앙 재무장관은 이 실수를 ‘근거 없는 충격적 소문’이라고 일축한 뒤, 이 사건에 대한 즉각적인 수사를 요구했다. 프랑스 증권감독원(AMF)과 함께 미국 증권감독원(SEC)도 수사에 참여할 예정이다.

최근 몇 주 사이에 프랑스 은행들이 그리스 부채에 엑스포저(exposure: 대출과 거래)된 결과로 프랑스의 신용도가 하락할 수 있다는 소문이 나왔던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프랑스 4개 주요 은행들이 이탈리아에 엑스포저된 금액은 3천70억 유로로 유로존 국가 가운데 가장 많다. 이에 따라 10월 중순에는 또 다른 신용평가 기관인 무디스가 3개월 이내에 프랑스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프랑스의 신용도가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 적이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신용등급 AAA를 지키고 유로존의 재정 위기 소용돌이에 말려들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세 달 만에 1백90억 유로를 절감하기 위한 두 번째 긴축 정책 패키지를 내놓았다. 프랑스 중앙은행이 올 4분기 프랑스 경제가 성장을 기록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한 것과 때를 같이해 내놓은 긴축 발표이다.

한편,  미테랑 프랑스 전 대통령의 경제자문을 맡았던 자크 아탈리는 일간지 라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프랑스의 대출 비용에 미루어 같은 AAA 등급에 있는 국가들 중에 가장 취약하다며, 이것은 프랑스가 이미 트리플A 등급이 아님을 뜻한다고 말했다.

이제 관심은 내년 프랑스 총선까지 사르코지 대통령의 경제 정책 성적표가 될 신용등급 AAA 유지와 프랑스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그리고 독일과 함께 유럽 통합의 쌍두마차로서 국제적 위상을 고수할 수 있을지에 쏠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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