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처스리그, 이젠 ‘설움 리그’ 아닌 ‘효자 리그’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2.05.1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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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덕꾸러기’로 불리던 2군 리그, 놀라운 변신…경기력 좋아져 관중 동원·TV 시청률 모두 1군 리그 못지않아

2009년 7월18일 강원도 춘천 의암야구장에서 열렸던 퓨처스리그 올스타 경기. ⓒ 연합뉴스

“천덕꾸러기는 옛말이다. 이제는 1군 리그를 위협하는 효자 리그로 변신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미국 마이너리그처럼 별도의 리그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관계자는 프로야구 2군 리그인 ‘퓨처스리그’를 이야기하며 연방 웃음꽃을 피웠다. 그도 그럴 것이 올 시즌 퓨처스리그는 관중 동원과 TV 시청률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경기력도 몰라보게 좋아져 퓨처스리그 스타가 탄생하고 있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퓨처스리그 현장에 가보았다.

서울 여의도 MBC SPORTS+ 사무실 입구에는 아침이면 전날 TV 시청률이 기록된 A4 용지가 붙는다. 이 시청률 표에는 자사와 타사의 프로야구 중계와 프로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시청률이 일목요연하게 비교되어 있다. 시청률이 타사를 앞서면 환호성이 나오지만, 지기라도 하면 초상집이 따로 없다.

4월15일 무심코 시청률 표를 바라보던 MBC SPORTS+ 김 아무개 편성팀장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전날 창원마산구장에서 자사가 중계한 퓨처스리그 NC 다이노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시청률이 무려 0.721%나 나왔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웬만한 프로야구 1군 시청률보다 나은 수준이었다. 특히나 프로축구 K리그를 압도하는 수치였다. 같은 시간. NC 관계자도 전날 창원마산구장을 찾은 관중 수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1군 리그 비인기 팀들의 평균 관중 수를 압도하는 9천8백65명이 홈구장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1만명에 가까운 이 수치는 역대 퓨처스리그 최다 관중 동원 기록이었다.

좋은 경기라면 2군 리그도 마다하지 않는 팬들이 있어…

퓨처스리그에서 몸을 풀었던 넥센 히어로즈 김병현 선수. ⓒ 연합뉴스
퓨처스리그 열풍이 불고 있다. 퓨처스리그 경기가 열리는 구장마다 야구팬들이 들어차고, TV 중계 시청률이 1군 리그에 근접하고 있다. 특히나 무명 선수만 즐비했던 퓨처스리그에 스타 선수가 속속 등장하며 야구 흥행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경찰청 유승안 감독은 “퓨처스리그 인기가 이처럼 높아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요즘은 지도자나 선수나 ‘퓨처스리그에서도 야구할 맛이 난다’며 신이 나 있다”라고 귀띔했다. 유감독은 “무관중 혹은 10명 안팎이던 관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퓨처스리그 경기는 대부분 각팀 2군 훈련장에서 열린다. 상무와 경찰청은 부대 안에 구장이 있다. 따라서 야구팬의 접근이 제한되어 있다. 야구팬이 손쉽게 퓨처스리그를 관전하는 구장은 NC 다이노스의 홈구장인 창원마산구장 정도이다. 하지만 요즘 야구팬은 퓨처스리그 경기를 보려고 먼 길도 마다치 않는다. 좋은 예가 있다.

5월9일 인천 송도 LNG구장에서는 삼성과 SK의 퓨처스리그 경기가 열렸다. LNG구장은 송도 신도시에서도 바다를 건너 차로 15분가량 더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대중교통은 꿈도 꿀 수 없다. 주변이 한창 공사 중이라, 주요 도로도 막힌 상태이다. 우회해서 가려면 한참 차를 돌려야 했다. 그럼에도 이날 LNG구장에는 100명이 넘는 관중이 모였다. 가뜩이나 평일 오후 1시 경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날 관중 수는 1군 리그 1만명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관중 가운데는 전남 목포에서 올라온 열혈 야구팬 김왕식씨도 있었다. 김씨는 “오랜만에 등판하는 김광현을 보려고 새벽부터 차를 몰아 이곳까지 왔다. 과거에는 1군 경기만 보았지만, 이제는 ‘괜찮은 경기다’ 싶으면 2군 경기라도 어디든 달려간다”라고 밝혔다.

유감독의 지적처럼 퓨처스리그 경기에 야구팬이 열광하면서 선수들도 힘을 얻고 있다. SK 2군 포수 허웅은 “관중이 전혀 없는 2군에서 뛰다가 1군으로 올라가면 구장을 메운 관중 열기에 압도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요즘은 퓨처스리그에도 관중이 몰리면서 1군으로 승격되어도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TV 중계도 퓨처스리그의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되고 있다. 정영기 한화 2군 감독은 “퓨처스리그가 낮에만 열리는 탓에 2군 선수가 1군에 올라가면 야간 경기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관중도 없고, TV 중계도 하지 않다 보니 2군 선수의 의욕이 상당히 떨어졌던 것이 사실이다”라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MBC SPORTS+에서 한 주에 세 번씩 생중계를 시작하며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MBC SPORTS+는 KBO와 각 팀의 협조를 얻어 월요일 퓨처스리그 경기는 야간 경기로 진행하고 있다. 퓨처스리그 감독들은 입을 모아 “낮에만 뛰던 선수가 야간 경기를 접하면서 이전과는 달리 1군으로 승격했을 때에도 야간 경기에 잘 적응한다”라며 기뻐하고 있다.

전기료가 아까워 월요일 야간 경기를 기피하던 구단도 야간 경기가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되자 이제는 야간 경기를 환영한다는 후문이다. 퓨처스리그 골수팬인 박현명씨는 “TV 중계 때문인지 예전과는 다르게 2군 선수들의 플레이가 화려해지고, 과거처럼 성의 없는 플레이나 어처구니없는 실책은 상당히 줄었다”라고 평했다.

퓨처스리그의 인기가 치솟으며 야구팬의 관심도 2군 선수들에게 쏠리고 있다. NC 나성범이 대표적이다. 5월11일 현재 타율 4할2푼, 5홈런, 24타점, 11도루로 남부리그 타격 전 부문 1위를 달리는 나성범은 1군 스타 선수 못지않은 관심과 인기를 끌고 있다. 나성범의 팬카페가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기자들도 그를 취재하는 데 열을 내고 있다.

한 스포츠 전문지 베테랑 기자는 “한국 프로야구 사상 나성범 같은 2군 스타 선수는 처음일 것이다. 하루에도 몇 통씩 나성범을 취재해달라는 메일이 들어오고 있다”라고 밝혔다.

기념 촬영하는 퓨처스리그 올스타 경기 참가 선수들. ⓒ 연합뉴스

선발 투수 예고제 등 팬들의 관심 지속시킬 아이디어도 내놓아

퓨처스리그의 인기를 지속하기 위해 KBO와 야구인들은 갖가지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KBO는 내년부터 퓨처스리그 홈페이지를 따로 제작해 운영할 방침이다. 현재 구단 자율에 맡긴 입장료도 점차 유료화해 질 높은 경기와 구단의 수익 증대로 연결할 계획이다.

현장 지도자들도 “선발 투수 예고제를 비롯해 다양한 방식으로 야구팬의 관심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NC 김경문 감독은 “1군처럼 퓨처스리그도 선발 투수 예고제를 시행한다면 야구팬들이 좋아하는 투수의 경기를 보려고 야구장을 찾을 것이다. 선수들도 자신의 등판 일정을 알게 되면 그날에 맞춰 컨디션을 조절해 좀 더 좋은 투구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KBS 이용철 해설위원은 “KBO와 야구인들의 노력이 계속 이어진다면 퓨처스리그의 인기는 단발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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