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폭력 국회’ 더 이상은 안 된다
  • 신율 |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 승인 2012.05.06 04:1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8대 국회, 씁쓸한 기억만 남기고 퇴장…‘무노동 무임금’ 원칙 적용하면 세비 온전히 받기 힘들 것

18대 국회가 끝났다. 마지막에는 아마 월급(세비)에 대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이 무척 두렵기는 했던 모양이다. 부랴부랴 ‘국회 선진화법’도 통과시키고 ‘약사법 개정안’ 그리고 ‘위치추적법’과 같은 민생 법안을 서둘러 통과시켰다. 물론 이런 일들을 잘못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하려면 진작에 하지 왜 이제 하는지 모르겠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이마저 하지 않았다면 18대 국회는 국민들의 뇌리에 ‘우리 돈 받고 자기들끼리 싸움만 했던 국회’로 기억될 뻔했다.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이번 국회는 정말 온갖 폭력과 독선이 횡행했던 국회였다. 이번 국회에 등장했던 ‘무기’는 정말 다양했다. 해머와 전기톱이 등장하더니 급기야 최루탄까지 나타났다. 그러면서 최루탄의 사용을 윤봉길 의사에 비유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폭력 사용의 미화가 극치를 달렸던 것이다.

반대로 독선과 독주가 넘쳤던 이유로는 우선 예산안 단독 통과를 들 수 있다. 18대 국회 들어 예산안이 제때 통과된 적인 한 번도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항상 여당 단독 통과로 끝났다는 진기록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역대 국회 중 가장 많은 직권상정의 기록도 세웠다. 이는 이번 국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민주주의의 역사가 항상 진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역시 입증되었음을 의미한다.

사실 18대 국회가 이 지경이 된 이유와 책임을 묻자면 당연히 새누리당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새누리당은 절대 과반 이상의 의석을 가진 거대 여당으로 소수 야당을 설득하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수적 우위를 무기로 밀어붙이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들이 항상 하는 말은, 민주주의의 원칙은 다수결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런 말은 틀린 주장이다. 민주주의의 금과옥조는 다수결이 아니라 소수의 의견을 가능한 한 제도에 반영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수는 소수의 의견을 듣고 이들의 소리를 제도권에 반영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이들과 타협하거나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시간적으로는 효율적이 아닐지 모르지만, 가장 효과적인 제도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5월2일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마친 의원들이 국회를 떠나고 있다. ⓒ 연합뉴스

격투기에 대한 관람료로 국민 세금 대준 셈

그런데 새누리당은 이런 민주주의의 기본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수적 우위를 무기로 소수 야당을 밀어붙였고, 이에 대해 소수 야당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저항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런 저항을 했던 야당들이 잘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저항하는 것은 좋은데 그 방법도 역시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했다는 것이다. 즉, 해머와 전기톱 그리고 최루탄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의 논리를 정당화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는 것만 보아도 방법의 정당성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결국 야당들의 논리도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어떠해도 상관없다는 듯한 반민주적 태도였다는 말이다.

상황이 이러니 국회는 어떤 결론도 낼 수 없는 상태에 빠졌고 결국 국민들은 이들의 격투기에 대한 관람료로 월급을 지급한 셈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18대 국회의 성적표가 좋을 수가 없다. 18대 국회의 성적표가 초라한 이유는 또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18대 국회의 절대 과반을 차지했던 당은 새누리당이었다. 지난 18대 총선이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고 난 뒤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치러진 이른바 ‘허니문 선거’였다는 시기적 특성과 함께 당시의 뉴타운 열풍과 맞물려 있었기 때문에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경우는 공천만 받으면 상당수가 그냥 당선되는 분위기였다. 때문에 공천 과정에서 후보자의 자질보다는 계파에 대한 충성도가 더 중요한 공천 기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민주당의 경우 ‘반노(反盧)’ 정서가 당시 워낙 강하다 보니까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당선된 이들의 내공은 상당했다고 할 수 있었다. 17대의 경우는 정반대였다. 탄핵 역풍 속에서 치러진 17대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의 경우는 오히려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분위기였고, 반대로 당시 한나라당의 경우는 공천에 상당한 공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선거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다수당을 차지한 정당은 17대나 18대 할 것 없이 공천에 공들이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에서 승리했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러니까 다수당에 속하는 의원의 상당수는 자질 면에서 뒤처진 경우가 많았다. 이런 환경에서는 구조적으로 국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러니까 다수당은 철학도 없이 밀어붙이는 역할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고, 소수 야당은 이런 상황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었으니 국회의 생산성은 애초에 기대하기 힘들었다는 말이다.

이런 국회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도대체 왜 우리 세금으로 이들 월급을 주고 보좌관, 비서관의 월급까지 챙겨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회 분야에서는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이 잘 지켜지는데 국회는 예외라는 점도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국회에서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하면 아마 의원들이 세비를 받는 기간이 불과 몇 달에 그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 세금도 절약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9대 국회는 정말 생산적인 국회가 될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먼저 지적하고 싶은 점은 18대보다는 19대 국회의 환경이 더 낫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국회 선진화법이 통과되었기 때문에 국회에서 몸싸움을 할 확률이 상당히 줄어든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선 몸싸움의 주된 원인이었던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이 엄청나게 강화되었기에 일단은 몸싸움의 명분이 줄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필리버스터 제도가 보장되어 이제 소수당도 합법적으로 다수당의 횡포에 맞설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도 몸싸움을 벌인다면 여론의 비난 수위는 상당히 높아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러니 최소한 외견상으로는 18대보다는 대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19대가 18대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공천 과정을 보면 18대보다 나아진 점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공천 과정에서 민주당에서는 이른바 계파별 안배가 자질보다 중요했고, 새누리당에서는 ‘친이계’의 제거가 자질론에 우선했다. 상황이 이러니 이번 국회의원 당선인의 자질이 과거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생산적 국회를 위해서는 국회의원의 자질이 필수적인데 이 부분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국민들이 감시자적 역할을 극대화해서 의원들이 싸움만 할 때는 가차 없는 여론의 채찍을 휘둘러야 한다. 그리고 다음 번 선거에서 이런 의원들을 반드시 낙선시켜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 세금이 아깝지 않는 국회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