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렁한 거리엔 문 닫히는 소리만…
  •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 승인 2012.02.14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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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휴·폐업 갈수록 늘어 1년 새 5만개 ‘증발’…대기업·중견 기업 외식업은 문어발 팽창

지난 1월31일 폐점 안내문이 붙은 서울 마포구 동교동 리치몬드 홍대점으로 한 시민이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휴업·폐업의 그림자는 동네 슈퍼마켓에만 드리워진 것이 아니다. 골목마다 자리 잡은 터줏대감 같은 식당, 분식점, 서점, 문구점까지 해마다 곤두박질하는 매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밥 집은 안 망한다’는 속설은 무색해진 지 오래다. 지난 2009년 14만9천개였던 휴업 식당은 1년 사이 25만1천여 개로 증가했고 지난해 상반기에는 12만7천1백72개를 기록했다. 대기업·중견 기업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 앞에 생존의 길은 요원하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 결과 중소기업 86%는 대기업이 동종 업종에 진출한 뒤 매출이 감소했고, 매출 감소율은 평균 38.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외식업중앙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폐업하는 영세 식당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2009년 2만9천여 곳이었던 폐업 식당은 2010년 약 4만8천 곳으로 크게 늘어났고 지난해에는 상반기에만 2만6천6백15개 점포가 문을 닫았다. 연간 추정치로 볼 때 지난 2011년 한 해 5만개 이상의 식당이 사라졌을 것으로 계산되고 있다. 특히 휴·폐업 업체 중 86.2%가 전·월세로 영업하고 있고, 75.1%가 99m² 이하 면적의 업소에서 영업할 정도로 영세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영업 진출 붐 여파로 창업 점포 역시 크게 늘어나기는 했지만 전체 음식점 수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실제로 창업 점포는 지난 2009년 2만9천여 개, 2010년 5만6천여 개, 2011년 상반기 2만8천여 개로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하지만 폐업 식당 수와 비슷한 수준을 보이면서 전체 식당 수는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외식업중앙회 관계자는 “휴·폐업 점포가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장사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외식 시장에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어 영세 식당들의 도산이 잇따를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유통업계는 이처럼 휴·폐업 식당이 급증하는 이유를 경기 침체와 더불어 대기업·중견 기업들의 골목 상권 진출이 맞물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중견 기업들은 너도나도 외식사업에 나서는 모양새이다. 삼천리도시가스는 생활문화사업 자회사인 SL&C를 설립한 후 중식 레스토랑 ‘차이797’을 운영하고 있다. 대명그룹은 떡볶이 전문점 ‘베거백’과 치킨 전문점 ‘스토리런즈’를, 귀뚜라미그룹은 카페형 레스토랑 ‘닥터로빈’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규모를 좀 더 키워보면 상황은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롯데리아와 패밀리레스토랑 등 다섯 개 브랜드 2천여 개 매장을 가진 롯데그룹은 외식 사업에서만 1년에 1조원 이상 벌어들인다. CJ푸드빌도 빵과 커피, 비빔밥에 국수까지 16개 브랜드 1천8백여 개 매장을 거느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유독 서민 음식으로 분류될 수 있는 비빔밥 사업에까지 나서 업계에서는 소상공인들과의 상생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상 역시 지난 2009년 9월 외식 전문 업체인 와이즈앤피를 설립하고 11월 아시안푸드 레스토랑 ‘터치 오브 스파이스’를 열었다. 현재는 주요 상권인 명동점과 가로수길점 두 개 점포가 운영되고 있다.

식품 기업뿐만 아니라 패션 등 다른 업종의 대기업과 중견 기업들이 줄줄이 외식 사업에 뛰어들면서 외식 시장은 무서운 속도로 잠식되어가고 있다.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 관계자는 “대기업이 빵집도 모자라 떡볶이, 순대 등 길거리 음식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오히려 사회적 약자들의 터전까지 빼앗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동네 빵집은 급감, 대기업 빵 체인점은 급증

호텔신라가 운영 중인 커피 베이커리 전문점 ‘아티제’. ⓒ 시사저널 임준선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총선과 대선을 앞둔 정치권도 급하게 질책을 쏟아냈다. 여기에 대통령까지 가세하면서 기업도 더는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일부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사업 철수 소식을 알리기 시작했다. 정리의 시작은 ‘빵집’이었다.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가 문을 열었다. 호텔신라는 자회사인 보나비가 운영 중인 ‘아티제’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아티제 매장은 대부분 오피스 빌딩에 입주해 있어 골목 상권 침해와는 거리가 있지만, 대기업의 영세 자영 업종 침해 논란이라는 사회적 여론에 적극 부응하기 위해 철수한다”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장선윤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롯데의 블리스도 베이커리 전문점인 ‘포숑’을 정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블리스 관계자는 “이번 동반 성장을 위한 정부 정책과 소상공인 보호라는 국민 여론에 적극 부응하기 위한 결정이다”라며 철수 이유를 밝혔다. 현재 포숑은 롯데백화점 서울 소공동 본점, 잠실점 등에서 일곱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설립 초기 12개로 시작했지만 다섯 개 매장은 단계적으로 철수한 상태이다. 남은 일곱 개 매장도 프랑스 본사와의 계약 관계 등 남은 문제들을 해결한 뒤 완전히 철수해 상생을 외면한다는 비난 여론에서 벗어날 예정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런 철수 도미노 현상이 골목 상권을 살릴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일단 여론에 떠밀리고, 정치권의 암묵적인 압박이 있어 철수는 했지만 철수하는 업체들이 과연 골목 상권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이다. 위치를 보더라도 골목이 아니라 도심이나 주요 상권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것은 영세 자영업자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큰 덩치들끼리의 경쟁이었다. 정작 골목에서 죽어가는 빵집을 보면 유명 프랜차이즈 업체들 때문 아닌가”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최근 업체 철수를 발표한 현대차그룹 계열사 해비치호텔앤리조트의 ‘오젠’만 보더라도 김밥, 샌드위치 등을 판매하지만 사내 편의시설로 운영되어왔을 뿐이다.

제빵업계만 놓고 보면 지난 2003년 1만8천개에 이르렀던 소상공인 운영 빵집이 지난해 말 4천개 수준으로 대폭 줄어든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대기업 프랜차이즈 확대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1만4천개가 문을 닫은 지난 8년 동안에 대기업 프랜차이즈인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는 각각 3천10개, 1천4백7개로 늘어났다.  

하지만 SSM의 골목 진출이 겹쳐지면서 대기업에 대한 국민 여론은 싸늘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자영업자의 경우에는 온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 강도가 더하다.

지난해 9월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유통·서비스 분야 중소기업 동반 성장 인식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문구·서점 업계의 ‘폐업 고려’ 응답 비율은 각각 25.8%, 20.8%였다. 폐업이나 업종 전환을 고려하는 이들의 과반수(56.3%)는 2년 내에 폐업이나 업종 전환을 시도할 것이라고 답했다. 상황이 열악해질수록 서민과 자영업자가 생각하는 상생의 길은 요원해지고 있다.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 관계자는 “자본력에 의해 너무 쉽게 돈을 벌어들이는 대기업들의 행태는 골목 상권 소상공인들에게서 희망을 빼앗아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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