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방송’ 말하면서 몸으로는 ‘자극’ 연출했다
  • 하재근│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2.01.02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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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뿐 아니라 종편까지 말초 신경 건드리는 소재 선호해

에서 뱀을 잡아 먹고 있는 출연자들. ⓒ SBS
매체들이 지난 연말에 일제히 요즘 트렌드를 정리하면서 풍자, 위안, 공감, 희망, 복고 등을 거론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토크쇼에서도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기사가 몇 달 전부터 줄을 이었다. 마침 강호동이 잠정 은퇴한 것도 좋은 계기를 제공해주었다. 그래서 자극적인 <무릎 팍 도사>와 <강심장>이 없어지거나 위상이 흔들리는 대신에, 토크쇼 트렌드가 좀 더 따뜻한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 나왔다.

언론은 생리적으로 새로운 키워드를 좋아한다. 특히 방송의 경우는 어떻게 해서든지 새로운 소재를 찾아내서 매회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래서 자꾸만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었다는 식으로 말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현실은 그처럼 시기별로 새롭게 전개되지 않는다.

2000년대 이후 우리 방송은 경향적으로 자극성이 강화되고 있고,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 그 정도가 심해졌다. 이 흐름은 요즘에도 전혀 변하지 않고 더욱 강화되었다. 토크쇼를 포함한 예능, 가요계, 시사 교양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렇다. 그러므로 요즘 트렌드를 정리할 때 자극성을 빼놓으면 얘기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지난 연말에 풍자·위안·공감·희망·복고 트렌드에 대해 묻는 수많은 인터뷰를 하면서, 그 어느 매체에서도 자극성 부분을 거론하지 않는 것이 답답했었다.

여자는 ‘입수’하고, 남자는 뱀을 잡아먹었다

에서 뱀을 잡아 먹고 있는 출연자들. ⓒ SBS
<1박2일>을 보면 자극성이 강화된 흐름을 상징적으로 알 수 있다. 2008년 초겨울에 <1박2일>은 가학성 논란에 휩싸였었다. 그때 김C가 잠시나마 옷을 벗는 벌칙을 당했는데, 추운 날씨에 지나치다는 비난이 터져나왔다. 또 당시에 게임에서 꼴찌를 한 멤버가(MC몽이었을 것이다) 연못에 잠시 몸을 담갔다. 그러자 바로 가학성 논란이 일어나며 비난이 쏟아졌다. 초겨울에 건강한 젊은 남자 한 명이 잠시 몸을 적셨는데 사람들이 깜짝 놀랐던 것이다.

하지만 2009년, 2010년이 되자 물에 빠지는 것은 더는 논란거리가 되지 않았다. 아예 ‘입수’라는 단어가 일반화될 정도로 이제는 그저 그런 방송 소재가 되었다. 한겨울에 두꺼운 얼음을 깨고 멤버 전원이 찬물에 들어가도 사람들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드디어 2011년에는 여자까지 나섰다. 거기에는 현역의 주연급 여배우까지 있었다. 최지우가 입수를 했는데, 그는 찬물에 놀라 비명을 지르며 순간적으로 정신을 반 정도 잃었다. 불과 3년 전에 건장한 젊은 남자가 잠깐 몸을 적시고 일어난 것에도 깜짝 놀랐던 대중은, 이제는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대는데도 놀라지 않았다. 그저 깔깔깔 웃었을 뿐이다. <1박2일>의 그 여자들 입수 장면은 호평을 들었다.

여자가 남자만 하던 입수의 영역까지 들어오자, 남자는 아프리카로 날아가서 뱀을 잡아먹었다.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남자는 뱀을 비롯한 온갖 생물을 잡아먹고, 누런 강물을 마셨으며, 울타리만 대충 친 모래 바닥에서 잠을 잤다. 그 모래 바닥에는 뱀이 출몰했었다. 하지만 가학적이라는 지적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네티즌은 ‘쌩 리얼’이라며 좋아했다. 그러면서 찬물 입수 혹은 야외 취침 정도나 하는 <1박2일>을 꾸짖었다. 왜 <정글의 법칙>처럼 센 자극을 못 주느냐고.

많은 매체가 새로운 변화를 말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토크쇼 부분에서도, 자극성이 약한 것은 여전히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흔히 거론되는 <힐링 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는 말할 것도 없고 <승승장구>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주병진 토크콘서트>는 더욱 부진하다. 그나마 새롭게 인기를 끄는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는 자극의 소재를 연예인 사생활에서 일반인 사생활로 바꿨을 뿐이다.

엽기적인 프로그램 제작 봇물

음악 프로그램은 아이돌과 <나는 가수다>에 치여 초토화된 지 오래다. <나는 가수다>는 아이돌의 자극성에 서바이벌 경쟁의 자극성으로 맞불을 놓았다. 그 결과는 자극의 중독이다. 아무도 탈락하지 않는 중간 평가는 자극성이 약하기 때문에 시청률이 떨어진다. 그러면 매체들은 <나는 가수다>가 부진하다며 더욱 센 경쟁 구도를 보여달라고 주문한다.

뉴스의 자극성도 강해지고 있다. 프라임 시간대 뉴스에서 연예인의 스캔들이나 엽기적 사건의 비중이 커진다. 저녁 와이드 프로그램에서는 각종 강력 사건을 사실적으로 재현한다. 교양 다큐 프로그램에서도 연예인 관련이나, 어느 사교 교주의 엽색 행각 관련 아이템이 흔해졌다.

이런 흐름에 종편이 기름을 부을 전망이다. 종편의 등장은 방송 상업성의 강화를 의미한다. 그것은 시청률 지상주의로 나아갈 것이고, 결국에는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화제를 만들어내는 자극성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종편에서는 개국하자마자 강호동이 23년 전에 야쿠자와 관계를 맺었다는 식의 선정적인 폭로가 터져나왔다. 조용히 살고 있던 나훈아를 추적하는가 하면, 과거 몸 로비 의혹으로 유명했던 린다 김을 등장시켰고, 여가수의 속바지에 모자이크 처리를 해 성인비디오와 같은 시각 효과를 보이기도 했다. 이른바 ‘A양 비디오’의 캡쳐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했고, ‘19금’ 연극이나 연예인 스폰서의 세계를 심층 취재해서 보여주기도 했다. 연예인 사생활 아니면 성적인 자극을 주는 내용들이다.

방송사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업성을 강화해간다면, 2012년에는 더욱 강렬하게 자극하는 선정적 표현들을 즐길(?)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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