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식어가도 ‘경쟁’은 펄펄 끓는다
  •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 승인 2012.01.1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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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믹스 제품, 남양유업 맹추격으로 ‘맥심’의 독점적 입지 흔들려

ⓒ 시사저널 전영기
한 봉지에 100원 남짓한 커피믹스는 지난해 전체 시장 규모 1조2천억원 고지를 눈앞에 두었다. 커피전문점이 급성장하며 한 잔에 3천~5천원인 원두커피 시장 규모가 1조원대를 바라보고 있지만, 아직 커피믹스 시장을 따라잡지는 못했다. 커피업계 관계자는 “원두커피 시장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웰빙 열풍이 고급 차나 고급 커피 소비를 늘리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커피믹스 시장이 불안해진다고 할 수만은 없다. 커피믹스의 수요층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잠시 정체를 보일 수는 있겠지만 감소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커피믹스 시장은 안팎으로 불안하다. 커피믹스 시장의 5개년 연평균 성장률은 6.1%였던 데 반해 지난해 성장률은 1.4%에 불과했다. 밖으로는 치고 올라오는 원두커피 시장을 견제해야 하고 안에서는 동종 업체끼리의 다툼에 치열하게 맞서야 한다. 그동안 국내 커피믹스 시장은 동서식품과 한국네슬레가 차지해왔다. 그중에서도 동서식품은 시장을 독점한다 싶을 만큼 절대적인 점유율을 과시했다. 동서식품은 1981년 선보인 ‘맥심’으로, 한국네슬레는 1987년 내놓은 ‘테이스터스초이스’로 8 대 2의 점유율을 유지했다. 그런데 지난 2010년 말 남양유업이 ‘프렌치카페 카페믹스’를 출시하면서 공고한 구도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2위 지키던 한국네슬레는 3위로

남양유업의 주 무기는 흔히 프림이라 부르는 크리머였다. 남양유업은 설립 이래 40여 년간 쌓아온 유제품 노하우로 지방 성분이 없는 우유를 활용해 라떼 맛을 내주는 크리머와 커피믹스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개발 성공과 시장에서의 성공은 엄연히 달랐다. 업계에서는 남양유업의 ‘프렌치카페 카페믹스’가 나왔을 때 반신반의했다. 1위 동서식품의 지배율이 워낙 굳건한 데다가 한국네슬레가 차지하고 있는 2위 자리 역시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양유업은 굳어진 시장을 흔들었다. 시장조사 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1월 대형 마트에서 동서식품 커피믹스의 점유율은 84.8%에 달했고 한국네슬레가 11.7%로 2위, 남양유업은 1.7%를 기록하며 간신히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불과 10개월 만에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한 대형 마트의 지난해 11월 판매 실적을 보면 동서식품이 75.7%로 점유율이 낮아졌고 남양유업이 18.0%까지 치고 올라왔다. 반면 변함없이 2위 자리를 고수해왔던 한국네슬레는 3.7%로 주저앉았다. 또 다른 대형 마트 역시 같은 달 매출에서 동서식품이 79.1%, 남양유업 13.3%, 한국네슬레가 7.5%로 나타나며 역전된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남양유업이 내건 ‘카제인나트륨 뺀 프림’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김웅 남양유업 대표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해 눈높이에 맞춘 상품을 내놓으면 성공한다는 사실을 ‘프렌치카페 카페믹스’가 다시 한번 입증했다”라고 평가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30년 가까이 커피믹스 시장을 지배해왔던 동서식품에는 비상이 걸렸다.

동서식품은 지난해 커피믹스 시장의 성장률이 1.4%로 떨어진 것에 대해 남양유업의 ‘카제인나트륨 유해 논란 마케팅’ 탓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동서식품은 “커피믹스 시장에 신규 업체가 진입하면서 1위 업체를 타깃으로 한 카제인나트륨 유해 논란과 같은 노이즈 마케팅 등을 펼친 결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남양유업이 ‘프렌치카페 카페믹스’를 출시하며 선보인 마케팅 전략을 꼬집은 것이다.

“동서식품이 다른 업체 견제하게 될 줄은…”

동서식품은 부동의 1위 업체로 자신감을 보여왔다. 커피믹스 시장 초기 한국네슬레(테이스터스초이스), 대상(로즈버드), 쟈뎅 등과 경쟁하며 점유율 싸움을 벌였지만 1위 자리에는 변함이 없었다. 커피믹스 선도 기업으로서의 자신감은 매출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식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때 동서식품이 늘어나는 매출을 감당할 수 없어 톱스타 마케팅을 했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많이 팔아보려고 광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이 팔리니까 광고도 통 크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캔커피 레쓰비는 대형 마트에서부터 동네 슈퍼까지 유통 구조가 방대하면서도 세밀하다. 이 업계에서는 유통 구조를 잡아놓는 것이 핵심이다. 동서식품 역시 워낙 유통망이 촘촘하기 때문에 후발 업체들이 따라잡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대형 마트 중심으로 유통망을 갖추고 있는 형편이다 보니 소규모 상권까지 잡고 있는 동서식품을 이기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막강한데도 동서식품이 후발 업체를 견제하게 되는 상황이 왔다. 이런 상황까지 올 줄은 몰랐다”라고 덧붙였다.

이창환 동서식품 사장 역시 지난해 5월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제품에 대한 기술력과 품질에 대해 자신이 있기 때문에 경쟁사의 공격에 대응할 필요는 없다”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급격하게 변했다. 남양유업의 전략적인 공세 속에 소비자들은 ‘카제인나트륨’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고, 동서식품은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나서야 했다.

동서식품은 최근의 시장 변화에 대해 “고가의 테이크아웃 커피 소비가 계속 늘어나고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커피믹스 시장이 지속적으로 축소된다면 과연 소비자에게 진정 바람직한 현상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것은 동종 업체 간의 공방전이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잠식시키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동서식품은 또 “커피믹스 시장에 진출한 남양유업이 카제인나트륨 유해 논란 등 노이즈 마케팅과 스타 마케팅 등을 이용한 광고 효과로 5.5%의 점유율을 기록했지만 영·유아용 제품인 키플러스, 떠먹는 불가리스, 프렌치카페 등 일부 자사 제품에 카제인나트륨을 버젓이 사용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라는 주장도 제기했다.

남양유업은 즉각 이에 반발했다. 남양유업은 “동서식품은 카제인나트륨을 이용한 노이즈 마케팅 때문에 커피믹스 시장의 성장률이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원인은 제품 가격 상승, 원두커피의 성장 등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영·유아 제품에 카제인나트륨을 사용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올해 커피믹스 시장은 더욱 심하게 요동칠 전망이다. 동서식품·남양유업 간 경쟁이 계속되고 여기에 롯데칠성음료가 커피믹스 시장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롯데칠성음료는 ‘칸타타 커피믹스’를 대형 마트 3사에 입점시키는 작업을 완료했다. 3종인 제품 라인업도 추가로 5~6종까지 늘릴 것으로 알려졌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인스턴트 커피는 설비가 중요해서 초기 (설비) 비용이 많이 든다. 음료에 비해 아무나 쉽게 이 시장에 들어올 수가 없다. 원두는 로스팅을 해서 추출하지만 인스턴트는 알갱이를 만드는 것이 기술이다. 업체들도 상황이 이렇게 치달으면 출혈 경쟁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한번 시작한 이상 어떻게 막을 수가 없게 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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