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누드화 실종 사건’ 진실은?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2.07.03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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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청사에 걸렸던 그림들 감쪽같이 사라져…전시에 개입했던 인물들은 죽거나, 모르쇠 일관

서울지방경찰청 1층 로비에 설치된 서경갤러리. ⓒ 시사저널 임준선

그림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것도 다른 곳도 아닌, 경찰청사 안에서 사라졌다. 서양화가 김명화씨(여·52)는 6년 전 자신이 서울지방경찰청에 제공했던 자신의 누드화 작품 세 점(6천3백만원 상당)과 제자들의 회화·비구상 작품 다섯 점(7백만원 상당) 등 총 여덟 점의 작품들을 아직까지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며 하소연하고 있다. 이 그림들은 서울경찰청 내에 전시되었으나 이후 어디론가 사라졌다. 서울경찰청측은 “우리는 모르는 일이다”라고 발을 빼고 있다. 어느 간 큰 도둑이 경찰청사 내에 전시된 그림들을 훔쳐갈 수 있었을까. 이른바 ‘누드화 실종 사건’이 경찰청사 주변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김씨는 <시사저널> 취재진과 만나 서울경찰청을 상대로 고소를 할 생각까지 내비쳤다.

지난 2006년 서울경찰청은 청사 1층 로비에 ‘서경갤러리’라는 이름의 전시관을 마련했다. 온갖 사건에 맞서 격무를 이어가는 경찰관들의 스트레스 완화 및 정서 함양을 돕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경찰 관계자들만으로는 갤러리를 원활하게 운영하기 어려웠다. 미술 분야에 식견이 있고 미술계 인맥도 넓은 인사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서울경찰청은 한 미술협회 관계자로부터 민속화가 양정호씨(가명·2008년 사망)를 소개받았다. 양씨의 지인인 박경수씨(가명)가 양씨의 일을 도왔다. 박씨는 양씨와 군 복무 시절 인연을 맺게 된 인물로, 평소 미술 분야에 관심이 컸던 인사이지만 화가는 아니었다.

김씨가 자신의 작품들을 서울경찰청에 제공한 것은 2006년 12월이었다. 당시 서경갤러리에서 진행되던 단체전 도중에 사고가 생겨 전시에 ‘구멍’이 났다. 일부 화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회수해서 철수해버린 것이다. 다급해진 양씨는 평소 안면이 있던 김씨에게 급히 전시에 나설 수 있는 작가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김씨는 자신의 딸과 제자 등 12인의 작가들에게 연락했다. 자신의 누드화 2점도 함께 출품했다. 이로써 총 18명의 작가가 단체전을 이어나갔다.

김씨는 국내에 흔치 않은 누드화 전문 작가로 유명하다. 1996년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 최우수상, 2002년 대한민국회화대전 특선, 2003년 한국서화협회 서양화부분공적탑 등을 수상하며 한국 화단의 중견 작가로 인정받아왔다.

지난해 4월 “두 사람 사이의 문제” 수사 종결

김명화 화가가 도난당했다고 주장하는 누드화들. ⓒ 김명화 제공

전시는 이듬해 1월에 끝났다. 김씨의 주장에 따르면, 이때 양씨와 박씨는 김씨의 누드화 두 점을 포함한 일부 전시작을 청사 사무실 내에 계속 걸어놓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김씨는 더 많은 사람이 자신과 제자들의 작품을 감상한다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요청에 응했다.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두 사람은 김씨를 방문해 누드화 두 점을 더 제공해달라고 요청했다. 김씨는 이들을 믿었다. 이들이 요청한 작품 두 점 중 한 점을 선뜻 제공했다. 당시 김씨는 이 모든 일이 경찰측이 주관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과거 양씨의 제자였던 이로부터 “양씨가 평소 경찰측과 가깝게 지낸다”라는 말을 들었고, 박씨가 스스로를 ‘경찰과 관련된 한 매체의 편집자’로 소개했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당시에는 국가 기관인 경찰이 하는 일인데, 설마 문제가 있겠나 싶었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2008년 3월, 양씨가 갑자기 간암으로 사망했다. 걱정이 된 김씨는 박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작품이 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박씨는 “작품이 잘 전시되어 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후 2010년까지 작품의 전시 여부를 박씨에게 수차례 확인했고, 그때마다 작품이 잘 전시되어 있다는 답을 들었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2010년 7월, 작품을 회수해야겠다고 결심한 김씨는 서울경찰청을 직접 방문했다. 하지만 서울경찰청측으로부터 “2007년 1월 전시가 끝난 직후 양씨에게 모든 작품을 넘겼다”라는 답을 들었다. 김씨와 그의 제자들의 작품은 서울경찰청 청사 안에 걸려 있지 않았던 것이다. 양씨는 이미 죽은 상태였다. 당황한 김씨는 박씨에게 연락해 그림의 향방을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박씨는 태도를 바꾸어 “나는 모르는 일이다”라고 발뺌했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수차례 “그림이 잘 있다”라는 대답을 한 것은 “양씨와 김씨 사이의 일이기에 직접 확인해보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한 것뿐이다”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졸지에 자신과 제자들의 작품을 잃어버린 김씨는 경찰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서울경찰청이 직접 수사에 나섰다. 박씨 등을 소환해 조사했다. 이들과 김씨를 직접 대질 조사하기도 했다. 김씨는 곧 사라진 작품들의 행방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했다. 최소한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는 드러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지난해 4월 마지막 대질 심문을 가진 후 경찰은 수사를 종결했다. 이 사건이 김씨와 죽은 양씨 두 사람 사이의 문제이며, 그 밖의 사람들에게 혐의를 묻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그림이 양씨 등을 거치면서 사라졌다는 것은 김씨의 주장일 뿐, 이를 입증할 증거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모든 일을 경찰이 주관했으니 최종 책임도 경찰에 있을 것이라는 김씨의 예상도 어긋났다. 2006년 당시 서경갤러리를 운영한 담당자는 “서울경찰청은 서경갤러리라는 장소만 대여했을 뿐이다. 전시는 양씨가 주관했다. 전시가 끝난 뒤 모든 작품을 양씨에게 넘겨주었다”라고 밝혔다. 경찰측이 전시를 주관한 것이 아니니 책임이 없다는 논리이다.

작품 내주었던 화가, “경찰청 고소할 생각”

결국 사건의 진실은 당시 전시 관련 업무를 관장한 양씨가 쥐고 있다. 그가 이미 고인이 된 상황에서 양씨와 함께 일했던 박씨는 “죽은 양씨와 김씨만이 아는 일이다”라며 발을 빼고 있다. 이 사건이 미궁에 빠진 이유이다. 책임 소재를 가릴 수 있는 근거 자료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2006년 당시 화가들이 갑자기 철수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김명화씨와 그의 지인들의 작품이 갑자기 서경갤러리에 들어온 상황 탓이다. 때문에 김씨와 서울경찰청 사이에는 계약서나 인수인계서 등 책임 소재를 가릴 수 있는 문건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김씨는 양씨, 박씨 등 전시 관련 업무를 주도한 인물들 중 누군가가 자신의 그림들을 빼돌렸다고 추측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에 대해 심도 있는 수사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당시 전시의 주관처는 서울경찰청이며, 현재의 상황에 대해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씨는 “국가 수사기관이라고 하는 경찰이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다’라며 상식 이하의 수사를 벌인 끝에 가타부타 통보도 없이 사건을 종결했다. 서울경찰청을 상대로 고소를 하는 것까지 검토하고 있다. 청와대나 검찰에 진정을 넣어서라도 꼭 그림을 찾고 싶다”라고 말했다.

경찰측의 입장은 다르다. 오히려 “김씨가 왜 뒤늦게 자신의 그림이 없어졌다고 주장하고 나섰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말하고 있다. 2006년 당시 서경갤러리 운영을 맡았던 담당자는 “전시가 끝난 직후나 양씨가 사망했을 당시, 작품들이 실제로 청사 내에 있는지 왜 확인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2010년 전까지 단 한 번도 서울지방경찰청측에 문의를 해온 적 없었다”라고 말했다. 작품 관리를 소홀히 한 김씨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다.

뒤늦게 터진 ‘누드화 실종 사건’을 둘러싼 관계자들의 입장은 이처럼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다. 하지만 문제의 전시 이후 벌써 5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실체 규명이 쉽지만은 않아 보이는 이유이다. 과연 그림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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