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탈레반의 오싹한 ‘귀환’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2.04.23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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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탕된 것으로 보고되었는데 최근 동시다발 공격 감행…더 교활하고 정교해진 작전 능력 과시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의 무장 반군 탈레반이 일요일인 4월15일 수도 카불에 있는 세 곳의 서방 대사관과 일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연합군 기지 및 의회 건물에 동시다발적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아프간 보안군과 나토 연합군은 헬리콥터까지 동원한 치열한 작전 끝에 반군 17명을 사살하고 월요일 아침 8시30분에 겨우 작전을 종료했다. 카불 시에는 18시간 동안 총성과 포성이 울리고 도처에서 연기가 치솟았다. 이 공격으로 미국·영국·독일 대사관이 직·간접으로 총격을 받았으나 인명 피해는 없었다. 교전 과정에서 아프간 경찰 한 명이 사망했다. 일요일 정오께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교전이 계속되는 동안 카불은 4시간 동안 기능이 마비되었다. 인근 주민들은 카불이 탈레반에 장악된 줄 알았다. 정부와 나토 연합군의 인명 피해는 가벼웠으나 파장은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거의 궤멸된 것으로 생각했던 탈레반이 수도 심장부의 철통 같은 경비망을 뚫고 일사불란한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는 사실은 정부와 나토 연합군 모두를 경악시켰다.

지난 4월15일 아프가니스탄 보안군들이 카불에서 탈레반과 교전을 끝낸 뒤 사살된 탈레반 시신들을 점검하고 있다. ⓒ EPA연합

‘소규모 범죄 그룹’의 대담한 공격에 충격

탈레반은 성명을 통해 미군의 코란 소각과 아프간 민간인 학살에 대한 보복으로 계획된 ‘춘계 공세’의 일환으로 이 공격을 감행했다고 밝혔다. 일부 분석가들은 탈레반이 거의 소탕되었다는 나토의 성급한 발표가 이번 공격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서방의 군 및 정보계 관리들은 공격의 규모·정확성·동시다발성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번 공격은 ‘하카니(Haqqani)’라고 불리는 탈레반 조직이 자행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탈레반의 분파인 하카니는 얼마 전까지도 소규모 범죄 그룹에 불과했는데, 이들이 그처럼 대담한 공격을 감행한 데 대해 서방 전략가들은 혀를 내둘렀다. 이들은 공격을 신속하게 진압한 아프간 보안군의 능력을 찬양하고 공격의 전략적 파장을 애써 축소하면서도 탈레반의 부활로 인한 여파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하카니는 수백 마일 밖에서 수도까지 침투해 일요일 오후 1시45분을 기해 일곱 개 주요 목표물을 동시에 공격했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정부와 나토의 정보 확보 실패를 개탄했다. 

뉴욕타임스는 정보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이 공격이 두 가지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고 전했다. 첫째는 탈레반이 몇 달 만에 가끔 시도하는 일시적 공격이 아니라 이처럼 과감한 공격을 반복해서 시도할 능력을 갖추었느냐 하는 점이다. 두 번째 의문은 2014년 서방 병력이 완전히 철수한 후 아프간 정부군이 혼자서 이런 공격을 감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최근 카불을 방문한 미국 국방대학의 존 우드 교수는 이번 공격은 탈레반의 현황에 대한 서방 연합군의 정보와 현실 사이에 중대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하카니 조직은 아프간과 파키스탄 국경에서 주로 소규모 범죄 및 마약 거래를 일삼는 미미한 존재였다. 그런데 이들은 최근 서서히 세를 불려 아프간 내 연합군을 죽이는 주도 세력으로 성장했다. 이들의 공격은 잠시나마 아프간 정부와 나토를 공황 상태에 몰아넣었다는 사실 이상의 함축성을 갖는다. 다시 말해 하카니는 서방 정보망에 노출되지 않고도 그들이 필요로 하는 어떤 형태의 테러 공격도 할 수 있는 방대한 네트워크로 팽창했음을 의미한다. 하카니는 파키스탄 내 탈레반과 제휴하고 있다. 이들은 아프간과 파키스탄 국경을 마음대로 누비면서 아프간 내 연합군과 파키스탄군을 동시에 유린해왔다. 아프간 관리들은 이들의 지휘부가 은신하고 있는 파키스탄에서 공격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관리들은 이번 공격은 이전 공격과는 달리 파키스탄을 교두보로 이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는 하카니가 파키스탄 탈레반과 제휴하지 않고도 독자적으로 조직적 공격을 할 수 있을 만큼 전투력과 정보 수집 능력이 향상되었다는 얘기이다. 마틴 뎀시 미국 합참의장은 워싱턴에서 기자들에게 카불을 공격한 탈레반이 파키스탄으로 도주하지 않은 증거가 있다면서 이는 중대한 국면 변화라고 말했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사태의 책임을 나토의 정보 실패 탓으로 돌렸으나 아프간 의회 의원들은 아프간 정보국의 무능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의원들은 모든 무기와 탄약을 수도 중심의 민간 지역에 모아놓은 것이 수수께끼라고 말했다. 탈레반이 바로 이 점을 노렸다는 것이 의원들의 주장이다.

교전 중 사망한 아프가니스탄 파병 미군의 시신을 옮기는 미군 병사들. ⓒ AP연합

나토 정보 수집 능력의 허점 보인 사건

나토는 체포된 반군에 대한 신문과 그들의 휴대전화 및 통신 감청을 통해 카불 지역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공격에 관한 정보를 어느 측에서도 사전에 입수하지 못한 점은 의문으로 남는다. 아프간 정부군과 나토는 지금까지 10건의 탈레반 공격 가운데 9건은 사전에 탐지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양측 모두 먹통이었다. 반대로 탈레반은 공격 대상과 장소 그리고 시간까지 정확히 사전에 맞추었다. 상황으로 미루어 탈레반의 정보 수집 및 작전 능력이 정부군과 나토보다 우월하지 않나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셈이다. 

일요일의 기습은 지난해 9월13일 카불 주재 미국 대사관 및 인근 나토 사령부에 대한 하카니의 공격 이후 최대의 조직적 공격이다. 미국과 서방 정보 관리들은 사적으로 하카니의 정보 수집 및 작전 능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하는 정보 관리는 탈레반이 4월 중에 무언가 큰일을 낼 것이라는 막연한 낌새는 알아차렸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미리 알지 못했음을 시인했다. 카불과 여러 지방에서 여러 건의 탈레반 공격이 있었으나 일요일의 공격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또한  탈레반의 작전 능력이 그만큼 교활하고 정교해졌음을 의미한다. 카불 공격에 필요한 정보, 병참, 수송, 무기 공급 등을 누가 어떻게 담당했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1990년대부터 아프간 내 정보 네트워크를 감독해온 토머스 러티그 국장은 소규모 조직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를 알기는 어려운 줄 알지만 이번 공격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시다발적 공격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카불 공격의 대담성과 조직 능력은 전례가 없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탈레반이 당장이라도 아프간 정부를 접수할 수준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는 성급한 우려도 내놓았다. 이 정도의 공격에 관한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지 못한 배경을 놓고도 추측이 무성하다. 아프간 군과 나토 연합군은 첨단 정보 수집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번과 같은 구멍이 생겼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일부 정보 관리들은 탈레반이 서방의 정보 수집망을 교묘히 따돌리는 고도의 훈련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했다.

리언 파네타 미국 국방장관은 워싱턴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카불 공격 사태로 미루어 앞으로 아프간에서의 테러 공격이 가열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는 미군의 아프간 철군 일정에는 변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의 장담에도 아프간 현지 지휘관들은 올해부터 2014년까지 미군과 나토군을 완전히 철수하고 아프간 치안 임무를 아프간 정부에 넘기려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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