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야당’ 약발, 누가 더 셀까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1.12.18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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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잠룡’들 이해득실 계산 복잡해져…헤게모니 쥔 ‘친노’ 인사들에게 힘 실릴 듯

(왼쪽부터 순서대로) 문재인, 유시민, 김두관. ⓒ 시사저널 유장훈(제일 왼쪽) ⓒ 시사저널 이종현(제일 오른쪽)

여권의 재창당이건 야권의 대통합이건 궁극적인 목표는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물론 내년 총선이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지만, 여야 대결의 최종 승패는 정권 창출 여부에 따라 갈리게 된다. 그런 만큼 향후 정계 개편은 현실적으로 대권 주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무대를 휘젓고 있는 유력 주자뿐 아니라, 아직 무대에 오르지 않은 ‘잠룡’들에게도 정치판이 지각 변동을 일으키기 시작한 지금의 복잡한 함수 관계에서 계산법은 대단히 중요하다. 

여권이 ‘선관위 디도스 공격’ 파문에 따른 쇄신·재창당 파동으로 휘청이는 것은 야권에게는 기회이다. 야권 통합도 속도를 내고 있다. 맏형 격인 민주당은 지난 12월11일 치러진 전당대회를 통해 야권 통합을 결의했다. 앞서 지난 12월9일 통합의 다른 한 축인 ‘혁신과 통합’은 시민통합당을 창당해 당 대 당 통합 준비를 마쳤다. 양당은 실무 협상을 통해 내년 1월15일 야권 통합 정당의 새 대표를 뽑기로 잠정 합의했다. 폭력 사태까지 불러온 우여곡절 끝에 야권 통합의 깃발을 올리게 된 것이다.

친DJ-친노 대결에서 친노가 이겼다?

여권이 친이-친박의 대결로 팽팽한 대치 전선을 이루었듯이 지금 야권도 이른바 ‘친DJ(김대중)’와 ‘친노(노무현)’로 갈리는 양상이다. 지난 12월11일 민주당 전당대회는 두 세력의 갈등 양상을 극명하게 노출시켰다. 물론 성향상 ‘친DJ’, 즉 ‘동교동계’에 속하거나 거기에 걸쳐 있는 정동영·정세균 최고위원 등은 ‘통합’에 동참했지만, 이 틈을 타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동교동계의 수장 자리를 노리는 듯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이미 한쪽으로 쏠렸다.

“친노가 대세를 잡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현재 야권 통합 흐름을 친노 세력이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민주당과 시민통합당의 합당을 두고 ‘도로 열린우리당’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정치평론가 김능구 이윈컴 대표는 “옛 민주당 세력이 힘을 잃으면서 친노 세력이 사실상 당을 접수했다. 시민통합당 내 주도 세력도 친노 인사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러한 상황은 통합 정당의 수장을 뽑는 당권 대결 구도에서도 드러난다. 현재 가장 유력한 당권 주자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이다. 민주당에서는 물론 시민통합당 내에서도 ‘한명숙 당권론’이 점점 더 힘을 얻는 분위기이다. 양당의 가교 역할을 할 적임자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 전 총리는 DJ 정부에서 환경부장관을, 그리고 노무현 정부에서 첫 여성 국무총리를 역임한, 양 진영을 아우를 수 있는 정치인이면서도, 또 친노 진영을 대표하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시민통합당에서는 문성근 지도위원의 출마가 점쳐진다. 문위원 역시 대표적 친노 인사로 ‘국민의 명령’을 이끌며 야권 통합에 앞장서왔다.

반면 민주당 내에서 한 전 총리와 맞대결을 펼칠 것으로 보이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기세가 한풀 꺾였다. 가장 유력한 당 대표감으로 꼽혔던 박 전 대표는 12·11 전당대회를 전후해 ‘통합 반대’ 이미지가 강해지면서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박 전 대표는 “당원 합의에 의한 통합과 적법 절차를 지키자고 지적했는데, 지도부와 일부 언론이 본질은 외면한 채 ‘반통합파’로 매도했다. 전대 결과에 승복하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당 안팎의 비판 여론은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한 전 총리와 문위원 그리고 박 전 대표의 3강 구도가 펼쳐질 경우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여기에 최근 소장파인 ‘386’ 대표 후보로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선정되면서, 이최고위원까지 가세한 4파전 양상이 되는 것 또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박 전 대표를 제외한 나머지 세 후보 모두가 ‘친노·통합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전 총리와 문위원 등이 우호적 경쟁 관계를 유지한다면 박 전 대표가 당권을 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황인상 P&C정책개발원 대표는 “친노 진영에 기회가 온 만큼 강한 응집력을 보일 것이다. 통합 과정에서 미묘한 입장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구 민주당 인사는 안 된다’라는 기준은 가지고 갈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PK 대표성 두고 경합하는 문재인-김두관

통합 정당의 출범이 가시화하면서 대권 주자들의 이해득실에도 관심이 쏠린다. 몇 가지 주목되는 지점이 있다. 우선 영남 친노 주자들의 급부상 가능성이다. 야권 통합은 그동안 약세를 보인 영남 지역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통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영남 주자들의 정치적 입지가 그만큼 넓어지게 되는 셈이다. 영남 친노 주자로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문이사장은 그동안 야권 통합의 한 축을 맡아왔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협상 상대로서 통합 정당의 산파 역할을 담당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등 유력 대권 주자와 차이가 크기는 하지만, 현재 야권 대선 주자 중에서는 지지율이 가장 높은 정치인이기도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친노 진영을 대표하는 인사로 자리를 잡았다. 통합 정당 출범을 계기로 문이사장의 정치 행보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내년 4월 총선에서 부산 지역에 출마할 것이 유력하다. 그는 “부산·경남 지역 총선에서 이기기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할 각오를 갖고 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문이사장의 출마 여부에 따라 이 지역 선거 열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가 출마 쪽으로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주변의 설명이다. 다가올 총선에서 통합 정당의 깃발을 들고 과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따라 대권 주자로서 그의 위상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리틀 노무현’이라고 불리는 김두관 경남도지사를 주목하는 시선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현재 무소속인 김지사가 통합 정당에 입당한 후 대권 도전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동안 “도정에 전념하겠다”라는 입장을 밝혀와 ‘차차기 대권 도전’이 유력해 보였지만, 최근 야권 통합이 속도를 내면서 점차 ‘차기 대권 도전’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내년 대권 구도가 ‘박근혜 대 김두관’으로 형성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  김지사의 한 핵심 측근은 “대의에 충실하겠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그동안 주어진 책무를 마다한 적이 없다. 현재 임무는 도정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차기 대선 출마 가능성은 열어두었다. 그는 “서두를 일이 아니다. 한다, 안 한다 차원을 떠나 내년에나 검토할 수 있지 않겠나. 국민의 뜻에 따라 결단 시기를 결정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실제 김지사는 지난 8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차차기 대권 도전 발언설’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 농담조로 한 말이 와전되었다”라고 부정한 바 있다. 그는 “이제 문재인 이사장은 문재인의 정치를 해야 한다”라며 부산·경남 지역에서 충돌이 예상되는 문이사장을 견제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올해 연이은 ‘악재’로 한때 야권 대선 후보군 선두에서 최근 4~5위권으로까지 곤두박질 친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향후 어떤 역할을 맡을지도 주목된다. 야권의 통합 정당이 출범하면 통합진보당과 다시 한번 통합 또는 연대를 논의해야 하는 상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유대표가 다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은 친노 세력이 야권 통합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친DJ’ 쪽 파고들 수도

친노 주자들과 달리 손학규 대표의 상황은 더 나빠졌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전당대회를 통해 통합 결의를 이끌어내기는 했지만 그 과정이 매끄럽지 못해 ‘상처뿐인 영광’을 얻었다는 것이다. 지도부에 항의하는 폭력 사태까지 벌어지자 통합 찬성파 내에서도 “너무 서두른 것이 아니냐”라는 말이 나왔다. 손대표가 임기 내에 통합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 무리수를 두었다는 지적이다. 반면 이러한 야권의 통합 흐름이 손대표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동안 당 대표로서 조정자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대권 주자로서 지지층을 다질 계기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정계 개편 자체가 손해 볼 일이 아니라는 관측도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당 내에서 뿌리가 약한 손대표 입장에서는 야권 통합을 통해 판을 흔들어야 한다. 당장은 타격을 입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손해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친노 세력이 결집하더라도 과거처럼 선명성 경쟁에 나서지는 못할 것이다. 그랬다가는 오히려 친노 주자들에게 독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라고 내다보았다.

정동영 최고위원에게도 다시 한번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신 정최고위원은 근래 들어 범진보 진영을 아우르는 ‘좌클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차별화 전략’인 셈이다. 여기에다 경쟁 대권 후보들이 모두 ‘친노’를 등에 업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정최고위원은 ‘동교동계’의 틈을 비집고 들어갈 여지도 만들 수 있다.

ⓒ 시사저널 유장훈

야권 통합 과정에서 민주당과 시민통합당 못지않게 주목해서 보아야 할 부분이 박원순 서울시장 쪽이다. 그의 참여 여부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도 연결된다. 이들의 행보에 따라 내년 초 출범할 통합 정당의 위상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시장은 아직까지 이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다만 그동안 야권이 ‘민주 통합’과 ‘진보 통합’으로 나뉘자 어느 한 쪽으로 움직이는 데 부담감을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양측이 하나로 뭉치는 대통합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경우 어떤 선택을 할지를 두고 고민 중이라고 한다. 최근 들어 통합 정당이 출범한 후 적당한 시기에 합류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데, 입당을 하더라도 당 내부 문제에 대해서는 개입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진다.

반면 안철수 원장의 통합 정당 합류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희박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능구 이윈컴 대표는 “그동안 안원장의 행보를 보면 다른 분야로 진출할 때 상당히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정치권의 경우 한번 발을 잘못 디디면 그동안 쌓아온 명예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곳이다. 노력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과가 나오는 곳도 아니다.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현재로서는 그가 총선 전에 움직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하지만 대권 도전의 여지는 남아 있다. 그런 만큼 안원장을 중심으로 한 정계 개편 시나리오는 당분간 계속 거론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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