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유산’의 질긴 굴레, 비켜갈 수 있을까
  • 안성모·이승욱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2.07.03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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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주자 지상 검증 시리즈⑥┃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새누리당 박근혜 전 대표가 6월22일 노원구 서울시립북부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열린 비례대표 국회의원 모임 ‘약지25’의 현장 방문 행사에 참석해 배식 봉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현재 여야를 통틀어 지지도에서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대선 주자이다. 오랫동안 ‘대세론’이라는 훈풍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 앞에도 복병들은 있다. 무엇보다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물려받은 부정적 유산의 그림자가 너무 짙다. 여권 내 대권 주자 가운데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박 전 위원장의 대선 후보로서의 가능성과 아킬레스건 등을 집중 점검했다.


 

“독재자의 딸.” 자타가 공인하는 유력 대선 후보인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에게 늘 따라다니는 꼬리표이다. 그 자신이 끔찍이도 싫어하는 이런 표현 자체가 바로 박 전 위원장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주변에서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자기 관리가 철저한 박 전 위원장이지만,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물려받은 부정적 유산은 ‘박근혜 검증’을 이야기할 때 항상 우선순위에서 거론된다. 육영재단 운영을 둘러싸고 동생 근령씨 부부와 벌이고 있는 오랜 법정 다툼 그리고 남동생 지만씨 부부를 둘러싼 여러 구설 역시 박 전 위원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26쪽 딸린 기사 참조).

 

고 최태민 목사와 관련된 네거티브 공세는 지난 2007년 대선 때의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최대 이슈로 부각된 바 있다. 최목사의 사위와 딸인 정윤회-최순실 부부의 행적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또한 박 전 위원장의 성북동 집을 제공한 당사자로 알려진 신기수 전 경남기업 회장과의 관계가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박 전 위원장을 가장 괴롭히는 최대 아킬레스건은 박정희 정권에 의한 권력적 강탈 의혹이 끊이지 않는 정수장학회와 영남학원 문제이다. <시사저널>은 박 전 위원장에 대한 지상 검증을 기획하면서 정수장학회와 영남학원을 둘러싼 새로운 문제들이 불거지는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보았다.

정수장학회

최만립·왕기주 씨 등 최필립씨 주변 인사들 최근 행보에 눈길 

 

 

지난 3월19일 열린 ‘정수장학회 사회 환수와 독립정론 부산일보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 ⓒ 뉴시스

정수장학회는 지난 1962년 박정희 군사 정권이 부산 지역 기업인인 고 김지태씨의 부일장학회를 헌납받아 설립된 5·16장학회를 모태로 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부인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한 자씩 따서 정수장학회로 이름 지었다. 야권에서는 정수장학회를 ‘정권이 강탈한 장물’로 규정하고 ‘사회 환원’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 당시 국정원은 과거사진상규명위 조사에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언론장악 의도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고 밝혔다. 헌납 당시 부일장학회는 부산일보와 부산문화방송(부산MBC) 그리고 한국문화방송(MBC)을 소유하고 있었다. 현재 정수장학회도 MBC 주식 30%와 부산일보 주식 100%를 갖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은 이미 이사장직에서 물러난 만큼 정수장학회와 자신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박 전 위원장은 1995년부터 2005년 3월까지 이사장을 맡았다. 정수장학회측의 해명도 마찬가지다. 현재 박 전 위원장과 정수장학회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이 있는 한, 그런 해명은 궁색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최이사장이 박 전 위원장의 최측근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시사저널>은 지난 2008년 고액 후원금 명단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최이사장 본인과 부인, 자녀 등 전 가족들을  동원해서 법적 최고한도 금액인 총 2천5백만원을 박 전 위원장에게 후원한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실제 최근 들어 박 전 위원장이 유력 대선 주자로 계속 입지를 굳히는 과정에서 최이사장 주변을 둘러싼 여러 잡음이 감지되고 있다.

 

최필립 이사장은 박정희 정권 당시 청와대 의전비서관 출신으로 박 전 위원장의 공보비서관을 지내기도 한 최측근 인사이다. 민주당 등 야권에서는 최이사장의 주변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그의 동생인 최만립 전 대한체육회 부회장은 지난 2월 초 ‘무궁화사랑운동본부’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 단체는 지난 2006년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박 전 위원장 지지자들이 중심이 되어 출범했다.

 

지난해부터 조직 개편을 단행해온 이 단체는 최근 다시 한번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 단체의 김영화 사무총장이 펴낸 <박근혜 리더십> 출판기념회가 지난 6월20일 열렸는데, 당초 이 행사에 박 전 위원장이 축사를 할 예정이라고 홍보했다. 최만립 회장의 취임 당일인 지난 2월8일 이 단체는 홈페이지에 책 출간 예정 소식을 전하면서 ‘박근혜 위원장의 일정이 잡히는 대로 출판기념회를 가질 예정이다’라는 내용의 공지를 올렸다.

 

박 전 위원장 주변에서는 걱정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벌써부터 박 전 위원장의 이름을 내건 모임과 단체들이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박 전 위원장을 돕겠다고 나서는데 모른 척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일이 다 챙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보니 곤혹스럽다는 반응이다. 더군다나 무궁화사랑운동본부는 정수장학회와 자연스레 연결되는 탓에 내부적으로 상당히 곤혹스러워 하는 분위기이다. 결과적으로 출판기념회에 박 전 위원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박 전 위원장은 대신 이날 오전 페루 헬기 참사 희생자 빈소를 찾았다. 하지만 출판기념회에는 친박계의 핵심 인사인 유정복 새누리당 의원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박 전 위원장의 비서실장 출신인 유의원이 참석한 것은, 주변의 여러 우려에도 박 전 위원장이 이 단체를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박 전 위원장측의 외곽 조직으로 알려진 ‘새시대정책개발연구원’의 움직임도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연구원은 왕윤국 동원수산 창립주의 차남인 왕기주 대현농수산 대표가 맡고 있다. 근래 들어 왕대표가 강한 의욕을 보이며 조직을 시·군 단위로까지 확장하고 있다는 얘기들이 나오면서 친박계 주변에서 부쩍 경계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왕대표 뒤에 최필립 이사장이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최이사장은 대현농수산 회장을 지낸 바 있다.

 

무궁화사랑운동본부와 새시대정책개발연구원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위해 보조를 맞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최만립 회장은 “박 전 위원장이 정치인으로서 훌륭한 자질을 가졌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목적이 같은 만큼 함께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왕기주 대표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여권 정보에 밝은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왕대표의 경우 정치권에서는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박 전 위원장과 친분이 남다르다는 이야기가 있다. 대선 정국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라고 전했다.

영남학원

본지가 입수한 40년 전 청구대 이사들 각서

“대학 운영 전권을 각하께 일임”

 

2011년 11월7일 열린 MBC 창사 50주년 사진전 개막식에서 김재철 MBC 사장(오른쪽 세 번째),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왼쪽 세 번째) 등이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때 ‘교주(校主) 박정희’를 정관으로 두었던 학교법인 영남학원을 둘러싼 해묵은 논란은 박 전 위원장의 대권 도전 앞에 놓인 또 다른 걸림돌 가운데 하나이다. 영남학원은 지난 1967년 청구대학과 대구대학을 합병해 만든 영남대를 주축으로 영남이공대학, 영남대의료원 등을 운영하는 학교법인이다. 박 전 위원장이나 영남학원 모두 현재로는 논란에서 비껴가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대선 국면이 되면 영남학원 논란은 정수장학회 못지않게 무소불위 권력자인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장물(臟物) 유산’의 또 다른 사례로 거론될 가능성이 크다.

 

 

 

박 전 위원장과 영남학원을 둘러싼 논란은 영남대의 모태가 된 청구대학과 대구대학 등 두 대학이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로 ‘헌납’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영남학원이 설립된 후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두 대학 설립자의 유족들은 두 대학의 합병이 ‘자진 헌납’이 아니라 ‘정권 차원의 강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청구대학 헌납 당시 이사진의 육필 각서에서도 이러한 정황은 일부 엿보인다. 청구대학 헌납의 결정적 계기가 된 이 각서는 지난 1967년 6월29일 청구대학의 이사회 이사 4명과 감사 2명 명의로 작성한 편지지 두 장 분량의 육필 각서로, 이후락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을 통해 청와대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존경하는 박정희 대통령 각하’로 시작하는 이 각서에서 청구대학 이사진들은 ‘금번 본학(청구대학) 건축 사고에 있어서 뜨거운 위문과 많은 위문금을 하사하심에는…(중략)…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라며 ‘청구대학 운영의 전권을 박정희 대통령 각하에게 일임합니다’라고 쓰고 있다. 여기서 언급된 건축 사고는 대학 이사진의 각서가 작성되기 보름 전인 1967년 6월15일 발생한 청구대학 증축 공사 당시 발생한 대형 인명 사고를 말한다. 청구대학 설립자의 아들인 최찬식씨(85)는 “대형 사고가 발생하자 위기감을 느낀 당시 이사진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권력에게 상납한 것이다. 당시 각서는 설립자이자 이사였던 아버지의 의견도 묻지 않은 채 이사장의 날인도 없는 상태에서 작성되었다”라고 주장했다. 권력의 눈치를 본 강탈이었다는 주장이 나오기는 영남대의 또 다른 피합병 대학인 대구대학도 마찬가지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명예회장의 장남 이맹희씨는 지난 1993년 출판한 자신의 회상록 <묻어둔 이야기>에서 ‘대구대학을 박정희 정권에게 억울하게 빼앗겼다’고 주장했다.

 

출연금 문제도 영남학원 논란의 핵심 중 하나이다. 지난 1988년 10월에 열린 국회 문화공보위원회의 영남대 국정감사 회의록을 보면, 조일문 당시 영남학원 이사장은 “(박 전 대통령과 박 전 위원장이 영남학원 재단에 출연한 자금은) 문서상 나타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라고 증언했다. 당시 국정감사에서 박석무 평민당 의원은 “박근혜 이사의 재단 장악은 완전 불법이다. 이것이야말로 유신의 잔재이다”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영남학원 법인사무국의 한 관계자는 “일부 유족이 영남학원 설립과 운영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출연금 문제도 출연금을 냈다는 증거도 없지만, 출연금을 내지 않았다는 증거도 없는 만큼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라고 반박했다.

 

 

청구대학 이사진이 박정희 전대통령에게 학교 운영 전권을 일임한다는 육필 각서. ⓒ ‘영남대학교 50년사’에서 발췌
 

 

박 전 위원장은 1988년 영남대의 교수 채용 비리가 터지면서 이듬해 영남학원 이사에서 물러났다. 박 전 위원장이 물러난 이후 영남학원은 관선 임시 이사 체제로 운영되면서 지난 20여 년 동안 박 전 위원장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어왔다. 하지만 교과부의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2009년 영남학원을 관선 이사 해제 사학으로 분류했다. 이에 따라 영남학원은 일곱 명의 이사 중 네 명을 박 전 위원장의 추천을 받아 임명했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 단체는 박 전 위원장과 영남학원의 관계가 1988년 이전 체제로 사실상 돌아갔다고 주장하며 논란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교주이자 설립자인 박 전 대통령을 대신해 박 전 위원장이 사실상 영남학원을 다시 사유화한 셈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지난 4·11 총선에서 박 전 위원장의 영남학원 재단 이사 추천권 철회를 주장하고 나선 지역 시민사회 단체들은 대선을 앞두고 이 문제를 다시 쟁점화한다는 계획이다. 김두현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박 전 위원장 역시 출연금 한 푼도 없이 대학을 사유화하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 박 전 위원장이 측근을 이사로 추천하는 방법으로 사실상 영남학원의 주인으로 복귀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영남학원 관계자는 “박 전 위원장에게 추천권을 준 것은 재단 정상화를 위해서는 종전 이사진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는 법 규정 때문이다. 박 전 위원장이 추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는 2009년으로 끝이 났고, 현 이사진이 법인 운영을 주도하는 만큼 사유화했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정관의 ‘교주 박정희’도 ‘설립자 박정희’로 개정했다”라고 해명했다.

 

 

‘장물 유산’ 논란에 휩싸여 있는 학교법인 영남학원 소속의 영남대학교. ⓒ 영남대학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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