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판 덮은 ‘이상 기후’… ‘그림자 정치’만 너울너울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1.12.04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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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신당 창당설’과 ‘총선 출마설’을 일축하면서 상대 축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측의 전략도 꼬여들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박 전 대표가 ‘안철수 효과’를 노려 정치 전&

박근혜 전 대표가 11월23일 대전대학교를 찾아 학생들을 대상으로 ‘내 마음 속의 사진’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요즘 정치가 코미디로 희화화되고 있다. 정치권이 국민들에게 매번 웃음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단, 그것이 즐거운 웃음이 아닌 헛웃음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현직 국회의원이 코미디 방송을 문제 삼아 개그맨을 고소했다가 “미안하다”라며 소를 취하하는가 하면, 한·미 FTA 비준안에 대한 국회 본회의 처리 때 “강행 처리는 했으나, 몸싸움은 없었으니 총선 불출마 약속은 유효하지 않다”라며 때아닌 ‘몸싸움’에 대한 정의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번에는 또 ‘유령론’이 등장했다. 한나라당 ‘친박계’인 현기환 의원은 11월29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유령과 같은 사람하고 자꾸 (박근혜 전 대표와의 대권 지지율 맞대결) 여론조사를 하면 어떻게 하느냐”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유령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자 이틀 뒤 같은 당의 ‘친이계’ 전여옥 의원은 “안원장이 살아서 말도 하고 정치적 활동을 하는데 왜 유령이냐”라고 반박했다. ‘안철수 현상’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부분이지만, 국민들 눈에는 의원들의 이런 유령 공방 또한 웃지 못할 코미디로 비치고 있다.

친박계에서 안원장을 유령으로 몰고 간 것은 그만큼 박근혜 전 대표측이 갖는 위기감이 팽배해졌음을 의미한다. 지난 10월까지만 해도 엎치락뒤치락하거나 오차 범위 내에서 팽팽한 접전을 보였던 안원장과 박 전 대표의 대선 후보 양자 대결 지지율 격차는 11월 들어서 확연하게 벌어져 안원장의 상승세와 박 전 대표의 하락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40%대를 유지하던 안원장의 지지율은 마의 50%대를 돌파해 고공비행 중이고, 반면 박 전 대표는 30%대로 추락하고 있다. 가장 최근 조사인 지난 11월28일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서는 두 사람의 격차가 무려 15.1%포인트 차(52.5%-37.4%)까지 벌어졌다. 안원장 주변에서는 내년 4월 총선의 ‘강남 출마설’과 함께 ‘안철수 신당설’이 다시 강하게 등장했다.

12월1일 안철수 원장이 안철수연구소에서 주식의 사회 환원 계획 등을 밝히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안철수, ‘대선 출마’에는 여전히 여지 남겨 둬

졸지에 유령으로 내몰린 안철수 원장은 12월1일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신당 창당설이라든지, 강남 출마설 등이 제기되었는데, 전혀 그럴 생각이 없고 조금도 가능성이 없다”라고 밝혔다. 정치권에 나도는 소문들을 모두 일축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안원장의 이같은 발언의 파장은 대선 판도에 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정치평론가들은 “당분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라고 일치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안원장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일 뿐, ‘대선 출마’에 대해서는 여전히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는 것이다.

안원장의 기자회견 직후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안원장의 총선 불출마 발언에 대한 향후 전망’을 묻는 질문에 “안원장이 한 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 강남에서 출마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그렇다고 강북에서 출마할 리도 없고, 제3 신당 안 만들겠다는 사람이 민주당이나 통합 야당에 들어갈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총선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한 셈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바꿔 말해서 총선 이후는 아직 본인도 잘 모르겠다는 뜻과 같다. 대선 일정까지 지금 본인이 명확히 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대선 출마의 여지를 여전히 남겨둔 셈이다”라고 지적했다.

공교롭게도 안원장의 기자회견이 있기 몇 시간 전인 1일 오전에 ‘안철수 멘토’ 중의 한 명으로 알려진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어제 뉴스를 보니까 안원장의 강남 출마설이 돌던데, 과연 그가 총선에 출마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총선에 출마하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본인이 본격적으로 정치를 하고자 한다면 총선에 나오는 것이 맞다. 그런데 아마 지금 안원장은 정치를 할지 말지부터 고민 중일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대선에 나오기 위해서 반드시 총선에 먼저 나와야 한다는 법도 없다. 총선에 출마하지 않아도 대선 출마는 가능한 것이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지금 정치부 기자들과 정치평론가들은 안철수 원장과 그의 주변에서 확인되고 있는 여러 발언의 행간을 살피기에 분주하다. 그런 면에서 최근의 분위기는 ‘총선 때까지는 관망 또는 범야권에 대한 측면 지원, 총선 이후의 판세를 보아가며 대선 출마 저울질’이라는 이른바 ‘안철수식 대권 프로젝트’가 제기되기도 한다. 고박사도 이같은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일각에서는 총선에도 참여하지 않고 어떻게 대선 후보를 꿈꿀 수 있겠는가라며 회의적인 시각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시각은 최소한 지금의 안철수 원장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지금의 안원장을 보면 불가능하지만도 않다. 총선을 건너뛰고 바로 대선에 나올 수도 있다”라고 전망했다.

많은 정치평론가도 이같은 견해에 공감을 표시한다. 역시 안원장의 기자회견이 있기 전에 본지와 통화한 신율 명지대 정치학 교수와 김민전 경희대 정치학 교수 역시 마찬가지다. 신교수는 “안원장은 총선에는 안 나올 것이다. 하지만 대선에는 나올 것이다. 아마 총선이 끝나고 6~7월 정도에 출마 선언을 할 가능성이 있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김교수 역시 “안철수 신당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라고 단언했다. 결과적으로 두 교수의 예상은 적중한 셈이다.

신교수는 “총선은 정치권 밖에서 지켜보면서 때로는 한마디 하는 정도의 정치적 스탠스를 취할 것 같다. 경우에 따라서는 안원장을 지지하거나 ‘안철수식 정치’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2008년 총선 때의 ‘친박연대’와 같은 형태의 이른바 ‘친안연대’식의 정치 세력화를 조직해 총선에 참여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더라도 안원장은 박 전 대표가 그랬던 것처럼 철저히 거리를 유지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김교수는 “안원장은 ‘박원순 모델’을 염두에 둘 것이다. 야권을 간접 지원하며 내년 총선 등을 거친 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필요성이 제기되면 나설 가능성이 있다. 굳이 그가 통합 야당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야권 후보 중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자연스럽게 야권 단일 후보 경선에 포함될 수도 있다”라고 전망했다.

다른 견해도 있다. 또 다른 ‘안철수 멘토’로 알려진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금 누가 (안원장) 곁에서 조언을 하는지는 몰라도, 지금의 지지율만 유지하는 형태로 가겠다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괜히 지금 나섰다가는 지지율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인데, 그런 면에서 안원장은 인기 관리 능력이 연예인 못지않아 보인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자기를 모셔가기 전에는 절대 먼저 정치판에 나서지 않겠다는 그런 나약함으로는 정치판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라고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한나라당 분열 가능…제3 세력 커질 수도

안철수 원장이 일단 당장 정치권에 뛰어들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면서 상대 축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측의 전략도 복잡함에 빠져든 양상이다. 친박계의 전략가로 통하는 한 국회 인사는 “그나마 안원장이 변수였는데, 그가 ‘총선 불출마’ ‘신당 창당 불가’ 선언을 하면서 박 전 대표가 조만간 직접 전면에 나설 가능성마저도 사라졌다. 오히려 똑같은 안철수 효과를 노려 계속 정치 전면에 나서기를 꺼린다면, 우리 정치권은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 두 사람이 모두 정치권 밖에 숨어 있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라고 밝혔다.

그는 “지금 박 전 대표측의 전략은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를 전면에 내세운 채 자신은 뒤에 있겠다는 것이고, 두 사람은 공천 혁명을 통해서 당을 쇄신하겠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두 사람의 이해관계가 지난 11월29일의 쇄신연찬회에서 확인된 것이다. 하지만 굳이 안원장이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제3 정당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여전히 있고, 여기에 만약 공천 파동까지 이어진다면 한나라당 내 일부 세력의 이탈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과 통합 야당 그리고 그 사이에 제3 정당 등 3자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정계가 한바탕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신율 교수 또한 “박 전 대표와 홍대표가 지금은 잠시 동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천권 문제가 불거지면 제휴는 바로 깨질 수 있다. 한나라당이 분열될 수 있고, 한나라당 이탈 세력과 야권의 이탈 세력 등으로 중도 지대가 세력을 확대할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수도권 친이계의 한 의원은 “‘안철수 현상’은 지금 엄연한 현실이고, 안원장에 의해서 한나라당이 크게 흔들릴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예고되고 있다. 다만 한나라당의 쇄신 작업과 야권 통합 작업이 앞으로 국민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에 따라 안원장이 탄력을 받을 수도 있지만, 힘을 잃을 수도 있다. 지금 한나라당이 박근혜당이라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기 때문에, 홍대표와 박 전 대표가 얼마나 잘 협력해서 당의 쇄신을 이끌어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듯하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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