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호텔 사이 몸살 앓는 땅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03.19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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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이 옛 미국 대사관 숙소 터에 호텔 신축 추진…‘조윤선법’ 국회 통과되자 특혜 시비도 일어

풍문여고 옆에 위치한 옛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 터. ⓒ 시사저널 전영기

서울 종로구 송현동 옛 주한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 터 3만6천4백42㎡의 활용 방안을 놓고 특혜 시비가 불거지고 있다.  경복궁 바로 옆의 이 터는 동쪽으로는 덕성여중·고, 풍문여고와 붙어 있고 북쪽으로는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으로 개조 중인 옛 기무사 건물과 맞붙어 있다. 문화계나 시민단체에서는 이 터를 입지상 서촌-경복궁-북촌-인사동을 잇는 문화 벨트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08년 이 터를 사들인 대한항공에서는 지하 4층, 지상 4층의 7성급 한옥 호텔을 짓겠다고 나서고 있어 갈등이 커지고 있다.

현행법상으로는 호텔 건축 불가능

현행 법률로는 이 터에 호텔을 짓기가 어렵다. 학교보건법상 학교 경계선 2백m 이내인 학교 환경 위생 정화 구역 내에 호텔을 신축하기 위해서는 관할 교육청의 금지 시설 해제 승인이 필요하다. 이에 서울중부교육청은 그동안 해제 승인을 거부해왔다. 그러자 대한항공은 교육청을 상대로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1월 대한항공은 2심에서도 패소했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뜻을 접지 않고 있다. 관광 산업을 위해 꼭 필요한 인프라라는 것이다. 정부 쪽의 움직임도 대한항공에 비관적이지 않다. 정부와 청와대가 추진 중인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근거이다. 관광진흥법에 조항을 신설해 술집이나 도박장 같은 유흥 시설이 없을 경우 학교 옆에도 관광호텔을 지을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이다. 지난해 5월31일 국무회의를 통과했고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하지만 ‘재벌에 특혜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야당이 반대해 통과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른바 ‘조윤선법’으로 불리는 ‘관광 시설 확충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지난해 12월31일자로 국회를 통과해 송현동 호텔 신축 반대 진영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 특별법은 관광호텔 사업 허가를 받게 되면 사업자를 포괄적으로 특별 지원을 해주는 법안이다. 사업자가 국·공유 자산도 빌려 쓸 수 있고 해당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심의를 통과하면 기존의 도시 계획이 규제하고 있는 사안을 풀 수도 있다. 이를테면 도시 계획으로 건폐율과 용적률이 엄격히 통제되는 곳에서도 기존 규정 이상을 웃도는 용적률이나 건폐율을 적용한 호텔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종로구 의회의 안재홍 의원은 “가정이지만 정부의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조윤선법과 결합하면 재벌이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개별적으로 서울시의 호텔 신축 허가 심의를 통과한 뒤 건폐율이나 용적률을 높여서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송현동 부지는 도시계획법상 높이와 용적률에서 제한을 받고 있다. 그런데 조윤선법이 통과되고 관광진흥법에 6항이 신설되면, 시의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만 통과하면 종전의 지구 단위 계획안은 무력화된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측에서는 “우리가 지으려고 하는 것은 한옥 영빈관이 들어가고 전시장과 공연장이 들어가는 복합 문화 시설이다. 고도 제한이 있어서 높게 짓지도 못한다. 이런 점을 감안해 마리오 보타가 본관을 설계해 그 자체로 관광 명소가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안재홍 구의원은 “학교 시설 5백m 내에 단순 숙박 시설 건축이 가능하다고 관광진흥법을 개정하려고 하는데 잠만 자는 특급호텔이 가능한가? 그들이 말하는 7성급 호텔에는 최소한 어떤 시설이 들어가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술도 안 마시는 호텔이 가능한가. 호텔은 부대 시설 유지를 통해서 경영 수지를 맞추는데 그 말을 어찌 믿나”라고 반문했다. 19대 국회에서 누가 다수당이 되건 이 문제는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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