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한국 신문들은 어디로?
  • 김창룡│인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
  • 승인 2012.06.12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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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력 일간지들, 최근 주 2~3회 발행 체제로 잇따라 변신…국내 일간지 업계에 미칠 파장에 촉각

한 신문사의 인쇄 현장.ⓒ 시사저널 전영기

국내 일간지 시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위기를 맞고 있지만 변화를 모색하는 데에는 매우 굼뜬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일간지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인 조선·중앙·동아일보는 종합편성(종편) 채널 출범과 함께 예상된 광고 수익을 확보할 수 없어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직접 나서서 대기업에 광고를 주문했지만 효과는 별로였다.

언론계에서는 위기의 한국 신문 시장을 빗대어 ‘가만히 있어도 망하고 종편 채널에 진출하면 더 빨리 망한다’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이미 국내 신문업계의 위기는 상당히 심화된 상태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신문의 위기가 비단 한국만의 현상이 아닌, 전세계적 현상이라는 점이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는 생존을 위한 자구책으로 혁신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미국의 전통 지역 일간지인 더타임스-피카윤이 최근 매일 발행을 포기하고 주 3회만 발행하겠다고 선언한 것을 기폭제로 미국과 캐나다의 유력 일간지들이 잇따라 주 2~3회 발행 또는 주말판 발행 중단 등을 선언하고 나섰다. 일간 신문이 거의 잡지화하는 쪽으로 가겠다는 이같은 선언은 파격적이다 못해 충격적이다.

국내 신문 산업은 미국 등과 생존 방식 달라

미국 언론학계의 일부 전문가들은 문 앞에 매일 배달되던 신문이 일주일에 두세 번만 배달된다면 독자들이 구독할 생각을 하지 않게 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후버연구소의 애널리스트 크레이그 후버는 “고객이 어디로 갈지 모른다”라고 발행일을 감축하는 데 따른 위험을 지적했다. 이런 위험성에도 일간이 아닌 격일 혹은 주 2~3회 발행으로 선회하는 데는 비용 감축이라는 지상 명령 때문이다. 신문은 대표적인 고비용·저효율 산업이다. 비용을 감축할 수 없다면 적자와 파산은 불가피하다는 계산 때문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경제학>의 저자이자 미디어 분석가인 해럴드 포겔은 “잉크와 인쇄, 배달에 소요되는 비용이 신문사 전체 비용에서 최소 30%를 차지한다”라면서 지역 신문사로서는 발행일 조정이 생존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발행 횟수를 줄이는 새로운 모델이 신문사의 수익 증대로 이어질지는 분명치 않다. 비용은 절감할 수 있지만 신문의 미래 전망이 밝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국은 미국보다 상황이 더 어려워 보인다.

우선 한국은 미국 신문 시장보다 더 빨리, 더 심각하게 신문 시장이 잠식되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포털 사이트(이하 포털)가 인터넷 매체의 공룡으로 군림하는 듯하더니 그것도 잠시, 2010년경부터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매체 환경을 또다시 바꾸고 있다. 즉, 종이 신문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포털의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 NHN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모바일 산업이 급속하게 확대되는 시점인 2010년 이후 성장이 정체되었다. 2010년 3분기 당시 NHN의 영업이익률은 2011년 20%대로 전년과 비교해 반 토막이 났다. 포털이 위기에 처한 원인은 너무나 명확하다. 얼마 전까지 포털에서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미국 지역 일간지 더타임스-피카윤 홈페이지. ⓒ The Times-Picayune 홈페이지 캡쳐

정권 통해 신문 발전 지원 방식 도출해낼 듯

포털의 사정이 이렇다면 전통적인 신문의 위기는 미루어 짐작컨대 위기의 연속으로 보아도 틀림이 없다. 신문 시장의 위기를 예감하고 방송 진출을 모색한 유력 신문 사업자들은 ‘정치적 판단’ 때문에 거의 모든 신청사에 방송 겸영을 허용함으로써 제한된 광고 시장에서 결과적으로 서로 경쟁력을 잃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언론 선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의 이같은 혁신적 변화 움직임이 국내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문제는 서양과 한국은 미디어 탄생 배경과 생존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서양은 시장 원리가 신문 시장에도 작동하기 때문에 적자는 곧 퇴출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의 신문은 적자가 해마다 누적되는 상황에서도 신기할 정도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때로는 사주 이름이 바뀌거나 신문 문패가 바뀌는 정도로 그 생명력을 연장시켜가고 있다.

한국의 신문은 탄생부터 서양처럼 자연스런 시장의 수요에 따라 만들어지기보다 관의 주도로 만들어져 일종의 신문 권력을 행사하며 그 존재 방식을 유지·발전시켜왔다. 시장 원리보다 권력의 의지에 따라 신문사들 사이에 부침이 반복되는 경향은 일종의 전통이 되었다.

따라서 앞으로도 한국 신문이 미국처럼 일간지를 주간지화시키는 방식으로 존재 방식을 모색하기보다는 정권을 통해 신문 발전 지원 방식을 어떻게든 도출해내도록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것은 곧 신문사들의 ‘권력 줄서기’, 또는 ‘대권 추종형’ 신문사의 폐단을 의미하기도 한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처럼 신문 권력형 일간지들의 정치 편향성은 생존의 문제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매체 환경 변화에 상관없이 강한 생존력을 발휘하는 세계일보·국민일보 등 종교 신문들 역시 미국처럼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정도로 당장 급박할 것 같지는 않다.

중앙일보 같은 재벌 신문형은 판형 변화 정도는 시도하겠지만 다른 신문사들보다 사정이 나은 만큼 먼저 나서서 일간지 형태를 격일간지 등으로 바꿀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겨레와 경향신문도 현시점에서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일간지의 품격’을 포기하고 주간지화하는 데는 심리적 거부감과 정서적 반발심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지난해 신문 관련 공적자금 지원은 언론진흥재단의 신문발전지원금(2백18억원)과 지역신문발전기금(1백10억원)을 합해 3백28억원인 반면 방송발전기금은 2천9백22억원에 달했다. 일각에서는 신문 발전 기금으로 1조원대가 필요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신문을 지원하는 방안이 모색되는 만큼 한국 신문 시장의 변화에서 역동성을 기대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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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신문사의 인쇄 현장.ⓒ 시사저널 전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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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지역 일간지 더타임스-피카윤 홈페이지. ⓒ The Times-Picayune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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