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던 절 덮은 ‘금괴 미스터리’
  • 대구·이규대 기자 ()
  • 승인 2012.02.07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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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민 김씨, 문화재위원회 발굴 불허 이후에도 포기 안 해…주차장에서 밤 새기도

대구시 팔공산에 있는 동화사. ⓒ 시사저널 박은숙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35번지. 팔공산 ‘동화사(桐華寺)’의 주소이다. 신라 때 지어져 1천5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찰로, 오동나무가 겨울에 꽃을 피웠다는 설화를 간직한 곳이다. 그런데 고즈넉하던 이곳에 최근 큰 소동이 일어났다. 국가 지정 문화재(보물 제1563호)인 대웅전 뒤편, 세 번째 기둥 앞 지하 1.2m 지점에 약 40㎏ 분량의 금괴가 묻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부터다. 실제로 금괴가 발견된다면 시가로 약 2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순식간에 전국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문화재위원회가 발굴을 허가하지 않으면서 끝난 것처럼 보였던 ‘보물 찾기 소동’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동화사 뒷마당에 금괴가 묻혀 있다”라고 주장하고 나선 이는 새터민 김 아무개씨(40)이다. 그는 2008년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정착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이런 확신을 하게 된 것일까. 거기에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다. 

북한 함경도 지방에서 살던 김씨는 옆집의 한 노인과 자주 왕래하며 친분을 쌓았다. 그는 이 노인을 양아버지로 섬겼다. 사실상 부자지간에 버금가는 두터운 교분을 쌓은 덕분일까. 어느 날 양아버지는 김씨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금속탐지기 성능에 대한 의문 제기도

새터민 김씨가 제출한 서류. ⓒ 대구동구청 제공
양아버지는 원래 서울에서 사업을 하던 한 자산가의 아들이었다. 1950년 부유한 삶을 누리고 있던 양아버지 가족에게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이 찾아왔다. 양아버지 가족은 우선 고향 대구로 몸을 피했다. 이후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자 재차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이때 양아버지 가족은 대구에 남아 있던 재산까지 모두 처분해 금괴로 교환했다. 그런데 무게 때문에 도저히 지고 갈 수가 없었다. 결국 동화사 대웅전 뒤뜰에 묻어둔 채로 후일을 기약했다. 하지만 양아버지 가족은 전쟁이 끝난 후 북한에 정착하게 되면서 끝내 금괴를 찾을 기회를 영영 놓쳐버렸다. 그 자신 역시 나이가 많이 들어 남한에 내려갈 희망이 없다고 여긴 양아버지는 아들과 같은 김씨에게 이런 사연을 들려주며, 그동안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던 금괴를 묻은 위치이며 깊이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었다. 자신을 대신해 금괴를 찾아 써달라고 김씨에게 당부했다.  

이후 실제 탈북에 성공한 김씨는 지난해 초 동화사를 찾았다. 그는 우선 금괴의 존재부터 확인하는 일에 나섰다. 금속탐지기를 이용한 조사 작업에 동화사측이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물론 동화사측은 거절했다. 김씨의 말이 허무맹랑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씨는 자신의 독자적인 힘으로 증거를 찾은 후 동화사측에 제시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금속탐지기를 빌린 후 몇몇 지인과 함께 대웅전 뒤편에 잠입했다. 방범용 CCTV에 페인트까지 칠해가며 몰래 작업을 진행했다. 결국 금속탐지기의 ‘반응’을 얻어냈다. 대웅전 뒤편 바닥에 금속성 물질이 묻혀 있을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그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동화사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29일에는 그가 선임한 변호사, 동화사 관계자들의 입회하에 같은 방법으로 금속 탐지 작업을 벌였다. 결과는 역시 같았다.

김씨측은 금속 탐지 결과를 근거로 발굴 작업에 동의해줄 것을 동화사측에 다시 요청했다. 동화사측은 난색을 표시했으나, 소문이 사찰 울타리를 넘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언론에도 소개되었다. 김씨의 사연이 널리 알려지고 금괴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자, 세간에는 “진짜 있는지 한번 파보면 되지 않느냐”라는 여론이 높았다. 결국 동화사측은 1월8일 김씨와의 합의를 통해 발굴 결정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절차가 남아 있었다. 동화사 대웅전은 국가 지정 문화재이므로 뒤뜰을 파헤치려면 문화재청 산하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구해야 한다. 문화재가 파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월19일 문화재위원회가 심의 끝에 김씨의 신청을 부결시켰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윤한정 사무관은 “문화재위원회에서는 김씨가 내놓은 증거가 신뢰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국책 기관이나 정밀 장비를 갖춘 대학 등에 의해 신뢰할 수 있는 조사가 진행되어야 발굴 작업을 승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김씨가 조사에 사용했던 금속탐지기 ‘프리즘4’ 기종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이 기종에 대해 탐지 가능한 깊이가 제한적이라고 공통된 의견을 내놓았다. 금속탐지기를 납품하는 업체측의 한 전문가는 “프리즘4로 탐사할 수 있는 깊이는 매우 얕다. 기껏해야 30~50㎝ 수준이다. 1m 이하에 묻힌 금괴의 존재 여부를 탐지하려면 좀 더 정밀한 기계를 사용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지금 김씨는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까. 기자가 1월31일 동화사 현장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김씨는 금괴를 발굴하겠다는 열망을 포기하지 않은 채 새로운 작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현재 김씨는 수시로 동화사 주변을 맴돌며 감시하고 있다. 이미 ‘금괴 매장설’이 확산된 탓에 누구라도 몰래 와서 파 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동화사측 “있든 없든 결론 빨리 났으면…”

동화사 뒤뜰. ⓒ 시사저널 박은숙
동화사의 방범초소에서 근무하는 경비원은 “매일 오는 것은 아니지만 (방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밤늦게 차를 끌고 와 주차장에서 밤을 보내기도 하고, 나와 동행한 상태에서 대웅전 주변을 돌아볼 때도 있다. 지인 두세 명과 함께 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들은 모두 김씨와 같은 새터민이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동화사의 사무를 관장하는 종무소측과도 수시로 접촉하며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고 한다.

<시사저널>은 김씨를 직접 만나기 위해 동화사에서 기다리기도 하고 변호인을 통한 접촉도 시도했지만, 김씨는 끝내 만나기를 거부했다. 이전에 몇몇 언론과 만났던 김씨는 “더는 언론과는 인터뷰하지 않겠다”라는 완강한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세상의 너무 큰 관심이 오히려 발굴 작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동화사측은 고민에 빠졌다. 금괴를 둘러싼 미스터리가 결론이 나지 않은 채 계속 시간을 끌게 되면서, 동화사의 이미지가 ‘금괴 사찰’로 고착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동화사는 ‘금괴 소동’이 관심을 끌면서, 평소보다 많은 관광객이 절을 찾는 바람에 더 어수선해졌다. 현재 동화사측은 김씨의 활동을 막지 않고 있다. 한동수 동화사 사무장은 “무언가 확실한 것이 있다면 기자회견을 열어서라도 알리고 싶은 심정이다. 아무것도 확인된 것이 없는데,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다. 우리로서는 참 곤란하다”라고 토로했다. 주장은 있는데, 근거는 없는 상황에서 금괴를 둘러싼 미스터리는 계속 절 주위를 뒤덮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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