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 ‘공황장애’, 남 얘기 아니다
  • 석유선│헬스팀장 ()
  • 승인 2012.04.03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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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중·장년 남성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져…심장질환으로 착각하며 죽음의 공포 느끼기도

공황장애 질환을 겪는 환자들이 매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 시사저널 전영기

대기업 과장으로 일하는 류승민씨(42세)는 두 달 전 CEO 직속 프로젝트팀 팀장으로 일하면서부터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심장이 심하게 뛰고 통증이 생기는 데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발작 증세에 곧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하면서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일이 계속되었다.

평소 앓고 있던 고혈압 증상이 심해져 심장질환이 생겼나 싶은 두려움이 커지자 결국 병원을 찾은 류씨. 심전도 검사, 혈당 검사도 했지만 정상이었다. 결국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결과 그의 증상은 심혈관질환이 아닌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공황장애(Panic disorde)’로 판명되었다.

최근 류씨처럼 중·장년층 남성들에게 ‘공황장애’가 무섭도록 번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공황장애 질환’ 건강보험 진료비 지급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06년 3만5천명이던 진료 환자가 지난해에는 5만9천명으로 급증했다. 인구 10만명당 진료 환자도 2006년 74명에서 지난해 1백19명으로 매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예기치 못한 상황 맞았을 때 발작 증상 일으켜

특히 연령별로 살펴보면 40대가 28.7%로 가장 많았으며, 50대가 23.4%, 30대가 20.6%로 뒤를 이어 대다수 공황장애 환자가 30~50대에 분포되어 있었다. 남성의 경우는 30~40대 환자가, 여성의 경우 50~70대 환자가 더 많았다.

이렇게 중·장년층이 많이 앓고 있는 공황장애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정신과 질환이라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현실에서 공황장애에서 완치되기 위한 치료법을 알아보았다.

공황장애를 가리키는 Panic(공황)의 어원을 살펴보면, 이 병에 대해 이해하기가 쉽다. 산양의 다리를 가진 그리스 신 ‘판(Pan)’은 천둥과 번개로 가축들에게 자주 장난을 쳤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기르던 자녀가 갑자기 발작이나 동요를 일으키면 ‘Panic’이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공황장애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생기는 발작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질환을 말한다.

최근 방송인 이경규씨가 방송에서 “공황장애로 몇 개월째 약을 먹고 있다”라고 고백한 데 앞서 가수 김장훈씨를 비롯해 배우 차태현·김하늘·하유미 씨 등 연예인들이 잇따라 공황장애 커밍아웃을 하면서 일명 ‘연예인병’으로 알려져 있다. 연예인들은 극심한 경쟁 상태에 놓여 있고, 대중의 인기를 의식하면서도 사생활 노출에 대한 부담이 있어 늘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기 쉽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보니 ‘공황장애’가 발병하기 쉬운 것이다.

강은호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전체 인구의 1~4%가 일생에 한 번 공황장애를 겪을 정도로 의외로 흔한 질환이다. 스트레스가 심한 연예인들의 경우 발병할 가능성이 일반인보다는 다소 클 것이다”라고 말한다.

대한불안의학회(이사장 오강섭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 따르면, 공황장애가 생기는 원인은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뇌 속 위험 경보 장치인 ‘청반’이 오작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청반은 쉽게 말해 우리 몸이 위험 상황에서 반응하는 알람 시계와 같다. 청반은 호르몬을 분비해 근육을 수축시키고 혈액 공급을 줄여 우리 몸을 오싹하게 하거나 긴장 상태로 만든다. 하지만 스트레스와 과로가 누적되면 특별히 위험하지도 않은데 큰 위험으로 착각해 뇌가 몸에 신호를 보내면서 공황장애를 일으킨다.

공황장애의 대표적 증상은 심근경색이나 협심증 등 심장질환과 비슷하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현기증이 나타나며, 구토 느낌도 나고 손가락이나 발가락 마비감이나 감각 이상까지 느끼는 등 대체로 심장질환과 유사해 일반인들은 쉽게 구분하기가 힘들다.

이런 증상이 5~10분 정도 지속되고 스스로 몸을 통제하지 못하면서 ‘이러다가 죽는 것이 아닐까’ 하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이런 증상이 짧게 10분 이내로 진행되고 한 시간 정도 계속되면 공황 발작(panic attack)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공황발작은 심장질환과 달리 발작이 끝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기 때문에 ‘혹시나 죽을까’ 하는 걱정은 결코 안 해도 된다.

그래도 의심이 든다면, 병원에서 흉부 X-선 촬영, 심전도 검사 등 심장질환 검사나 내분비계 검사 등 정밀 진단을 받는 것이 좋다. 검사 이후 아무런 신체 질환이 없음에도 △발작이 또 올까 봐 지속적으로 근심하거나 △자제력 상실, 미칠 것 같은 공포증 등 발작 결과에 대해 걱정하거나 △외출 기피 등 공황에 의한 심각한 행동 변화가 한 달 이상 지속되면 공황장애로 확진 판정을 받는다.

특히 공황장애는 ‘광장 공포증(agorapho bia)’과 이웃사촌으로 불릴 정도로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광장 공포증은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수단, 극장이나 백화점 같은 공공 장소에 혼자 놓여 있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는 증상이다. 이럴 때 환자는 움직이는 것 자체를 무서워해, 가족이나 친구가 없으면 혼자 지하철을 탈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른다.

약만 잘 복용하면 ‘완치’ 가능

공황장애는 불안장애의 일종이라 큰 위협을 주지 않지만 2차적인 공황장애나 우울증 같은 합병증이 수반되면 자살로까지 이어질 수 있어 특히 위험하다. 이 때문에 전문의들은 공황장애를 ‘정신과 분야의 당뇨병’이라며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황장애는 스트레스와 과로 누적이 심해져 불시에 찾아오다 보니 특별한 예방법은 없다. 하지만 조기에 정확히 진단해 일단 확진을 받으면 적절한 치료를 통해 대부분 완치할 수 있다.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김어수 교수는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 체계적으로 치료하면 환자들이 겪는 고통과 두려움은 사라질 수 있다. 적절한 약물 치료만으로도 공황 발작은 대부분 차단할 수 있고, 6개월 이상 약물 치료를 꾸준히 하면 과민해진 뇌 속 청반을 정상화시킬 수 있다”라고 말한다.

공황장애 환자들은 좀 더 꼼꼼한 치료를 위해 약물 치료와 함께 인지행동 치료, 정신분석 치료, 바이오피드백 치료 등을 함께 받는 것이 좋다. 약물 치료에는 두통과 불면증에도 처방되는 삼환계 항우울제, 신경안정제 성분이 함유된 벤조디아제핀 계통, 효소 작용을 막는 마오 차단제, 우울증에도 처방되는 선택적 세로토닌 흡수 차단제 등이 사용된다. 인지행동 치료는 환자가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도록 도와주고, 불안한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는 행동 요령을 알려줘 두려운 상황을 회피하지 않도록 해준다.

정신분석 치료는 공황장애를 일으키는 무의식과 감정, 왜곡된 사고 패턴을 고치도록 돕는다. 또한 바이오피드백 치료는 환자의 생리 현상을 컴퓨터를 통해 직접 관찰하면서 스스로 조절하도록 돕는 훈련 프로그램이다.

전문의들은, 공황장애는 계속 재발할 가능성이 있어 환자에게 무척 힘들고 불편할 수 있는 병이지만 정신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으면 거의 모든 환자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줄이면서 우리 뇌를 살살 달래는 것이 공황장애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자 예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또한 평소에 긴장을 이완하고, 산책이나 여행 등으로 생활의 변화를 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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