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은 해결사인가, 관망자인가
  • 조명진│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
  • 승인 2011.12.04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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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위기 극복하는 데 어떤 역할 해낼지 관심 집중

유럽의 재정 위기가 유로존 밖으로까지 번지는 상황에서 문제 해결을 맡고 있는 유럽중앙은행(ECB)의 역할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CB의 1차 임무는 유로존의 인플레이션을 억제해 가격 안정을 기하는 것이다. 이자율 결정과 통화량 조절 등을 주된 임무로 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는 달리 ECB는 가격 안정에 우선권을 둔다.

ECB의 주요 조직으로는 집행부(Executive Board)와 평의회(General Council)가 있다. 집행부는 평의회에서 결정한 통화 정책을 실행하는 일을 맡는다. 집행부의 장은 ECB 총재가 맡고 부총재와 네 명의 이사를 둔다. 네 명의 이사는 유로존 회원국의 합의에 의해서 임명되고, 임기는 8년 단임제이다. 평의회는 의장과 부의장 그리고 유럽연합(EU) 회원국 중앙은행장들로 구성된다. ECB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ECB는 연례보고서를 유럽의회, 유럽집행이사회 그리고 유럽이사회에 제출하게 되어 있다. 더불어 유럽의회는 집행부 위원 후보에 대해서 소견을 낼 수 있다.

지난 11월21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럽중앙은행 앞에서 시위자들이 유럽 각국의 국기를 흔들고 있다. ⓒ AP 연합

ECB 총재 선임 둘러싼 회원국의 파워게임

프랑스는, ECB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으므로 ECB 총재는 프랑스인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주장에 대해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가 반대하면서 초대 총재는 네덜란드 중앙은행장을 역임했던 두이센버그 총재가 맡았다. 그리고 두 번째 총재직은 프랑스 중앙은행장 출신의 트리세가 맡았다.

11월1일부터 ECB의 세 번째 총재직을 맡은 이탈리아 중앙은행장 출신의 드라기는 독일의 신임을 받아야 된다는 중압감에 싸여 있다. 이탈리아의 재정 적자가 심각하기에 출신 국가를 도와야 되는 처지여서 드라기 총재가 운신의 폭을 좁게 가져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실제로 이탈리아 출신 총재가 취임한 지 2주도 채 안 지나서 독일 중앙은행의 바이드만은, 정부 재정을 돕기 위해 중앙은행이 관여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말하며 이탈리아 채권 시장에 대해 압력을 가함으로써 드라기 총재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바이드만이 독일 중앙은행 총재가 된 것은 올 5월이었다. 전임자인 베버가 ECB의 국채 시장에 개입한 것에 대한 불만으로 사임한 뒤여서 바이드만 역시 인플레이션 억제에 우선순위를 두는 독일 경제학자들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

ECB의 독립성은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 취임 이후에 특히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사르코지 대통령은 ECB에 경제 성장과 고용 창출을 도모한다는 명분하에 이자율을 책정하는 데에서도 정치적 영향력을 시도해왔기 때문이다. 이같은 사르코지 대통령의 끈질긴 시도는 2011년 4월 ECB가 처음으로 이자율을 1%에서 1.25%로 올리게 만드는 데 일조했고, 7월에 다시 추가로 1.50% 상향 조정하게 했다는 분석이다.

드라기 총재는 미국 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미국통이어서 같은 대학 동문들인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버냉키 의장과 크루그먼 교수 등과 경제 정책에 있어서 같은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바이드만 총재와 드라기 총재가 의견을 모으는 부분은 ECB가 정부의 채권을 구매하는 데 반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많은 돈을 출자한 독일과 다른 유로존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점은 투자자들로 하여금 유로존의 붕괴를 걱정하게 만들고 있다.

ECB의 초기 자금은 1998년 회원국의 인구와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해서 각국의 중앙은행에서 조성했다. 2011년 1월 현재, 독일연방은행이 1조4천억 유로를 출자해 가장 많은 자본을 출자했다. 전체의 18%를 차지하는 금액이다. 그 뒤로는 프랑스 14%, 이탈리아 12% 그리고 스페인 8% 순이다.

영국을 포함한 비(非)유로 사용 국가 아홉 개국의 중앙은행이 ECB에 출자한 금액은 1조2천억 유로이다. 이는 ECB 자본의 30%를 차지하는데, 이 출자 금액 가운데 영국의 5천8백억 유로는 유로 비사용국 출자금의 14%를 차지한다.

중요한 사안들, 주도국 독일 입장에 좌우돼

한편, 11월29일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국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들을 논의했다. 유럽금융안정기금(EFSF)을 조성하는 것과 운영이 그 주된 의제였다. 문제는 EFSF의 자금 동원력이 필요한 액수보다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재 가용한 기금 액수는 4천4백억 유로로서 그리스, 아일랜드 그리고 포르투갈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다소 부족하다. 즉, 1조 유로를 조성한다 해도 이탈리아의 국채를 감당하기에는 부족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보완책으로 국제통화기금(IMF)에 지원을 요청하려 하지만, 또 다른 문제는 IMF도 대출 가능한 액수가 4천억 달러를 넘지 않는다. 결국 ECB를 통한 대출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보수적인 독일이 이에 동의할지 확실하지 않다. 따라서 12월9일 예정된 유로존의 정상 회담에서 이 사안이 결정 날 때까지 관망해야 되는 상황이다.

유럽의 재정 위기가 프랑스와 벨기에 그리고 유로존 밖인 동구 국가들에까지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ECB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사안들은 주도국인 독일의 입장에 따라 좌우됨으로써 ECB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유로 위기 해결의 실마리는 ECB가 아닌 독일과 프랑스의 정책 방향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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