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탈퇴냐, 잔류냐’ 머리 싸맨 영국
  • 조명진│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
  • 승인 2012.02.07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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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EU 조약에 대한 캐머런 총리의 거부권 행사로 찬반 논쟁 불러…EU 위상 추락해 양쪽 주장 ‘팽팽’

영국은 유럽연합(EU) 회원국이면서도 EU 내에서 주변국 같은 모습을 보여왔다. 유로화를 채택하지 않음으로써 유로존 밖에 있고, EU 내 무비자 여행 관리 체계인 쉥겐(Schengen) 협약 관할 지역 밖에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지난해 12월 말 벨기에 브뤼셀에서 새로운 EU 조약에 대한 회원국의 승인을 목적으로 열린 EU 정상회담에서 제임스 캐머런 영국 총리는 유일하게 거부권(veto)을 행사했다. 여타 EU 회원국에는 충격 그 자체였지만, 덕분에 영국 내에서 보수당은 최근 1년 사이에 처음으로 노동당의 인기를 앞섰다. 여론조사 응답자의 58%가 캐머런 총리의 거부권 행사를 지지했다. 게다가 캐머런 총리가 영국 의회로 돌아와 연설을 하려고 나올 때, 보수당 의원들은 그를 승전 장군처럼 반기며 환호성을 쳤다.

사실 캐머런 총리가 EU 조약에 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던 주된 이유는 국회에서 승인받을 수 없음을 간파했기 때문이라고 영국 언론들은 관측했다. 2010년 총선에서 의석을 확보한 3백5명의 보수당 의원 중에 거의 절반은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된 사람들이다. 이들 초선 의원들은 그 어떤 보수당 정부보다도 EU에 대해서 적대적 성향을 보인다. 이전의 영국 정부들은 어떤 상황에 처하든, EU 내 회원국 자리를 고수하려는 입장이었다. 이와는 달리 현 보수당 정부는 ‘필요하다면’ 유럽 통합의 대열에서 이탈해 홀로서기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자세이다.

영국의 EU 탈퇴에 대한 주제로 <이코노미스트>는 1월10일 토론을 벌인 바 있다. EU 탈퇴를 지지하는 편에서는 유럽의회의 보수당 의원인 다니엘 한난이 나섰고, 영국의 EU 잔류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노동당 의원인 더글라스 알렉산더가 나왔다. 이 두 사람의 주장을 대비시킴으로써 영국 내에서 일고 있는 EU 탈퇴 찬반 토론의 주요 쟁점을 짚어보았다.

영국 런던에 있는 유럽하우스 외부에 나란히 걸린 영국 국기와 EU 깃발. ⓒ EPA연합

탈퇴 찬성측 “경제적 실익 따져라”

EU는 경제적 목적 때문에 영국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지녔었다. 그러나 이같은 기대는 더는 영국인들에게 없다.  요즘 도버 해협을 건너 유럽 본토로 향하는 영국인들은 그저 주권의 상실과 풍요의 상실을 연상할 뿐이다.  2002년에 유로화가 통용되기 시작했을 때, 영국인 가운데는 파운드를 고수하다가는 망하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던 EU 지지론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작금의 유로존 재정 위기는 10년 전 EU 지지론자들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영국이 ECC(EU의 전신)에 가입한 1973년 당시, 서유럽은 세계 GDP(국내총생산)의 40%를 차지했었다. 현재 그 비율은 25%로 줄어들었고, 2020년이면 18%로 감소할 것이다. 돌이켜 보면, 영국은 최악의 시점에 유럽 통합에 동참한 것이다. 왜냐하면 서유럽은 2차 대전 이후 30년간 놀라운 성장을 해왔지만, 1970년대 초반의 오일 위기(Oil Crisis)이후 제대로 성장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영국 EU 멤버십의 대안은 스위스와 같은 형태의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스위스는 EU 회원국들과의 개별 상호 협정에 따라 쉥겐 관할 지역으로 분류되고, EU 단일 시장에서 누리는 네 가지 자유(four freedoms- 상품, 재화, 노동, 자본의 역내 자유 이동)를 전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2010년 스위스의 1인당 EU 수출 규모는 영국보다도 네 배나 많았다.

만약 영국이 EU를 탈퇴했을 때 영국의 수출이 EU 회원국들로부터 차별을 받지 않을까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영국의 수출 문제는 세계무역기구(WTO)가 맡아줄 것이다. 또  한 가지 간과해서 안 되는 통계는 영국은 유럽 통합에 합류하기 전에는 서유럽 국가와의 무역에서 흑자였지만, 그 이후는 줄곧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0년 영국의 대EU 무역 적자는 5백24억 유로에 이르고, 여타 국가와의 무역에서는 1백57억 유로의 흑자를 보였다. 영국이 EU 멤버십을 지닌 기간에 유럽만 제외하고 다른 대륙과의 교역에서는 총체적인 흑자였다. 영국의 실익을 따지면 EU에서 탈퇴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다.

탈퇴 반대측 “경제 외 사안도 챙겨야”

EU 정상회의에 참석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오른쪽). ⓒ EPA연합
지난 10년 사이에 ICM 여론조사 결과가 어떤 차이점을 보이는지를 먼저 보자. 현재 49%가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는 것에 찬성하고, 40%는 잔류를 선호한다. 2001년에는 68%가 영국이 EU에 남기를 희망했고, 반대는 19%에 불과했다. 10년 전에는 자그마치 49%가 친(親)EU였다.

영국 부총리 닉클레그가 말한 것처럼, “영국이 EU 안에 있건 밖에 있건 영국은 피그미 국가는 안 될 것이다”라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유럽의 현상 유지(status quo)를 변호하거나 유럽이 개혁과 변화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영국은 영향력과 실질적인 권력을 지닌 EU 안에서 훨씬 더 번영하리라고 굳게 믿는다.

10조 파운드 가치의 5억 인구 시장에서 영국을 차단시킨다는 것은 유럽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영국 기업들은 유럽의 경쟁 회사들보다 더 경쟁력 있고, 더 혁신적이고, 더 앞선 생각을 하고 있지 못하다. 반(反)유럽파들은 낮은 기술력과 저부가가치 상품에서 경쟁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유럽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은 EU와 실용적이고 애국적인 방법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뜻이다.

새로운 EU 조약은 단일 시장에 대한 조항들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머런 총리가 협상 테이블에서 나온 것은 무모한 행동이었다. 법, 비즈니스 서비스, 금융 서비스, 의학 시술, 교육 등의 사안을 논하는 자리에 영국이 참석하지 않으면 영국에 이익이 오기 위한 방법을 찾을 길이 없다. 영국의 리더십은 단순히 일시적인 인기에 영합하지 말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진하는 것이다. 영국을 위한 성숙한 애국심은 EU 멤버십을 유지하는 것이다.

‘비탄의 아웃사이더’냐, ‘천대받는 인사이더’냐

필자는 영국이 친EU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더 현실적이라고 판단한다. 가장 좋은 예로 더 시티(런던의 금융가)는 비(非)영국계 은행들이 주도하는 가장 큰 오프쇼어(off-shore) 금융 서비스 센터이다. 영국에 남아 있는 제조업은 BAe Systems 같은 방위산업체를 제외하고는 대형 외국 업체들로 즐비하게 채워져 있다. 이들 업체는 영국이 영어로 소통이 가능해서라기보다는 EU 회원국이기 때문에 영국에 현지 법인을 설립한 것이다.

만약에 영국이 EU를 탈퇴할 경우, 기존의 대형 외국 제조회사들은 영국에 현지 투자를 할 이유를 찾기 힘들게 된다. 예를 들면, BMW 소유의 롤스로이스, 폭스바겐 소유의 벤틀리, 포드와 제너럴 모터스(GM)의 복스홀(Vauxhall), 삼성, LG, 소니, 토요타 그리고 혼다 같은 대형 외국 제조업체들은 영국에 현지 공장을 가동할 인센티브가 줄어든다.

EU에 남느냐 아니면 나오느냐는 영국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선택이다. 금융 위기 이후 또 다른 위기의 태풍이 닥칠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EU라는 커다란 배에 승선해 있는 것이 작은 돛단배보다는 안전하다. 영국은 비탄의 아웃사이더를 택하는 것보다, EU의 천대받는 인사이더로 남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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